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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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줄거리

#2. 한 아름다운 청년의 삶과 죽음

#3.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4. 영화다운 영화로 다시 태어나기

#5. 흑백·컬러 편집, 전태일과 관객 하나로

#6.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표현의 한계점

#7. 획기적인 영화시도

#8. 제작노트

#9. 전태일평전

#10. `전태일`의 영전에 바치기에도 부끄럽지 않은 아름다운 한국영화

#11.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보고..
`전태일 평전`을 읽고...

본문내용

된 것이다.
"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90년대의 음악이 흐르고 김영수는 평화시장 골목에 앉아 있다. 여전히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그 중에 청바지를 입은 어느 청년 노동자의 손에 자신의 책이 들려 있음을 본다. 그는 복잡한 사람들 틈으로 멀어져 간다. 그가 뒤를 돌아다 본다. 전태일의 얼굴이 겹쳐진다. 미소를 보낸다.
분명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이제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부활한 것이다. 아직도 봄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겨울 눈꽃이 되어.
#10. `전태일'의 영전에 바치기에도 부끄럽지 않은 아름다운 한국영화
숭고와 환희가 하나로 느껴지는 걸작... 사실적 허구가 아니라 허구적 진실을 성공적으로 담지해낸 기념비적 작품..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만큼 아름다운 대안영화. ..
그러나 텍스트는 즐거움을 주지 않는다. 관객 스스로가 찾아내지 않으면 환희는 전혀 없다. 환희를 밝혀내지 않는다면 텍스트조차 없다. 고집 불통인 감독의 태도와 연기자들의 온화한 시선 속에서 아름다 운 청년 전태일을 만나보는 재미를 만끽하지 못한다면 이 반성적인 텍스트는 역사적 의미도 없다. 처음부터 낯선 인상을 강하게 받을 것이다.
지식인의 고뇌를 통해 인간과 역사를 말하는 박광수 감독의 작품들 은 늘 주류영화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한다. 그의 영화들은 스스로 지배적 패러다임 밖에 존재하기를 자처하면서 독자적 노선을 추구한다. 당연히 소외와 고독이 뼈에 사무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로 얻어낸 환희는 숭고할 것이다. 영화 속에서 전태일을 만난 기쁨이 그것을 증명한다. 1975년의 작가가 1995년의 영상을 통해 1970년의 전태일을 창조한다. 전태일이 살다간 과거시제의 흑백화면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비인 간적 삶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러다가 현재시제로 전개되는 천연색 화면과 영혼을 교감하는 동 안 점차 인간적 정서와 감동을 더해간다.
유신시대의 공포정치에 쫓기는 한 시국사범의 공간이 천연색이되 거칠고 황량한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대상을 멀리 두고 찍는 `원사' 장면에 머무는 카메라 시점 은 강세어법일 것.. 그러나 끈질기게 희망을 찾는 김영수의 시점은 접사를 추구한다. 그의 삶이 전태일의 흑백세계 속으로 투영돼 그것을 찬미하고자 하 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진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역사에 기록 하고자 애쓰기 때문이다. 장면들마다의 큰 간극이 객석을 더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러므로 김영수가 전태일을 부활시키고자 흑백과 천연색의 봉합을 꾀하는 만큼 관객도 적극적으로 두 사람의 숭고한 삶을 오늘의 시점으 로 승화시켜야 한다.
한국영화사상 가장 적은 쇼트(1백79개)로 구성된 이 별난 텍스트의 간극들은 당당하게 그렇게 요구한다.
간단없는 카메라 움직임도 다만 김영수의 진실찾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우리가 마땅히 지녀야 할 자세를 대변한다. 일탈적인 몽타주 시퀀스들이 담백한 서정시의 운율로 흐르되 완곡 하게 감정이입을 거부하고 거리두기와 여백의 미학이 이데올로기를 넘 어 따뜻한 인본주의를 호소하는 것도 관객의 능동적인 대화참여를 통 해서만 감동으로 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인간과 현실과 역사와 인간을 얘기하는 이만한 우리 영화는 극히 드물다. 단언컨대 경이로운 한국적 대안영화다. 전태일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그를 읽는 시점에 대한 영화이고, 수 평으로 편안하게 읽혀지는 영화가 아니라 관객들이 각자의 상호 텍스 트성을 통해서 수직적으로 읽어야 하는 영화다. 읽는 고통보다 훨씬 큰 환희를 보장하는 뛰어난 작품이다.
#11.'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보고.. '전태일 평전'을 읽고...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음악이 멈추고 그 적막속에서 검은 화면위에 촘촘히 박힌 흰 글씨가 죽~올라는 것이었다. 어느 영화에서도 받아보지 못한 무거운 감동이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힘쓴 수백명의 제작자들에 의해서 느껴진 것이다. 전태일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박광수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7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제작에 참여하고 후원금을 내고 모여들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난 대한민국에 사는게 행복하다. 이 영화의 최대의 명장면인 이 자막화면이 주는 무게에 많은 이들이 엉덩이를 떼지 못했을 것이다.
소리없이 올라가는 후원인들의 이름은 소리, 소문없이 이 땅을 바로세우는 사람들의 이름인 것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말 그대로 영화같은 '사실'이다. 앞의 '다큐멘터리 기법의 도입'과 맞물리면서... 그 당시 진행되고 있는 민주 노총 건설투쟁이 영화 [전태일]의 도입부로 설정되었다는 자체가 만세인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약간 마음에 거슬린 것은 전태일이 서울 말을 쓰는게 조금 어색하기도 했다. 배우지 못한 노동자라기 보다는 대학생같은 분위기가 풍겨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태일 평전에서 처럼 전태일의 전반적인 면모가 드러나지 않았다. 물론 대하드라마도 아닌 한 편의 드라마가 다 드러낼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래도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보여주려 했다고 생각하며 그 아쉬움을 접는다.
영화를 볼 때는 전태일이 분신할 수 밖에 없었나 하는 아쉬움이 많이 들었다. 죽지 않고 살아서 더욱 힘차게 투쟁하면 좋을텐데 말이다. 그러나 전태일 평전을 읽으면서 그 생각은 달라졌다. '누군가 죽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자신을 희생시키면서 까지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몸도 아끼지 않는...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남을 위해 나를 포기 할 수 있을까..내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나역시 평화시장의 어린 시다들 처럼 지냈을 것이다. 전태일 같이 나를 위해 희생할 사람을 기다리면서...이 영화를 보고, 전태일 평전을 보고,,, 이것이 가장 부끄러울 뿐이다.
살아 있다면 내 나이쯤 되는. 가령
전태일 같은 이는 聖者다.그의 짧은 삶이 치고 간
번개에 들킨 나의 삶. 추악과 수치. 치욕이다. 그의
우뢰소리가 이 나이 되어 뒤늦게 나에게 당도했구나.
벼락맞은 靑春의 날들이여. 나는 피뢰침 아래에
있었다. 나. 거기에 있었다
-황지우'의 '나의 누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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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06.13
  • 저작시기2003.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24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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