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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서론
II. 본 론
1. 아시아
1. 한 국
1.축제의 근원
2.공동체의식과 굿
3.역사를 반영한 축제
4.굿의 기능
2. 일 본
1. 계절 축제
1. 봄 축제
2. 여름 축제
3. 가을 축제
4. 겨울 축제
2. 일본의 설 풍습
2. 유 럽
1. 독 일
1. 독일의 축제
2. 기독교 축제
2. 프랑스
1. 프랑스의 각 지역별 축제
2. 프랑스의 문화축제
3. 중 동
1. 터 키
1. 터키의 결혼 풍습
2. 파키스탄
1. 파키스탄 결혼풍습
2. 파키스탄의 풍습
3. 인 도
4. 이 란
1.전통혼례
4. 아프리카
5. 미주
1. 미국
1.미국의 경축일
2.그 외의 기념일
2. 브라질
1. 리우카니발
2. 브라질 인디오의 전통과 풍습
II. 본 론
1. 아시아
1. 한 국
1.축제의 근원
2.공동체의식과 굿
3.역사를 반영한 축제
4.굿의 기능
2. 일 본
1. 계절 축제
1. 봄 축제
2. 여름 축제
3. 가을 축제
4. 겨울 축제
2. 일본의 설 풍습
2. 유 럽
1. 독 일
1. 독일의 축제
2. 기독교 축제
2. 프랑스
1. 프랑스의 각 지역별 축제
2. 프랑스의 문화축제
3. 중 동
1. 터 키
1. 터키의 결혼 풍습
2. 파키스탄
1. 파키스탄 결혼풍습
2. 파키스탄의 풍습
3. 인 도
4. 이 란
1.전통혼례
4. 아프리카
5. 미주
1. 미국
1.미국의 경축일
2.그 외의 기념일
2. 브라질
1. 리우카니발
2. 브라질 인디오의 전통과 풍습
본문내용
고 하는 움막에서 보통 50-200명이 함께 거주하였고 이 말로까는 부족의 수에 따라 여러 채가 존재 하였습니다. 그리고 농사를 거의 짓지 않았으므로 주변에 먹을 것이나 사냥감의 떨어지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유목 생활을 하였습니다.
○ 결 혼
결혼은 대체로 동족간 결혼과 일부일처제를 유지하였으나 추장의 경우는 자신의 능력이 닿는 한 여러 부인을 둘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뚜삐족의 경우 삼촌과 조카간의 결혼, 사촌 간의 결혼 그리고 형이 사망하면 동생이 형수와 같이 사는 풍습이 있었고 다른 부족의 여성 을 원할 시엔 미래의 장인 댁을 위해 일정기간 일을 하였습니다. 기타 다른 부족들 경우는 결혼하기전 여러 가지 테스트를 거쳐야 했는데 그중 까라자스(caraj s)부족의 경우는 무거운 통나무를 짊어지고 일정한 거리를 운반하는 테스트를 통과해야 했고 꾸리나족(curinas)족 경우는 엄청난 채찍 테스트를 통과하여야 했습니다.
2. 전쟁에 따른 풍습
적과의 전투에서 부상당한 사람이나 그 미망인 또는 그 자식들은 추장이 손수 만든, 적의 이빨들로 장식된 목화띠를 목에 걸고 다니면서 단체 노동에서 제외되었고 그 부족에 의해 재정적 지원을 받았습니다.
3. 종 교
인디오들의 종교는 일반적으로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해, 달, 숲, 물, 물고기, 뱀 등을 우상하여 신으로 믿었습니다. 또한 인디오들은 악령들이 자신의 신체 각부위를 통해 침범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몸에 붉은 색을 칠하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환자 치료나 기타 종교적 행사가 있을 때는 이른바 빠제(page)라 불리는 마법사가 행사를 주도했 으며 그는 각 종족에서 주요 인물로 대우를 받았습니다.
4. 식생활
인디오들은 주로 사냥을 해서 먹고 살았으며 농업활동은 거의 전무한 편이었습니다. 그 런 고로 이들의 주식은 육류와 넝쿨식물의 일종인 만디오까(mandioca)였고 옥수수로 만든 죽(canjica)이나 옥수수 주먹밥같은 빠몽냐(pamonha)를 좋아했습니다. 또한 이들은 매운 고 추를 선호하여 매운 음식을 즐겨 먹었으며 이같은 경향은 오늘날 바이아(Bahia)주와 미나스 제라이스(Minas Gerais)주 등지에 아직 남아있습니다. 또 이들은 채소류를 좋아하지 않았으 며 과일중에 까주(caju)와 마멍(mama o)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5. 전 쟁
인디오들은 자기 구역내에 사냥거리가 부족할 때나 간단한 농사를 지을 기름진 땅이 필 요할 때 집단 이주를 하거나 이웃 종족들과 전쟁을 벌여 그것을 쟁취하였습니다. 또 종족 멤버간의 유대가 상당히 강하고 복수심도 강해 부족중 누구 하나가 다른 부족으로 부터 공 격을 받거나 모욕을 받을 때 그것은 십시일반 부족 대 부족간의 전쟁으로 번지곤 했습니다.
6. 식인 풍습 (antropofagia)
: 이 식인 풍습은 종종 부족간의 전쟁을 유발시켰던 식량조달 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 니다. 식인 풍습이 있게 된 동기는 첫째, 상대 적군의 육체를 먹음으로써 그 적군의 용맹성 과 덕망을 얻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둘째, 포로로 잡힌 적을 처형할 때 그 포로가 자신의 종족을 잡아 먹었다고 말하는데 그것에 대한 일종의 복수심에서 비롯 됐다고도 합니다. 또한 일부 제스족 가운데 일부 부족은 자연사로 죽은 종족 일원의 육체를 먹었는데 이때 는 단지 죽은 자의 가족만이 그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죽은 자의 고기를 먹음으로써 죽은 자의 덕망을 그대로 전수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의 육체를 먹는 것이 올바른 장례를 치루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뚜삐족들은 여자의 시신 을 먹지 않았는데 그것은 여자의 특성을 갖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7. 기타 풍습
꼬우바지 (couvade)
이 풍습에 따르면 산모가 아기를 낳을 때 남편은 사냥등 노동을 멈추고 신중히 처신을 하면서 거의 금식에 가까운 생활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지만 아내의 산고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됐으며, 나아가 태어날 자식에 대한 부성애의 표현 또는 아이를 갖게 됐다는 대외적 과시를 위한 것이라고 해석됩니다.
꾸루밍스 (curumins)
인디오말로 어린이라는 뜻으로 유아기때 인디오 어린이들은 엄마등에 업혀 자랐고 조금 커서는 진흙으로 만들어진 동물 형상의 장남감을 갖고 놀거나 주거지에서 기르던 작은 새들 을 벗삼아 놀았다고 합니다. 또 이들은 공을 갖고 노는 것을 즐겼는데 이 공은 보통 나무의 진으로 만들어져 무척 가벼웠고 주로 머리와 등으로 공을 주고 받는 게임을 즐겼다고 합니 다. 이걸 보면 브라질이 오늘날 축구 강국이 된 것이 우연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 다. 그리고 사춘기에 접어 들어선 남자들의 경우 이른바 "성인의 집"에 일정 기간 입주하여 자기 부족의 노인들로 부터 사냥, 낚시, 전쟁, 노래, 풍습등을 배워 성인식을 치렀다고 합니 다.
꾸냐멩비라 (cunhamembira)
인디오 말로 적군의 자식 축제라는 뜻으로, 인디오들은 인육을 먹을 때 타 부족의 주요 인사들도 초대하곤 했는데 한가지 재미난 사실은 포로를 죽이기 며칠전에 그에게 융성한 대 접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따금씩 그에게 자기 종족의 여성을 짝지워 주기도 했으며 그 결과 포로가 죽고난 뒤 종종 아기가 태어나기도 했다는 겁니다.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 그 아기의 어머니는 갓 나은 자식을 자신의 가장 가까운 친지에게 넘겨줘야 했고 이 친지는 그 아기를 꾸냐멩비라라는 예식을 치른 뒤 살해했습니다. 그뒤 제일 먼저, 아이를 낳은 어머니 가 그 아기의 인육을 먹도록 되있었는데 모성애의 본능이 부족의 전통보다 강했던 지라 그 어머니는 아기를 자기 부족이 양육해줄 것을 애원하기도 했고 때로는 아기를 데리고 숲으로 도망가곤 했다고 합니다.
남녀의 역할 분담
남녀 모두 목욕을 즐겨하는 등 청결한 위생 생활을 했으며 남자는 사냥과 전쟁에 동원되 었고 무기, 건축, 악기 생산 및 해먹 빨래도 남자 몫이었다고 합니다. 한편 여자는 가사일과 농업에 종사했으며 특히 사냥에서 잡은 동물의 운반은 여자의 몫이었다고 합니다.
○ 결 혼
결혼은 대체로 동족간 결혼과 일부일처제를 유지하였으나 추장의 경우는 자신의 능력이 닿는 한 여러 부인을 둘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뚜삐족의 경우 삼촌과 조카간의 결혼, 사촌 간의 결혼 그리고 형이 사망하면 동생이 형수와 같이 사는 풍습이 있었고 다른 부족의 여성 을 원할 시엔 미래의 장인 댁을 위해 일정기간 일을 하였습니다. 기타 다른 부족들 경우는 결혼하기전 여러 가지 테스트를 거쳐야 했는데 그중 까라자스(caraj s)부족의 경우는 무거운 통나무를 짊어지고 일정한 거리를 운반하는 테스트를 통과해야 했고 꾸리나족(curinas)족 경우는 엄청난 채찍 테스트를 통과하여야 했습니다.
2. 전쟁에 따른 풍습
적과의 전투에서 부상당한 사람이나 그 미망인 또는 그 자식들은 추장이 손수 만든, 적의 이빨들로 장식된 목화띠를 목에 걸고 다니면서 단체 노동에서 제외되었고 그 부족에 의해 재정적 지원을 받았습니다.
3. 종 교
인디오들의 종교는 일반적으로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해, 달, 숲, 물, 물고기, 뱀 등을 우상하여 신으로 믿었습니다. 또한 인디오들은 악령들이 자신의 신체 각부위를 통해 침범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몸에 붉은 색을 칠하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환자 치료나 기타 종교적 행사가 있을 때는 이른바 빠제(page)라 불리는 마법사가 행사를 주도했 으며 그는 각 종족에서 주요 인물로 대우를 받았습니다.
4. 식생활
인디오들은 주로 사냥을 해서 먹고 살았으며 농업활동은 거의 전무한 편이었습니다. 그 런 고로 이들의 주식은 육류와 넝쿨식물의 일종인 만디오까(mandioca)였고 옥수수로 만든 죽(canjica)이나 옥수수 주먹밥같은 빠몽냐(pamonha)를 좋아했습니다. 또한 이들은 매운 고 추를 선호하여 매운 음식을 즐겨 먹었으며 이같은 경향은 오늘날 바이아(Bahia)주와 미나스 제라이스(Minas Gerais)주 등지에 아직 남아있습니다. 또 이들은 채소류를 좋아하지 않았으 며 과일중에 까주(caju)와 마멍(mama o)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5. 전 쟁
인디오들은 자기 구역내에 사냥거리가 부족할 때나 간단한 농사를 지을 기름진 땅이 필 요할 때 집단 이주를 하거나 이웃 종족들과 전쟁을 벌여 그것을 쟁취하였습니다. 또 종족 멤버간의 유대가 상당히 강하고 복수심도 강해 부족중 누구 하나가 다른 부족으로 부터 공 격을 받거나 모욕을 받을 때 그것은 십시일반 부족 대 부족간의 전쟁으로 번지곤 했습니다.
6. 식인 풍습 (antropofagia)
: 이 식인 풍습은 종종 부족간의 전쟁을 유발시켰던 식량조달 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 니다. 식인 풍습이 있게 된 동기는 첫째, 상대 적군의 육체를 먹음으로써 그 적군의 용맹성 과 덕망을 얻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둘째, 포로로 잡힌 적을 처형할 때 그 포로가 자신의 종족을 잡아 먹었다고 말하는데 그것에 대한 일종의 복수심에서 비롯 됐다고도 합니다. 또한 일부 제스족 가운데 일부 부족은 자연사로 죽은 종족 일원의 육체를 먹었는데 이때 는 단지 죽은 자의 가족만이 그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죽은 자의 고기를 먹음으로써 죽은 자의 덕망을 그대로 전수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의 육체를 먹는 것이 올바른 장례를 치루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뚜삐족들은 여자의 시신 을 먹지 않았는데 그것은 여자의 특성을 갖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7. 기타 풍습
꼬우바지 (couvade)
이 풍습에 따르면 산모가 아기를 낳을 때 남편은 사냥등 노동을 멈추고 신중히 처신을 하면서 거의 금식에 가까운 생활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지만 아내의 산고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됐으며, 나아가 태어날 자식에 대한 부성애의 표현 또는 아이를 갖게 됐다는 대외적 과시를 위한 것이라고 해석됩니다.
꾸루밍스 (curumins)
인디오말로 어린이라는 뜻으로 유아기때 인디오 어린이들은 엄마등에 업혀 자랐고 조금 커서는 진흙으로 만들어진 동물 형상의 장남감을 갖고 놀거나 주거지에서 기르던 작은 새들 을 벗삼아 놀았다고 합니다. 또 이들은 공을 갖고 노는 것을 즐겼는데 이 공은 보통 나무의 진으로 만들어져 무척 가벼웠고 주로 머리와 등으로 공을 주고 받는 게임을 즐겼다고 합니 다. 이걸 보면 브라질이 오늘날 축구 강국이 된 것이 우연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 다. 그리고 사춘기에 접어 들어선 남자들의 경우 이른바 "성인의 집"에 일정 기간 입주하여 자기 부족의 노인들로 부터 사냥, 낚시, 전쟁, 노래, 풍습등을 배워 성인식을 치렀다고 합니 다.
꾸냐멩비라 (cunhamembira)
인디오 말로 적군의 자식 축제라는 뜻으로, 인디오들은 인육을 먹을 때 타 부족의 주요 인사들도 초대하곤 했는데 한가지 재미난 사실은 포로를 죽이기 며칠전에 그에게 융성한 대 접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따금씩 그에게 자기 종족의 여성을 짝지워 주기도 했으며 그 결과 포로가 죽고난 뒤 종종 아기가 태어나기도 했다는 겁니다.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 그 아기의 어머니는 갓 나은 자식을 자신의 가장 가까운 친지에게 넘겨줘야 했고 이 친지는 그 아기를 꾸냐멩비라라는 예식을 치른 뒤 살해했습니다. 그뒤 제일 먼저, 아이를 낳은 어머니 가 그 아기의 인육을 먹도록 되있었는데 모성애의 본능이 부족의 전통보다 강했던 지라 그 어머니는 아기를 자기 부족이 양육해줄 것을 애원하기도 했고 때로는 아기를 데리고 숲으로 도망가곤 했다고 합니다.
남녀의 역할 분담
남녀 모두 목욕을 즐겨하는 등 청결한 위생 생활을 했으며 남자는 사냥과 전쟁에 동원되 었고 무기, 건축, 악기 생산 및 해먹 빨래도 남자 몫이었다고 합니다. 한편 여자는 가사일과 농업에 종사했으며 특히 사냥에서 잡은 동물의 운반은 여자의 몫이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