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창덕궁 소개 및 사진수록
본문내용
을 받았다. 화계에 있는 굴뚝을 봤는데 모양이 너무 이뻤다. 십장생
무늬를 했는데 연기를 때면 색깔이 변하므로 불을 때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림 <화계>
화계 동쪽편으로
있는 천장문도 굴
뚝만큼이나 눈을
끌었다. 아니 그 이
상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꽃계단에
초록색 조그만한
문은 꼭 동화속에
나오는 문이 실제
로 나타난 것 같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림 <화계(굴뚝)>
저 문을 지나면 꼭
다른 세상이 펼쳐
질 것 같은 생각도
들게 했다. 천장
문을 지나 후원으
로 갈 수 있다고
하니 꼭 틀린 생각
은 아닌 것 같았다.
화계를 보고 난 후
대조전을 잠깐 보
았는데 중궁전이라
고 해서 기대하고
갔더니 생각보다
그림 <천장문>
화려하지도 않고
오히려 궁궐이라고
하기에는 문의 문
양도 소박했고 여
러모로 수수한 느
낌을 받았다.
대조전 남쪽에 있
는 희정당은 대조
전과 같이 많은 수
난을 당했다고 한
다. 편전을보는 곳
으로 알려져 있다
고 한다.
그림 <희정당>
도시풍경과 같이 낙선재에 들어섰다. 낙선재는 원래 창경궁 소유였으나 창덕궁이 관리하게 되었다고 한다. 분위기가 여태까지 봤던 궁궐하고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왕후나 후궁들이 기거하던 곳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조금은 쓸쓸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뭔지 모르게 다른 궁궐들 보다 좀 더 친숙하게 느껴졌다. 낙선재 화계 뒤쪽에 위치한 상량정이 살짝 보이는데 층층이 올라가고 있는 벽돌담이 참 아름다워 보였다. 자연의 형태를 그대로 따른 것이라고 한다.
그림 <낙선재>
그림 12 <낙선재 상량정>
그림 13 <후원 가는 길>
낙선재를 다 본 후 바로 후원으로 향했다. 후원으로 가는 길이 생각보다 먼 것 같았다. 후원으로 가면서 지금은 이렇게 넓은데 손실이 적었던 조선시대에는 얼마나 규모가 컸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왕은 궁 밖 출입을 거의 하지 않았으므로 후원 한번 갔다오는 것으로 답답함을 달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궁궐 한 번 돌면 소풍 한번 갔다온 것 같았을 것이다.
후원으로 들어가니 큰 연못
에 부용정이 있었다. TV에서
보는 정자보다는 확실히 더
화려한 느낌을 받았다. 별장이
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아름답
고 아담해 보였다. 부용정 앞
에 있는 큰 연못을 부용지라
그림 14 <부용정과 부용지>
그림 15 <주합루와 어수문>
고 부르는데 가운데에 인공섬을 두어 옛날의 우주관을 나타내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이부용지에 배를 띄우고 놀았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본 주합루와 어수문도 부용정 못지 않게 아름답고 신기했다. 창경궁을 소개할 때 꼭 사진으로 나오는 곳이
그림 <영화당>
라고 한다. 실제로 보니 정말 그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규장각이라고 한다. 1층은 규장각 2층은 주합루인데 통틀어서 주합루라고 부른다고 한다. 규장각이 이런 건물일 줄은 생각도 못했었다. 다른 건물에 비해 좀 낡아보이기는 했지만 그게 오히려 더 아름답고 고풍스러워 보였다.
그림 <금마문>
부용지 동쪽 가장자리에 있는 영화당을 갔는데 꼭 사찰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과거 시험을 보고 인재를 뽑았던 곳이라고 한다.
영화당을 거쳐 후원
안쪽으로 들어서자 왼
쪽에 금마문이라는 문
이 보였다.
그 문이 지나니 또 하
나의 안채가 나왔다.
조그마한 대문이 있고
그 안에 두 채의 조금
만 집이 있었다. 기오
헌과 의두각이라고 했
는데 조금 넓은 집은
기오헌이고 그 옆에
조그만 집은 의두각이
그림 <기오헌, 의두각>
다.
그림 <불로문>
기오헌은 옛날에 익종이 가끔씩 와서 독서를 즐겼고 의두각도 익종이 왕세자일 때 자주 와서 즐겼던 곳이라고 한다. 맨 처음 봤을 때는 너무 소박하고 작아 하인이 쓰던 안채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왕이 즐겨찾는 곳이라고 하니 달리 보였다. 그 옆의 의두각은 하두 작길래 화장실인줄 알았는데 그 또한 익종이 즐겨 찾던 집이라고 하니 의외였다. 아마 익종은 아담하고 조용한 곳에서 세상시름을 잠시 잊고자 즐겨찾은게 아닌가 싶다.
금마문 옆에 보면 돌로 다
듬어놓은 조그만 문이 있는
데 돌에 불로문이라고 새겨
져 있다. 이 문을 드나들면
늙지 않기를 기워했다는데
괜시리 한번 지나가면서 나
두 모르게 늙지 않게 해달
라고 마음속으로 빌어보았
다. 아마두 옛날에 궁에 있
던 후궁이나 여인네들이 자
주 들락거리며 늙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을 것이다.
불로문을 보고 난 후 연경당 쪽으로 걸어갔다. 연경당의 대문은 다른 대문보다 높이가
그림 20 <장락문>
그림 21 <연경당>
컸다. 글씨도 다른 대문하고는 조금 달라보였다. 담벼락의 벽돌을 쌓는 방식이 어떻고 방화벽처럼 만든 벽이 어떻고 하는 얘기를 들었는데 잘 듣지는 못하였고 어쨌든 궁궐안에 집이 양반집이 하나 들어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옛날에 사대부 집을 모방하여 궁궐 안에 지은 99칸 집이라고 한다. 사대부 집을 모방하여 지었다고 하니 그 당시 사대부들도 왕 못지 않게 큰 집에서 살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궁궐 안에 존재하는 유일한 민가형의 집이라고 하였다. 민가라고 하지만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연경당을 마지막으로 창덕궁을 나서는데 우선은 왔던 길을 다시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하지만 많이 소실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렇게 규모가 큰 것을 보고 만약 옛날 소실되기 전에 궁궐은 과연 어느 정도 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궁궐은 왕권을 나타낸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우리가 사는 집이 어느 정도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보여준다고 볼 때 옛날에 왕이 살던 궁궐의 규모나 시설이 왕의 권력, 또 그 나라의 문화, 위치, 경제를 보여주는 척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궁궐을 돌아보면서 임진왜란이나 일제시대 때 소실된 부분이 너무 많은 것고 그것을 지키고 복원하려는 노력도 너무 미미한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리고 궁궐 주위에 보이는 큰 빌딩들의 모습을 보니 너무 부자연스럽고 답답해 보였다.
이번 답사를 통해 문화유산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무늬를 했는데 연기를 때면 색깔이 변하므로 불을 때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림 <화계>
화계 동쪽편으로
있는 천장문도 굴
뚝만큼이나 눈을
끌었다. 아니 그 이
상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꽃계단에
초록색 조그만한
문은 꼭 동화속에
나오는 문이 실제
로 나타난 것 같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림 <화계(굴뚝)>
저 문을 지나면 꼭
다른 세상이 펼쳐
질 것 같은 생각도
들게 했다. 천장
문을 지나 후원으
로 갈 수 있다고
하니 꼭 틀린 생각
은 아닌 것 같았다.
화계를 보고 난 후
대조전을 잠깐 보
았는데 중궁전이라
고 해서 기대하고
갔더니 생각보다
그림 <천장문>
화려하지도 않고
오히려 궁궐이라고
하기에는 문의 문
양도 소박했고 여
러모로 수수한 느
낌을 받았다.
대조전 남쪽에 있
는 희정당은 대조
전과 같이 많은 수
난을 당했다고 한
다. 편전을보는 곳
으로 알려져 있다
고 한다.
그림 <희정당>
도시풍경과 같이 낙선재에 들어섰다. 낙선재는 원래 창경궁 소유였으나 창덕궁이 관리하게 되었다고 한다. 분위기가 여태까지 봤던 궁궐하고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왕후나 후궁들이 기거하던 곳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조금은 쓸쓸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뭔지 모르게 다른 궁궐들 보다 좀 더 친숙하게 느껴졌다. 낙선재 화계 뒤쪽에 위치한 상량정이 살짝 보이는데 층층이 올라가고 있는 벽돌담이 참 아름다워 보였다. 자연의 형태를 그대로 따른 것이라고 한다.
그림 <낙선재>
그림 12 <낙선재 상량정>
그림 13 <후원 가는 길>
낙선재를 다 본 후 바로 후원으로 향했다. 후원으로 가는 길이 생각보다 먼 것 같았다. 후원으로 가면서 지금은 이렇게 넓은데 손실이 적었던 조선시대에는 얼마나 규모가 컸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왕은 궁 밖 출입을 거의 하지 않았으므로 후원 한번 갔다오는 것으로 답답함을 달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궁궐 한 번 돌면 소풍 한번 갔다온 것 같았을 것이다.
후원으로 들어가니 큰 연못
에 부용정이 있었다. TV에서
보는 정자보다는 확실히 더
화려한 느낌을 받았다. 별장이
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아름답
고 아담해 보였다. 부용정 앞
에 있는 큰 연못을 부용지라
그림 14 <부용정과 부용지>
그림 15 <주합루와 어수문>
고 부르는데 가운데에 인공섬을 두어 옛날의 우주관을 나타내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이부용지에 배를 띄우고 놀았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본 주합루와 어수문도 부용정 못지 않게 아름답고 신기했다. 창경궁을 소개할 때 꼭 사진으로 나오는 곳이
그림 <영화당>
라고 한다. 실제로 보니 정말 그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규장각이라고 한다. 1층은 규장각 2층은 주합루인데 통틀어서 주합루라고 부른다고 한다. 규장각이 이런 건물일 줄은 생각도 못했었다. 다른 건물에 비해 좀 낡아보이기는 했지만 그게 오히려 더 아름답고 고풍스러워 보였다.
그림 <금마문>
부용지 동쪽 가장자리에 있는 영화당을 갔는데 꼭 사찰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과거 시험을 보고 인재를 뽑았던 곳이라고 한다.
영화당을 거쳐 후원
안쪽으로 들어서자 왼
쪽에 금마문이라는 문
이 보였다.
그 문이 지나니 또 하
나의 안채가 나왔다.
조그마한 대문이 있고
그 안에 두 채의 조금
만 집이 있었다. 기오
헌과 의두각이라고 했
는데 조금 넓은 집은
기오헌이고 그 옆에
조그만 집은 의두각이
그림 <기오헌, 의두각>
다.
그림 <불로문>
기오헌은 옛날에 익종이 가끔씩 와서 독서를 즐겼고 의두각도 익종이 왕세자일 때 자주 와서 즐겼던 곳이라고 한다. 맨 처음 봤을 때는 너무 소박하고 작아 하인이 쓰던 안채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왕이 즐겨찾는 곳이라고 하니 달리 보였다. 그 옆의 의두각은 하두 작길래 화장실인줄 알았는데 그 또한 익종이 즐겨 찾던 집이라고 하니 의외였다. 아마 익종은 아담하고 조용한 곳에서 세상시름을 잠시 잊고자 즐겨찾은게 아닌가 싶다.
금마문 옆에 보면 돌로 다
듬어놓은 조그만 문이 있는
데 돌에 불로문이라고 새겨
져 있다. 이 문을 드나들면
늙지 않기를 기워했다는데
괜시리 한번 지나가면서 나
두 모르게 늙지 않게 해달
라고 마음속으로 빌어보았
다. 아마두 옛날에 궁에 있
던 후궁이나 여인네들이 자
주 들락거리며 늙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을 것이다.
불로문을 보고 난 후 연경당 쪽으로 걸어갔다. 연경당의 대문은 다른 대문보다 높이가
그림 20 <장락문>
그림 21 <연경당>
컸다. 글씨도 다른 대문하고는 조금 달라보였다. 담벼락의 벽돌을 쌓는 방식이 어떻고 방화벽처럼 만든 벽이 어떻고 하는 얘기를 들었는데 잘 듣지는 못하였고 어쨌든 궁궐안에 집이 양반집이 하나 들어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옛날에 사대부 집을 모방하여 궁궐 안에 지은 99칸 집이라고 한다. 사대부 집을 모방하여 지었다고 하니 그 당시 사대부들도 왕 못지 않게 큰 집에서 살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궁궐 안에 존재하는 유일한 민가형의 집이라고 하였다. 민가라고 하지만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연경당을 마지막으로 창덕궁을 나서는데 우선은 왔던 길을 다시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하지만 많이 소실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렇게 규모가 큰 것을 보고 만약 옛날 소실되기 전에 궁궐은 과연 어느 정도 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궁궐은 왕권을 나타낸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우리가 사는 집이 어느 정도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보여준다고 볼 때 옛날에 왕이 살던 궁궐의 규모나 시설이 왕의 권력, 또 그 나라의 문화, 위치, 경제를 보여주는 척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궁궐을 돌아보면서 임진왜란이나 일제시대 때 소실된 부분이 너무 많은 것고 그것을 지키고 복원하려는 노력도 너무 미미한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리고 궁궐 주위에 보이는 큰 빌딩들의 모습을 보니 너무 부자연스럽고 답답해 보였다.
이번 답사를 통해 문화유산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