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근대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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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植民地 近代化論

식민지 근대화 논쟁


1.머리말

2.근대로의 이행 논쟁

3.식민지 사회성격 논쟁

4.맺음말

본문내용

)과 (2)의 시초
단계이며, 둘째시기는 고려기-휴한농법단계로 (2)의 확립과 (3)의 미성립단계, 셋째시기는
조선시기-연작농법단계로 (3)의 확립기로 구분하였다.
宮嶋博史는 이러한 입론을 근거로 조선시대의 토지제도를 국가의 토지지배 즉 결부제에
기초한 수조권적 토지지배의 역사로 파악하고, 이러한 국가적 토지소유는 일제하의 토지조
사사업에 의하여 비로소 근대적 토지제도로 전환되었다고 파악한다. 그러므로 일제시기 광
범한 국유지 창출과정을 통해 식민지 지주제 확립의 토대를 마련했던 토지조사사업에 대해
서도, 식민지적 수탈의 상징으로 이해해 왔던 종래의 관점을 부정하고, 근대적 토지소유와
근대적 지세제도를 확립시킨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3.식민지 사회성격 논쟁
그동안 남북한 역사학계에서 식민지시대를 보는 기본관점을 일제하 식민사관에서 강조되
었던 식민지지배미화론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토대 위에서 조선사의 내재적 발전이 일제 식
민지지배에 의해 억압.저지.왜곡되었음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분단체제가 고착화되고, 분단체체로서의 남북한 사회성격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
면서 식민지시대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요구되었고, 그 결과 식민지시대의 사회성격에 대한
논쟁도 활발히 전개되었다. 특히 1980년대 사회변혁의 전략.전술과 관련하여 사회구성체 논
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박현채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사회론과 안병직 등의 식민지 반봉건
사회론간의 논쟁이 식민지사회에 대한 이해를 고양시켰고, 주요한 학문적 성과도 거두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이후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의 주창자였던 안병직이 기존의 입장을 바꾸
어 중진자본주의론의 입장에서, 다시말하면 식민지 근대화론의 입장에서 식민지시대를 이해
해야 한다고 하여 식민지 사회성격논쟁은 새로운 차원에 돌입하게 되었다.
(1)식민지 반봉건사회론
이 논리는 1930년대 중국혁명과정에서 확립된 것으로,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은 제국주의으
양면성을 전제한다. 즉 제국주의의 침략은 후진국에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를 촉진시키지만,
다른 한편 그 반동성에 의해 반봉건적 토지소유가 유지.온존된다는 것이다.
(2)자본주의사회론
박현채를 중심으로 제기된 이 입론은 식민지 반봉건사회의 상하부 구조가 비정합성을 띤
다는 점에서 독자적인 사회구성체로 인정될 수 없다고 비판하고, 고전적인 입장에서 식민지
사회를 분석하고자 하는 입장이다. 즉 마르크스의 사회구성체론과 레닌의 제국주의론에 기
초하여 식민지시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으로, 토지소유관계에서 자본주의적 발전이 저지되
고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사회구성체적 관점에서는 자본주의사회구성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식민지시대를 파악하게 되면 식민지 시대 민족운동의 동력
과 성격은 자연히 프롤레타리아를 중심으로 한 반제국주의.반자본운동의 성격을 띠게 된다.
(3)중진자본주의론-'식민지개발론'
한편 1980년대 전반까지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의 주창자의 한 사람이고 했던 안병직은 20
세기 후반의 세계자본주의체제는 제국주의 대 식민지라는 대결구도가 아닌 국제협력을 기조
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세계분업체제에서 소외된 북한사회가 점차 전면적 위기에 처한
반면, 식민지 유제를 모든 사회부문에 그대로 남겨둔 채 국제분업체제에 효율적으로 편입하
여 대외의존적 경제개발전력을 채택한 남한의 경제가 급속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
였다. 오늘 남한사회는 30여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미 저개발국에서 중진국으로 진입하고,
선진국화를 전망하고 있다는 현실인식, 이른바 中村哲에 의해 제기된 중진자본주의론을 전
면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종전 식민지사회에 대한 연구시각을 전화하게 되었다.
그는 식민지시대는 정체되거나 빈곤한 시대가 아니라 매우 동태적인 사회였으며, 이는 조
선만이 아니라 일본, 조선, 대만이라는 일본제국권에 공통되는 현상이었고, 이 현상은 戰前
만이 아니라 戰後에도 지속되는 상황이었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일본제국주의의 침
략에 의한 개발은 제국주의에 의해 수탈을 목적으로 한 개발의 측면과 전근대적인 한국민이
근대적인 농민, 노동자, 자본가 등의 제계급으로 변모하는 자기 개발의 측면을 동시에 갖는
것이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1960년대 이후의 한국경제는 일제시대의 그것과는 단절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연속
적인 면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한국의 경제발전은 자생적인 것이 아니라 20세기 후
반기 세계자본주의의 일환으로 전개된 것이며, 그 담지세력도 독립운동을 담당했던 민족세
력이 아닌 다양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자라고 파악하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안병직의 '식민지개발론'은 1960년대 이후 경제성장의 배경을 1930년대의 공업
화, 자본주의화에서 찾으려는 식민지 근대화론으로서 한국근대사의 전개과정 속에서 자본주
의의 발전적 측면만을 특권화하는 역사관인 것이다.
4. 맺음말
1960년대 제기된 자본주의 맹아론을 비롯한 내재적 발전론의 입장에서도 일부 학자들은
한국사회의 발전을 사회구성체의 관점에서 설명하지 않고, 봉건사회에 대한 자본주의의 사
회의 선진성만을 강조하는 근대주의적 역사관에 매몰됨으로써 경제개발을 통한 '조국근대화'
라른 당시의 통치이념과 상호결합하여 제3공화국의 경제개발논리를 정당화시킨 점도 없지
않았다
또한 최근 우리들은 세계사적 대변혁기를 경험하면서 근대=자본주의라는 등식에 대한 광
범한 회의에 직면해 있고, 이러한 회의는 한국사를 올바로 설명하려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그러므로 그동안 내재적 발전론에서 추구했던 자본
주의 맹아론을 비롯한 근대사상에 대한 실증적, 이론적 검토는 매우 의미있는 작업이다. 그
러나 설령 한국사에서의 근대가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으로 전개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다
고 하더라고 한국사의 발전을 내재적인 동력에 의해 설명해 내지 못하고 한국사를 결과론적
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어떠한 역사관도 결국은 불완전한 역사관으로 전락하지 않을 수 없
다. 왜냐하면 내재적 발전론은 한국사를 설명하는 특수한 역사관이 아니라 모든 민족과 국
가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일반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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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12.12
  • 저작시기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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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15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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