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2.현실보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보고...
3.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보고...
2.현실보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보고...
3.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보고...
본문내용
을 강하게 받을 것이다.
지식인의 고뇌를 통해 인간과 역사를 말하는 박광수 감독의 작품들 은 늘 주류영화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한다.
그의 영화들은 스스로 지배적 패러다임 밖에 존재하기를 자처하면서 독자적 노선을 추구한다.
당연히 소외와 고독이 뼈에 사무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로 얻어낸 환희는 숭고할 것이다. 영화 속에서 전태일을 만난 기쁨이 그것을 증명한다.
1975년의 작가가 1995년의 영상을 통해 1970년의 전태일을 창조한다. 전태일이 살다간 과거시제의 흑백화면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비인 간적 삶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러다가 현재시제로 전개되는 천연색 화면과 영혼을 교감하는 동 안 점차 인간적 정서와 감동을 더해간다.
유신시대의 공포정치에 쫓기는 한 시국사범의 공간이 천연색이되 거칠고 황량한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대상을 멀리 두고 찍는 `원사' 장면에 머무는 카메라 시점 은 강세어법일 것.
그러나 끈질기게 희망을 찾는 김영수의 시점은 접사를 추구한다.
그의 삶이 전태일의 흑백세계 속으로 투영돼 그것을 찬미하고자 하 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진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역사에 기록 하고자 애쓰기 때 문이다.
장면들마다의 큰 간극이 객석을 더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러므로 김영수가 전태일을 부활시키고자 흑백과 천연색의 봉합을 꾀하는 만큼 관객도 적극적으로 두 사람의 숭고한 삶을 오늘의 시점으 로 승화시켜야 한다.
한국영화사상 가장 적은 쇼트(1백79개)로 구성된 이 별난 텍스트의 간극들은 당당하게 그렇게 요구한다.
간단없는 카메라 움직임도 다만 김영수의 진실찾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우리가 마땅히 지녀야 할 자세를 대변한다.
일탈적인 몽타주 시퀀스들이 담백한 서정시의 운율로 흐르되 완곡 하게 감정이입을 거부하고 거리두기와 여백의 미학이 이데올로기를 넘 어 따뜻한 인본주의를 호소하는 것도 관객의 능동적인 대화참여를 통 해서만 감동으로 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인간과 현실과 역사와 인간을 얘기하는 이만한 우리 영화는 극히 드물다.
단언컨대 경이로운 한국적 대안영화다.
전태일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그를 읽는 시점에 대한 영화이고, 수 평으로 편안하게 읽혀지는 영화가 아니라 관객들이 각자의 상호 텍스 트성을 통해서 수직적으로 읽어야 하는 영화다.
읽는 고통보다 훨씬 큰 환희를 보장하는 뛰어난 작품이다.
`전태일'의 영전에 바치기에도 부끄럽지 않은 아름다운 한국영화 다.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감독 박광수)은 처음부터 명확하다. 70년대이후 우리나라 노동운동사적 인물인 전태일(홍경인 분)을 현재의 시점으로 해석하고자 한다는 관점을 민주노조의 대열을 보여준다.
그리고 70년대와 오늘날을 이어주는 고리는 전태일이 분신한지 5년후 수배중이던 지식인 김영수(문성근 분)가 쓴 전태일의 평전이다.
현재와 과거(75년)는 색채로, 이전의 과거는 흑백화면으로 분할되어 그려진다.
영화는 역사적 인물을 신화화하는 비교적 손쉬운 방법 대신, 제목 그대로 처절한 시대에 아름답게 살다간 한 청년의 이야기를 질박하게 풀어 나간다.
전태일의 분신장면은 2단계로 나뉘어져 영화의 시작과 정점을 이룬다.
차비를 털어 어린 노동자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잔업을 대신 해주곤 하던 왜소한 청년이 노동법준수를 요구하며 온몸에 석유를 뿌려 자신의 생명을 태워버리는 장면은 분명 눈물겹다.영화는 이러한 극적인 사건들을 관찰자인 김영수의 시점으로 재구성해 거듭거듭 현재화해 낸다.
임신중이면서도 노조결성을 추진하는 노동자인 아내 정순(김선재 분)이 "당신은 전태일만 생각하지요?"라고 묻자 김영수는 "당신이 바로 전태일"이라고 대답한다.
또 90년대의 김영수는 전태일의 분신 이후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 틈속에서 그를 돌아보는 전태일을 발견하게 된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전태일이라는 한 개인에 대한 전기가 아니라 그의 정신을 계승해 오늘날까지도 노동운동을 일구어 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공들인 후반작업 덕분에 70년대를 재현하는 흑백화면은 그 시대를 살다간 전태일과 동료들의 열악하고 누추한 작업환경을 현실감있게 전달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희생 위에 이루어진 90년대의 현란한 컬러적 세계와 무언의 대비를 이룬다.
어두운 조명과 탈중심화된 화면구도는 70년대 근대화와 경제개발의 주변부에서 으스러져 갔던 노동자들의 사회적 위치를 시각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90년대를 살아가면서 꼭 한번은 우리가 만들고, 봐야 할 영화이다.
지식인의 고뇌를 통해 인간과 역사를 말하는 박광수 감독의 작품들 은 늘 주류영화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한다.
그의 영화들은 스스로 지배적 패러다임 밖에 존재하기를 자처하면서 독자적 노선을 추구한다.
당연히 소외와 고독이 뼈에 사무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로 얻어낸 환희는 숭고할 것이다. 영화 속에서 전태일을 만난 기쁨이 그것을 증명한다.
1975년의 작가가 1995년의 영상을 통해 1970년의 전태일을 창조한다. 전태일이 살다간 과거시제의 흑백화면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비인 간적 삶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러다가 현재시제로 전개되는 천연색 화면과 영혼을 교감하는 동 안 점차 인간적 정서와 감동을 더해간다.
유신시대의 공포정치에 쫓기는 한 시국사범의 공간이 천연색이되 거칠고 황량한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대상을 멀리 두고 찍는 `원사' 장면에 머무는 카메라 시점 은 강세어법일 것.
그러나 끈질기게 희망을 찾는 김영수의 시점은 접사를 추구한다.
그의 삶이 전태일의 흑백세계 속으로 투영돼 그것을 찬미하고자 하 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진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역사에 기록 하고자 애쓰기 때 문이다.
장면들마다의 큰 간극이 객석을 더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러므로 김영수가 전태일을 부활시키고자 흑백과 천연색의 봉합을 꾀하는 만큼 관객도 적극적으로 두 사람의 숭고한 삶을 오늘의 시점으 로 승화시켜야 한다.
한국영화사상 가장 적은 쇼트(1백79개)로 구성된 이 별난 텍스트의 간극들은 당당하게 그렇게 요구한다.
간단없는 카메라 움직임도 다만 김영수의 진실찾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우리가 마땅히 지녀야 할 자세를 대변한다.
일탈적인 몽타주 시퀀스들이 담백한 서정시의 운율로 흐르되 완곡 하게 감정이입을 거부하고 거리두기와 여백의 미학이 이데올로기를 넘 어 따뜻한 인본주의를 호소하는 것도 관객의 능동적인 대화참여를 통 해서만 감동으로 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인간과 현실과 역사와 인간을 얘기하는 이만한 우리 영화는 극히 드물다.
단언컨대 경이로운 한국적 대안영화다.
전태일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그를 읽는 시점에 대한 영화이고, 수 평으로 편안하게 읽혀지는 영화가 아니라 관객들이 각자의 상호 텍스 트성을 통해서 수직적으로 읽어야 하는 영화다.
읽는 고통보다 훨씬 큰 환희를 보장하는 뛰어난 작품이다.
`전태일'의 영전에 바치기에도 부끄럽지 않은 아름다운 한국영화 다.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감독 박광수)은 처음부터 명확하다. 70년대이후 우리나라 노동운동사적 인물인 전태일(홍경인 분)을 현재의 시점으로 해석하고자 한다는 관점을 민주노조의 대열을 보여준다.
그리고 70년대와 오늘날을 이어주는 고리는 전태일이 분신한지 5년후 수배중이던 지식인 김영수(문성근 분)가 쓴 전태일의 평전이다.
현재와 과거(75년)는 색채로, 이전의 과거는 흑백화면으로 분할되어 그려진다.
영화는 역사적 인물을 신화화하는 비교적 손쉬운 방법 대신, 제목 그대로 처절한 시대에 아름답게 살다간 한 청년의 이야기를 질박하게 풀어 나간다.
전태일의 분신장면은 2단계로 나뉘어져 영화의 시작과 정점을 이룬다.
차비를 털어 어린 노동자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잔업을 대신 해주곤 하던 왜소한 청년이 노동법준수를 요구하며 온몸에 석유를 뿌려 자신의 생명을 태워버리는 장면은 분명 눈물겹다.영화는 이러한 극적인 사건들을 관찰자인 김영수의 시점으로 재구성해 거듭거듭 현재화해 낸다.
임신중이면서도 노조결성을 추진하는 노동자인 아내 정순(김선재 분)이 "당신은 전태일만 생각하지요?"라고 묻자 김영수는 "당신이 바로 전태일"이라고 대답한다.
또 90년대의 김영수는 전태일의 분신 이후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 틈속에서 그를 돌아보는 전태일을 발견하게 된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전태일이라는 한 개인에 대한 전기가 아니라 그의 정신을 계승해 오늘날까지도 노동운동을 일구어 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공들인 후반작업 덕분에 70년대를 재현하는 흑백화면은 그 시대를 살다간 전태일과 동료들의 열악하고 누추한 작업환경을 현실감있게 전달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희생 위에 이루어진 90년대의 현란한 컬러적 세계와 무언의 대비를 이룬다.
어두운 조명과 탈중심화된 화면구도는 70년대 근대화와 경제개발의 주변부에서 으스러져 갔던 노동자들의 사회적 위치를 시각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90년대를 살아가면서 꼭 한번은 우리가 만들고, 봐야 할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