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목차 ◈
서론 --------------------------------------------------- 2
Ⅰ. 여러 가지 견해들 ------------------------------------- 3
Ⅱ. 로마제국의 정치발전과 멸망요인 ------------------------ 5
1. 로마제국의 정치적 발전 ------------------------------- 5
2. 로마 문화와 로마인들의 법의 정신 ----------------------- 8
3. 정치적 원인 ---------------------------------------- 10
4. 군사적 원인 ---------------------------------------- 12
Ⅲ. 사회·경제적 원인 ----------------------------------- 13
1. 기후변화와 농업의 피폐 ------------------------------ 13
2. 인력의 부족 --------------------------------------- 15
3. 경제구조의 취약성 ---------------------------------- 17
결론 --------------------------------------------------- 18
참고문헌 ----------------------------------------------- 21
서론 --------------------------------------------------- 2
Ⅰ. 여러 가지 견해들 ------------------------------------- 3
Ⅱ. 로마제국의 정치발전과 멸망요인 ------------------------ 5
1. 로마제국의 정치적 발전 ------------------------------- 5
2. 로마 문화와 로마인들의 법의 정신 ----------------------- 8
3. 정치적 원인 ---------------------------------------- 10
4. 군사적 원인 ---------------------------------------- 12
Ⅲ. 사회·경제적 원인 ----------------------------------- 13
1. 기후변화와 농업의 피폐 ------------------------------ 13
2. 인력의 부족 --------------------------------------- 15
3. 경제구조의 취약성 ---------------------------------- 17
결론 --------------------------------------------------- 18
참고문헌 ----------------------------------------------- 21
본문내용
내에서 많은 재화를 가지게되어 특이한 자본주의적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현대 자본주의와 비슷한 형태로 옮겨갔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로마식 자본주의는 매우 短命했는데, 뷔허에 의하면 로마 경제 구조가 가내경제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단명했다고 보았다. 이러한 뷔허의 견해는 충분한 이론의 제시가 되지 못하며 비판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로스투프체는 이러한 뷔허의 견해에 대하여 고대세계의 원시적 경제구조가 로마제국의 특유한 정치적 경제적 발전을 설명할 수가 있는가? 로마제국의 발전이 가져다준 결과를 우리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인가? 이와 같은 문제점으로 보아 로마의 자본주의가 다소나마 현대 자본주의와 견줄 수 있다는 형태로 전혀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단정하고 있다.
로스토프체프는 가내경제가 고대 세계의 자본주의적 발전을 저해한 요소를 오늘날의 산업화 시설과 비교할 수 없는 경제적 취약성과 사회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요소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황제들은 경제적 발전보다는 국가의 안전과 조직에만 전념한데에서 경제체제가 무너지고 동방의 국가통제와 도시국가의 사회주의를 혼합한 체제로 전환했다고 보았다. 이러한 전환은 자본주의적 발전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으며, 대중들의 가난과 3세기의 위기는 더욱더 경제적 발전을 약화시켰다.
그러므로 로스토프체프는 뷔허의 견해를 그릇된 것으로 판단하였으며 가내 경제는 동방세계 또는 그리스 도시국가에 입각한 어느 세계에도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는 그의 경제적 해석은 타당하다고 보아야 하겠다.
) 이경호, “로마제국 멸망에 관한 연구”(한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8,
pp 65∼67 참조
결론
로마 멸망에 따른 이상의 여러 견해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정치구조 자체의 폐단이다. 이는 전제적인 제권으로 인해 로마 사회가 탄력성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국가에서 세금징수를 위해 직업과 신분을 고정시킴으로써, 자유로운 경제의 흐름이 차단되었다. 또한 대규모 관료체제와 군사력의 증강은 막대한 재정의 지출을 초래하였는데, 이는 과중한 수세로 연결되었다. 이러한 과중한 수세와 국가 재정 타개의 방안으로 주조된 악화의 강제유통은 바로 화폐 경제 혼란을 초래하여 제국의 경제를 돌이킬 수 없는 파탄으로 몰아갔다. 나아가 이러한 현상들은 제국에 대한 지방민의 애착을 약화시켰다. 군인 황제 시대를 거치면서 군단과 정치의 중심이 상당부분 지방에 분산되어 있었던 것도 이러한 지방의 원심적 경향을 조장하는 데 기여하였다.
그 다음은 군대의 질 저하와 게르만족의 유입문제이다. 로마 시민보다 속주 이민족 출신의 군인이 많아짐으로써 군대가 로마시민이 아닌 속주출신의 이민족의 손에 넘어가게 된 것이다. 또 노예제의 폐단이 있다. 강제 노동으로 인한 생산의 비능률성, 노예반란 혹은 태업 등이 장기적으로 제국의 생산력을 저하시켰다는 점이다. 동시에 노예노동은 기술 개발을 촉진시키지 못하였고, 사회전체에 노동을 천시하는 풍조가 만연하였다. 이어서 제국의 정복전이 한계에 다다라 노예의 공급원도 끊기자, 라티푼디움 체제는 위기를 맞이하고 마침내 콜로나투스제로 전환해간다. 제국의 위기를 초래한 것으로 제국 후반기 전염병 등으로 인한 인구의 감소도 빼놓을 수 없는 현상이다. 이에 더하여 로마인의 정신적 도덕적 타락으로 인한 퇴폐적이고 향락적 생활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임신, 출산, 육아 등을 포기하는 현상과도 연관된다.
제정기 로마 인구는 백만 정도로 감소하였는데 이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그 같은 퇴폐적 풍조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인구의 감소는 바로 경제력의 약화, 혹은 지배권력의 약화로 연결된다. 로마의 멸망과 관련하여 한마디 덧붙이자면, 서로마가 망하고 난 뒤에도 서구에서는 항상 영원한 로마제국의 재건을 꿈꾸면서, 그 멸망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흐름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그 옛날 로마제국이 태동하던 기원전 1세기 이미 베르길리우스는 아에네이드 1장에서 신들의 왕 제우스의 약속[I have fixed them(로마인들을 의미) no limit, not in place, not in time. I have given them rule without end]을 통해 '영원한 로마(Roma Aeterna)'의 꿈을 그렸다
) 이원주, “로마제국 쇠망사의 원인에 대한 연구”(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 문)1976, p. 3
. 영원한 로마에 대한 이 같은 꿈은 실제로 서로마 제국이 몰락한 뒤에도 사라지지 않은 듯 하다. 카알대제의 800년 서로마 황제 대관과 962년 시작된 오토 대제의 신성로마제국이 19세기 초까지 존속하였던 사실도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가지 유념할 것은 그런대로 로마의 전통을 이은 동로마제국15세기까지 존재하였으며 서구인들은 알게 모르게 이런 제국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었다.
로마는 영원성을 결코 상실한 것이 아니다. 언어와 법률, 업적 등을 통해 로마는 후세에 모범으로서의 고귀한 기억을 물려주었고 모국으로서의 위치를 점함으로써, 국가 몰락 여부를 떠나, '영원한 로마'적 사상의원천이 되었다. 이런 시각에서 보자면, 최근 유럽 국가들간의 EC공동체나 유로화에 의한 화폐의 통일 등은 일종의 '영원한 로마'의 이념을 재구현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참고문헌》
강일휴 역 , "로마몰락에 관한 최후의 史家", 『西洋古典古代 思想家와 思想史論』, 법문사, 1982
김경현 역 , "로마인의 특성",『西洋古典古代 思想家와 思想史論』, 법문사, 1982
"키게로의 自然法理論", 『西洋古典古代 思想家와 思想史論』, 법문사,
1982
이경호 , "로마제국 멸망에 관한 연구"(한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8
이원주 , "로마제국 쇠망사의 원인에 대한 연구"(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 위 논문), 1976
유게 도루 , 로마는 왜 멸망했는가?, 교문사, 1992.
지동식 편역, 로마제국 쇠망론(서울, 한국자유교육협회, 1971)
조남진 , 서양세계의 형성, 보성, 1988.
"스토아사상과 로마법", 『한국서양고대사 연구』2 , 1944
그러나 이러한 로마식 자본주의는 매우 短命했는데, 뷔허에 의하면 로마 경제 구조가 가내경제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단명했다고 보았다. 이러한 뷔허의 견해는 충분한 이론의 제시가 되지 못하며 비판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로스투프체는 이러한 뷔허의 견해에 대하여 고대세계의 원시적 경제구조가 로마제국의 특유한 정치적 경제적 발전을 설명할 수가 있는가? 로마제국의 발전이 가져다준 결과를 우리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인가? 이와 같은 문제점으로 보아 로마의 자본주의가 다소나마 현대 자본주의와 견줄 수 있다는 형태로 전혀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단정하고 있다.
로스토프체프는 가내경제가 고대 세계의 자본주의적 발전을 저해한 요소를 오늘날의 산업화 시설과 비교할 수 없는 경제적 취약성과 사회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요소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황제들은 경제적 발전보다는 국가의 안전과 조직에만 전념한데에서 경제체제가 무너지고 동방의 국가통제와 도시국가의 사회주의를 혼합한 체제로 전환했다고 보았다. 이러한 전환은 자본주의적 발전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으며, 대중들의 가난과 3세기의 위기는 더욱더 경제적 발전을 약화시켰다.
그러므로 로스토프체프는 뷔허의 견해를 그릇된 것으로 판단하였으며 가내 경제는 동방세계 또는 그리스 도시국가에 입각한 어느 세계에도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는 그의 경제적 해석은 타당하다고 보아야 하겠다.
) 이경호, “로마제국 멸망에 관한 연구”(한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8,
pp 65∼67 참조
결론
로마 멸망에 따른 이상의 여러 견해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정치구조 자체의 폐단이다. 이는 전제적인 제권으로 인해 로마 사회가 탄력성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국가에서 세금징수를 위해 직업과 신분을 고정시킴으로써, 자유로운 경제의 흐름이 차단되었다. 또한 대규모 관료체제와 군사력의 증강은 막대한 재정의 지출을 초래하였는데, 이는 과중한 수세로 연결되었다. 이러한 과중한 수세와 국가 재정 타개의 방안으로 주조된 악화의 강제유통은 바로 화폐 경제 혼란을 초래하여 제국의 경제를 돌이킬 수 없는 파탄으로 몰아갔다. 나아가 이러한 현상들은 제국에 대한 지방민의 애착을 약화시켰다. 군인 황제 시대를 거치면서 군단과 정치의 중심이 상당부분 지방에 분산되어 있었던 것도 이러한 지방의 원심적 경향을 조장하는 데 기여하였다.
그 다음은 군대의 질 저하와 게르만족의 유입문제이다. 로마 시민보다 속주 이민족 출신의 군인이 많아짐으로써 군대가 로마시민이 아닌 속주출신의 이민족의 손에 넘어가게 된 것이다. 또 노예제의 폐단이 있다. 강제 노동으로 인한 생산의 비능률성, 노예반란 혹은 태업 등이 장기적으로 제국의 생산력을 저하시켰다는 점이다. 동시에 노예노동은 기술 개발을 촉진시키지 못하였고, 사회전체에 노동을 천시하는 풍조가 만연하였다. 이어서 제국의 정복전이 한계에 다다라 노예의 공급원도 끊기자, 라티푼디움 체제는 위기를 맞이하고 마침내 콜로나투스제로 전환해간다. 제국의 위기를 초래한 것으로 제국 후반기 전염병 등으로 인한 인구의 감소도 빼놓을 수 없는 현상이다. 이에 더하여 로마인의 정신적 도덕적 타락으로 인한 퇴폐적이고 향락적 생활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임신, 출산, 육아 등을 포기하는 현상과도 연관된다.
제정기 로마 인구는 백만 정도로 감소하였는데 이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그 같은 퇴폐적 풍조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인구의 감소는 바로 경제력의 약화, 혹은 지배권력의 약화로 연결된다. 로마의 멸망과 관련하여 한마디 덧붙이자면, 서로마가 망하고 난 뒤에도 서구에서는 항상 영원한 로마제국의 재건을 꿈꾸면서, 그 멸망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흐름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그 옛날 로마제국이 태동하던 기원전 1세기 이미 베르길리우스는 아에네이드 1장에서 신들의 왕 제우스의 약속[I have fixed them(로마인들을 의미) no limit, not in place, not in time. I have given them rule without end]을 통해 '영원한 로마(Roma Aeterna)'의 꿈을 그렸다
) 이원주, “로마제국 쇠망사의 원인에 대한 연구”(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 문)1976, p. 3
. 영원한 로마에 대한 이 같은 꿈은 실제로 서로마 제국이 몰락한 뒤에도 사라지지 않은 듯 하다. 카알대제의 800년 서로마 황제 대관과 962년 시작된 오토 대제의 신성로마제국이 19세기 초까지 존속하였던 사실도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가지 유념할 것은 그런대로 로마의 전통을 이은 동로마제국15세기까지 존재하였으며 서구인들은 알게 모르게 이런 제국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었다.
로마는 영원성을 결코 상실한 것이 아니다. 언어와 법률, 업적 등을 통해 로마는 후세에 모범으로서의 고귀한 기억을 물려주었고 모국으로서의 위치를 점함으로써, 국가 몰락 여부를 떠나, '영원한 로마'적 사상의원천이 되었다. 이런 시각에서 보자면, 최근 유럽 국가들간의 EC공동체나 유로화에 의한 화폐의 통일 등은 일종의 '영원한 로마'의 이념을 재구현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참고문헌》
강일휴 역 , "로마몰락에 관한 최후의 史家", 『西洋古典古代 思想家와 思想史論』, 법문사, 1982
김경현 역 , "로마인의 특성",『西洋古典古代 思想家와 思想史論』, 법문사, 1982
"키게로의 自然法理論", 『西洋古典古代 思想家와 思想史論』, 법문사,
1982
이경호 , "로마제국 멸망에 관한 연구"(한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8
이원주 , "로마제국 쇠망사의 원인에 대한 연구"(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 위 논문), 1976
유게 도루 , 로마는 왜 멸망했는가?, 교문사, 1992.
지동식 편역, 로마제국 쇠망론(서울, 한국자유교육협회, 1971)
조남진 , 서양세계의 형성, 보성, 1988.
"스토아사상과 로마법", 『한국서양고대사 연구』2 ,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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