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의 죽음의식
→ 『 인간의 조건』을 중심으로 ←
1. 서 론
2. 말로의 생애와 작품에 나타난 죽음
3. 말로의 시간의식
4. 말로의 죽음의식
(1)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과 행동
(2) 죽음의 초극
5. 결 론
* 참고문헌
앙드레 말로 <희망>의 배경이 된 스페인 내전에 관하여
2. 앙드레 말로의 《인간 조건》과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
인간관과 세계관
*들어가기 전에
1.앙드레 말로
2.생-텍쥐페리
*본격적으로 들어가서
인간 조건(la Condition humaine)
인간의 대지(Terre des Hommes)
*정리하며
→ 『 인간의 조건』을 중심으로 ←
1. 서 론
2. 말로의 생애와 작품에 나타난 죽음
3. 말로의 시간의식
4. 말로의 죽음의식
(1)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과 행동
(2) 죽음의 초극
5. 결 론
* 참고문헌
앙드레 말로 <희망>의 배경이 된 스페인 내전에 관하여
2. 앙드레 말로의 《인간 조건》과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
인간관과 세계관
*들어가기 전에
1.앙드레 말로
2.생-텍쥐페리
*본격적으로 들어가서
인간 조건(la Condition humaine)
인간의 대지(Terre des Hommes)
*정리하며
본문내용
를 가진 존재로서만 의미를 가진다. 생-텍쥐페리는 말한다. 중요한 것은 움직이는 것과 자기 내부에 어떤 표시를 하는 것이다. 비행사와 작가는 똑같은 의식 속에 매여서 섞여 있는 것이다. 그의 인간은 서로가 관계를 맺으며 얽혀 사는 구체적인 인간이다. 인간은 불모의 대지에서 고독과 위협을 느끼며 영적인 신비 체험을 하는 것이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바로 책임을 안다는 것이다. 자기의 탓이 아닌 것 같은 곤궁 앞에서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 동료들이 거둔 승리를 자랑으로 아는 그것이다. 자기 의지를 갖다 놓으며 세상을 세우는 데 이바지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어딘가 더 높고, 더 아름답고, 더 영원하고, 더 절대적인 것을 지향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생-텍쥐페리의 어떤 문학적 명제와 결부시켜 보아도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어떤 그물 속의 한 분자가 되지 않고 서는 이 거창한 작업에 참여할 수 없다는 얘기이다. 18개월 동안을 지낸 Cap Juby의 적막 속에서 생-텍쥐페리는 인간을 발견했고, 자신은 이 말의 완전무결한 의미로서의 인간이 되었다. 무한한 정신적 자원을 가진 인간 , 신의 모습을 가진 인간이다.
가슴에는 승리를 한아름 안고 안데스 산맥의 칠레쪽 비탈을 향하여 빠져 들어가는 메르모즈에게 그가 잘못한다고, 장인의 편지 한 장이 아마 그의 생명의 위험을 무릅쓸만한 값어치가 없을 것이라고 그대가 타일러 주었다면 그는 그대의 말을 우습게 생각하였을 것이다. 진리는 그가 안데스산맥을 넘을 적에 태어나던 인간인 것이다.
여기서 모든 범속하고 유약한 개인 속에 거룩하고 위대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고 깨우쳐 주는 점에서 작가 생-텍쥐페리 자신의 인간형을 엿볼 수 있다. 사막에 추락했을 때 동료 한 명과 함께 그는 밭에 기체의 마지막 잔해를 태워 불을 지른다. 인간이 인간을 부르는 신호이다.
밤하늘에 다른 불이 하나 켜지리라. 사람들만이 불을 이용한다. 그들이 우리에게 대답을 했으면…!
이틀 후 기진맥진 하도록 방황한 끝에 그는 정말 피를 토하듯이 힘을 쥐어짜서 쉰 목소리로 Les hommes!……하고 부르짖는다. 드디어 ‘인간’이 나타난다. 멀리 사구 위에 가물거리는 사막의 유목민 한 명이 나타난다. 그 가난한 유목민. 그것이 곧 세상의 온갖 종족, 언어 , 구분을 넘어 현존하는 인간이다. 생-텍쥐페리는 결국 모든 사람들 속에 편재하는 ‘인간’으로 확인한다. 그는 순직한 동료가 조난시에 초인간적인 고투를 한 예를 들어 이렇게 해답한다.
그 위대함은 자기 책임을 느끼는 점이다.……자기가 분담해야만 할 저쪽 살아있는 사람들의 세계에 새로 건설되고 있는 것에 책임을 느낀다는 말이다. 자기 일의 범위 안에서 약간은 인간들의 운명에 대하여 책임을 느낀다는 말이다.
그들은 세계의 건설 공사장에서 나도 내 몫의 돌 하나를 쌓아 올린다는 일체감으로 말미암은 책임감이다. 그것이 곧 ‘인간’이다.
생-텍쥐페리는 투쟁을 위하여 영일이 없는 생애를 보낸 작가이다. 이때 투쟁의 대상은 물론 대내적인 것, 즉 자기자신이었다. 생애를 죽음과 대결해 온 사람이며 늘 죽음과 접근해 온 생활을 해온 사람이다. 죽음 앞에서 어떤 태도로 죽음을 피하고 삶을 연장할 수 있을 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서 어떻게 초월할 수 있을 것인가를 늘 염두에 두어왔다. 우주 신비와 대결하고 인간의 해방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을 그는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인간은 자기확립을 위해서 이런 순리와 부단히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구출되기를 원한다. 곡괭이질하는 사람은 자기가 하는 곡괭이질의 의미를 알고 싶어한다. 그리고 도형수를 욕되게 하는 도형수의 곡괭이질은 탐험가를 위대하게 만드는 탐험가의 곡괭이질과 같은 것이 아니다. 도형장은 곡괭이질이 있는 그곳에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니다. 행위 속에 추함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도형장은 의미가 없는 곡괭이질을 하는 거기에, 그것을 하는 사람을 인간 단체와 연결시켜 주지 않는 곡괭이질을 하는 그곳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도형장에서 탈출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 탈출을 통해서 인간은 자기를 해방하고 나가서 자기를 발견할 수 있으며, 무의식의 개인의 상태에서 의식의 인간의 상태로 옮아가는 불가피한 수단인 것이다. 그의 탈출은 행동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행동을 택한 이유는 인간은 자기초월을 위해서 그것을 불가피하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생-텍쥐페리는 자기의 이익이 침해를 받거나, 자기의 야망이 제약을 받았을 때 본능적으로 거기에 저항한다. 그리고 그가 행동할 땐 자기의 이해관계를 초월해서 아낌없이 자기를 헌신한다. 이 때 헌신은 개인에의 봉사라기보다 유기적인 공동체에의 희생을 의미한다.
*정리하며
지금까지 〈인간 조건〉과 〈인간의 대지〉에 나타남 인간관과 세계관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말로와 생-텍쥐페리는 1930년대를 대표하는 행동문학가로 알려져 있다. 이 두 작가는 죽음과 대결하는 극한 상황에 대하게 되는 것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생-텍쥐페리의 작품 속에 나오는 행동은 말로의 그것보다 조직적이고 이성적이다. 그리고 생-텍쥐페리가 행동을 귀결시킬 때 반대로 말로는 행동을 모험 속으로 끌어 넣는다. 앙드레 말로는, 원래 우주는 맹목적이고 인생도 부조리한 것이며, 이 맹목과 무의미에 행동으로 저항함으로써 사회를 또는 인간을 재건하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의무였다. 따라서 그의 행동의 대상은 사회와 인간이며 목표는 사회혁명이었다. 반면에 생-텍쥐페리는 그 대상이 자연적 목표가 인간혁명이었으며 그의 모든 작품의 주인공들은 모두 자유로운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주어진 인물들이다. 말로가 전쟁 속에서 추구하는 위험과의 대결, 사나이다운 동지애를 생-텍쥐페리는 더 순수하게 자기 직업의 깊은 탐구 속에서 찾아내었다. 인간의 명예이자 인간을 정당화해주는 문명 속에 참여하는 효과적인 행동의 윤리를 추구한 점은 같지만 말로는 그것을 반항 위에 세웠다면, 생-텍쥐페리는 수락의 정신 위에 세웠다고 할 수 있다. 즉 ,희생적인 사명의 수락을 통하여, 자기를 초월하는 자기자신의 몫, 정신을 구제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바로 책임을 안다는 것이다. 자기의 탓이 아닌 것 같은 곤궁 앞에서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 동료들이 거둔 승리를 자랑으로 아는 그것이다. 자기 의지를 갖다 놓으며 세상을 세우는 데 이바지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어딘가 더 높고, 더 아름답고, 더 영원하고, 더 절대적인 것을 지향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생-텍쥐페리의 어떤 문학적 명제와 결부시켜 보아도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어떤 그물 속의 한 분자가 되지 않고 서는 이 거창한 작업에 참여할 수 없다는 얘기이다. 18개월 동안을 지낸 Cap Juby의 적막 속에서 생-텍쥐페리는 인간을 발견했고, 자신은 이 말의 완전무결한 의미로서의 인간이 되었다. 무한한 정신적 자원을 가진 인간 , 신의 모습을 가진 인간이다.
가슴에는 승리를 한아름 안고 안데스 산맥의 칠레쪽 비탈을 향하여 빠져 들어가는 메르모즈에게 그가 잘못한다고, 장인의 편지 한 장이 아마 그의 생명의 위험을 무릅쓸만한 값어치가 없을 것이라고 그대가 타일러 주었다면 그는 그대의 말을 우습게 생각하였을 것이다. 진리는 그가 안데스산맥을 넘을 적에 태어나던 인간인 것이다.
여기서 모든 범속하고 유약한 개인 속에 거룩하고 위대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고 깨우쳐 주는 점에서 작가 생-텍쥐페리 자신의 인간형을 엿볼 수 있다. 사막에 추락했을 때 동료 한 명과 함께 그는 밭에 기체의 마지막 잔해를 태워 불을 지른다. 인간이 인간을 부르는 신호이다.
밤하늘에 다른 불이 하나 켜지리라. 사람들만이 불을 이용한다. 그들이 우리에게 대답을 했으면…!
이틀 후 기진맥진 하도록 방황한 끝에 그는 정말 피를 토하듯이 힘을 쥐어짜서 쉰 목소리로 Les hommes!……하고 부르짖는다. 드디어 ‘인간’이 나타난다. 멀리 사구 위에 가물거리는 사막의 유목민 한 명이 나타난다. 그 가난한 유목민. 그것이 곧 세상의 온갖 종족, 언어 , 구분을 넘어 현존하는 인간이다. 생-텍쥐페리는 결국 모든 사람들 속에 편재하는 ‘인간’으로 확인한다. 그는 순직한 동료가 조난시에 초인간적인 고투를 한 예를 들어 이렇게 해답한다.
그 위대함은 자기 책임을 느끼는 점이다.……자기가 분담해야만 할 저쪽 살아있는 사람들의 세계에 새로 건설되고 있는 것에 책임을 느낀다는 말이다. 자기 일의 범위 안에서 약간은 인간들의 운명에 대하여 책임을 느낀다는 말이다.
그들은 세계의 건설 공사장에서 나도 내 몫의 돌 하나를 쌓아 올린다는 일체감으로 말미암은 책임감이다. 그것이 곧 ‘인간’이다.
생-텍쥐페리는 투쟁을 위하여 영일이 없는 생애를 보낸 작가이다. 이때 투쟁의 대상은 물론 대내적인 것, 즉 자기자신이었다. 생애를 죽음과 대결해 온 사람이며 늘 죽음과 접근해 온 생활을 해온 사람이다. 죽음 앞에서 어떤 태도로 죽음을 피하고 삶을 연장할 수 있을 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서 어떻게 초월할 수 있을 것인가를 늘 염두에 두어왔다. 우주 신비와 대결하고 인간의 해방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을 그는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인간은 자기확립을 위해서 이런 순리와 부단히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구출되기를 원한다. 곡괭이질하는 사람은 자기가 하는 곡괭이질의 의미를 알고 싶어한다. 그리고 도형수를 욕되게 하는 도형수의 곡괭이질은 탐험가를 위대하게 만드는 탐험가의 곡괭이질과 같은 것이 아니다. 도형장은 곡괭이질이 있는 그곳에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니다. 행위 속에 추함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도형장은 의미가 없는 곡괭이질을 하는 거기에, 그것을 하는 사람을 인간 단체와 연결시켜 주지 않는 곡괭이질을 하는 그곳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도형장에서 탈출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 탈출을 통해서 인간은 자기를 해방하고 나가서 자기를 발견할 수 있으며, 무의식의 개인의 상태에서 의식의 인간의 상태로 옮아가는 불가피한 수단인 것이다. 그의 탈출은 행동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행동을 택한 이유는 인간은 자기초월을 위해서 그것을 불가피하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생-텍쥐페리는 자기의 이익이 침해를 받거나, 자기의 야망이 제약을 받았을 때 본능적으로 거기에 저항한다. 그리고 그가 행동할 땐 자기의 이해관계를 초월해서 아낌없이 자기를 헌신한다. 이 때 헌신은 개인에의 봉사라기보다 유기적인 공동체에의 희생을 의미한다.
*정리하며
지금까지 〈인간 조건〉과 〈인간의 대지〉에 나타남 인간관과 세계관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말로와 생-텍쥐페리는 1930년대를 대표하는 행동문학가로 알려져 있다. 이 두 작가는 죽음과 대결하는 극한 상황에 대하게 되는 것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생-텍쥐페리의 작품 속에 나오는 행동은 말로의 그것보다 조직적이고 이성적이다. 그리고 생-텍쥐페리가 행동을 귀결시킬 때 반대로 말로는 행동을 모험 속으로 끌어 넣는다. 앙드레 말로는, 원래 우주는 맹목적이고 인생도 부조리한 것이며, 이 맹목과 무의미에 행동으로 저항함으로써 사회를 또는 인간을 재건하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의무였다. 따라서 그의 행동의 대상은 사회와 인간이며 목표는 사회혁명이었다. 반면에 생-텍쥐페리는 그 대상이 자연적 목표가 인간혁명이었으며 그의 모든 작품의 주인공들은 모두 자유로운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주어진 인물들이다. 말로가 전쟁 속에서 추구하는 위험과의 대결, 사나이다운 동지애를 생-텍쥐페리는 더 순수하게 자기 직업의 깊은 탐구 속에서 찾아내었다. 인간의 명예이자 인간을 정당화해주는 문명 속에 참여하는 효과적인 행동의 윤리를 추구한 점은 같지만 말로는 그것을 반항 위에 세웠다면, 생-텍쥐페리는 수락의 정신 위에 세웠다고 할 수 있다. 즉 ,희생적인 사명의 수락을 통하여, 자기를 초월하는 자기자신의 몫, 정신을 구제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