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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기행을 다녀와서
본문내용
본채에서 약 10m 떨어진 좌측으로 사랑채가 있는데 이 건물은 193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전해지며 정면 4칸, 측면 2칸반의 팔작집이다. 대체로 원형이 잘 보존된 건물로 알려져 있다. 김영랑 생가에 들어서자 나는 부유하게 자랐다는 영랑의 어린시절의 느낌이 아닌 풍족했던 서민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은 집이 보였다. 그 집으로 올라가 구석구석을 살피기 시작했다. 마당에는 커다란 나무가 하나 있었는데 소박한 집의 풍경과 잘 어울렸고 방생김새 또한 그리 넓지도 좁지도 않았다. 집 뒤로 커다란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는데 겨울이 아닌 여름에 다시 찾아오면 더 아름다운 집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될거라는 생각을 했다. 부유한 환경속에서 자라난 그 라는 표현보다는 도덕을 지키며 바른길로 살아온 선비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 싶었다. 영랑생가를 내려오며 길 옆으로 있는 집들의 마당에는 모두 감나무와 야자수 비슷하게 생긴 나무들이 있는 것을 알았다. 감들은 모두 먹음직 스럽게 익어있었다.
우리는 걸어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점심은 전라도식 백반이었는데 아침에 먹은 할머니의 음식과는 다른 맛이 있었다. 다시 차에 올라타고 버스여행이 시작되었다. 어제의 들뜬 기분과는 달리 모두 추운 날씨와 부족한 수면으로 피곤해 있었다. 요번 여행에서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우습게도 전라도의 거리가 나에게 계속해서 생각났다. 휑하게 느껴지는 거리에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슈퍼엔 없는 필수품도 많았다. 처음으로 접해본 기행이니 만큼 실수도 많았고 서툰점도 많았다. 준비또한 미흡했음을 반성하며 기행문을 마친다.
우리는 걸어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점심은 전라도식 백반이었는데 아침에 먹은 할머니의 음식과는 다른 맛이 있었다. 다시 차에 올라타고 버스여행이 시작되었다. 어제의 들뜬 기분과는 달리 모두 추운 날씨와 부족한 수면으로 피곤해 있었다. 요번 여행에서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우습게도 전라도의 거리가 나에게 계속해서 생각났다. 휑하게 느껴지는 거리에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슈퍼엔 없는 필수품도 많았다. 처음으로 접해본 기행이니 만큼 실수도 많았고 서툰점도 많았다. 준비또한 미흡했음을 반성하며 기행문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