종교가 교육에 미친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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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시작하는 말

2.한국 종교와 교육의 현 모습

3.종교의 본질에 대하여

4.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종교적 내면에 관하여

5.종교 교육의 실천에 관하여

6.마치는 말

본문내용

chen)이라고 지적하는데, 왜냐하면 이들은 학생들에게서 아주 어린 시절부터 현실 너머의 모든 것들과 더 높은 것들에 대한 추구를 차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분석력과 구별력 대신에 통합적인 감각과 감정을 키워주는 '예술교육'(Kunstbildung)은 종교교육의 한 구체적 방법론으로써 더욱 더 중요하고, 오늘의 교육에서 미술교육이나 음악교육 등의 예술교육은 그러므로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마리아 몬테소리는 어린아이들의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 그 주변의 환경을 그들의 감각이 자극되도록 색깔과 형태, 소리들로 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강조하였다. 또한 그것 외에 다음의 두 조건을 더 이야기하는데 먼저는 아이들이 자신들의 집중의 대상, 즉 놀이를 마음대로 선택하도록 자유를 주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할 때 더 깊게 집중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그 놀이에서 아이들의 모든 능력들이 총체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 특히 손의 사용을 병행시켜서 아이들의 감각기관들을 발달시키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한다. 이것은 오늘날의 교육에서 노동과 손 공작 등이 철저하게 차단되고 깨어있는 모든 시간들을 오로지 이성의 훈련만을 위해서 사용하도록 강요받고 있는 청소년들에게도 귀중한 시사가 된다고 하겠다. 육체노동과 손노동이 없는 참다운 종교교육이란 생각할 수 없다는 의미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처럼 종교 감각의 각성에 있어서 구체적인 종교 의식(儀式)의 훈련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이 예배 의식적인 훈련만이 종교교육의 모든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이것은 항상 경직되고, 교조화되며 형식적인 것이 되기 쉽다. 종교의 도덕적 역할을 강조하지만 그 본질의 파악에서는 슐라이에르마허와 대단히 유사한 스위스의 페스탈로치 그런 의미에서 종교에서 "신적(神的)인 것"(das Goettliche)과 "예배 의식적인 것"(das Gottesdienstliche)을 구별한다. 진정으로 종교적인 것이란 신적(神的)인 것으로서, 그것은 모든 인간적인 다양한 예배 의식적인 차별들은 넘어서 우리 모두의 본성에 놓여져 있는 것, 즉 인간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이고 그는 선하시다 라는 것을 알아들을 수 있는 우리 내면의 감각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제일 가까운 관계이시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 그것은 결코 축적된 지식의 결과가 아니라 순수한 내면의 감각,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다 라는 자연의 소리에 소박하게 응답하는 무구함"이라고 규정한다. 그리하여 그는, 진정한 종교교육이란 어떤 예배의식에의 참여 훨씬 이전에 자신을 사랑으로 감싸안는 어머니의 눈동자에서, 주위의 자연을 하나님의 창조물로 가리키는 어머니의 손가락에서 이미 비롯된 것으로 밝혀 준다. 자신을 神의 현현으로 알아주는 어머니,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성스러운 것으로 느끼며 희망하는 어머니의 품안에서 그 아이는 이미 종교의 품안에 있는 것이며, 그 이후의 어떠한 이론적인 가르침으로도 줄 수 없는 세계의 하나됨과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주 이른 시기부터 자연스럽게(삶 속에서) 종교적 감각이 키워진 사람은 나중에 건조한 냉소주의나 비관주의에 빠져들지 않고 또한 일시적인 종교적 감흥을 쫓아다니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즉, 외면적인 십자가를 세우는 데 급급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속에 십자가를 가지고 평안과 책임 그리고 경건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페스탈로치 아이가 자라서 사춘기가 되어 부모의 품을 떠나려고 할 때 그 때 더욱 더 분명하게 神의 이름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때 부모의 역할이란 이제 아이들에게 세상의 부모 대신에 하늘의 부모가 계시다는 것을 지적해 주며, 그 부모에 대한 孝와 믿음이 인생의 모든 행복의 근원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페스탈로치에 의하면, 인간 교육의 알파와 오메가는 "사랑과 믿음"이다. 그것은 신앙이 교육의 기초가 되며 수단이 되고 목표가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종교교육은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세속의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하고 의미 있다.
Ⅴ. 마치는 말
우리는 이제까지 슐라이에르마허의 새로운 종교이해를 중심으로 오늘 우리 시대에서 종교교육의 의미와 필요성을 살펴보았다. 종교와 교육을 오늘 우리 한국 사회에서 삶과 문화의 핵심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들로 보면서, 그러나 그 둘이 모두 파행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고 그 원인을 둘 사이의 관계 단절로 파악하였다. 이것을 개선하기 위해서 오늘의 시대에 특히 의미 있는 것으로 떠오르는 슐라이에르마허의 새로운 우주적 종교이해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거기에 근거해서 우리 시대에 의미 있는 종교교육의 모습과 그 뜻을 살펴보고, 한편 구체적인 과정과 방법들도 고찰해 보았다. 오늘 다시 종교교육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가장 폭넓게 얘기하면 세계의 근원과 의미와 방향성에 대한 관심을 키우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교육은 서둘러져서는 안 된다. 아이들에게 다시 여유를 돌려주어야 하고, 자유를 주고 축제를 경험하게 하며, 실존의 고통들을 진하게 느낄 수 있도록 시간을 내 주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삶과 유리된 지능 위주의 교육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은 바로 우리들의 아이들 하나 하나를 神의 현현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아이 하나 하나의 감정과 기쁨과 분노와 육체의 요구에 세밀하게 귀 기울이며 그것들을 존중해 주는 것이고 그들을 받아 주는 것이다. 종교교육, 그것의 진정한 본질은 그러므로 아이들 하나 하나에 대한 더 깊은 존중과 배려인 것이다. 우리는 이제 다시 중세로 돌아가서 모든 학교에서 종교교육을 의무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세계 여러 종교들의 경전이나 신화 등이 소개될 수 있도록 배려되어야 하고, 또한 특별한 종교적 의지를 가지고 설립된 사립 학교들은 그 독자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보호해 주어야 한다. 이것과 더불어 종교교육을 다시 얘기한다는 것은 이제 우리 교육에서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깊게 인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슐라이에르마허는 교육의 세 주체로서 국가와 교회 그리고 가정을 이야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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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12.05
  • 저작시기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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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14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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