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타형식으로이루어진 기악음악의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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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17세기의 기악음악의 장르
1) 합주 협주곡
2) 즉흥연주와 변주곡
3) 초기의 고전 소나타
4) 교회 소나타
5) 실내 소나타
6) 탑 소나타
7) 독주 소나타
8) 바이올린 소나타
9) 합주 협주곡과 독주 협주곡

2. 근대 기악음악의 장르
1) 새로운 소나타의 탄생
2) 요한 슈타미츠
3) 만하임 크레센도
4) 바하의 클라비어 소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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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ista Sammartini)에게 사사한 글룩을 간과할 수 없다. 페르골레지의 음악에서와 같이 나폴리의 지방색이 하나의 특징으로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이것은 남부 독일에서, 또한 오스트리아, 보헤미아의 대표적 신경향 기악음악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며, 여기에서 더욱 순박한 선율이 창안되는 신선한 원천이 샘솟았던 것이다.
요한 슈타미츠
인습적인 표현의 한계를 무시했다는 점에서 그의 음악적 감각의 폭과 갑작스러운 대조로 말미암아, 보헤미아의 작곡가 요한 슈타미츠 (Johann Stamitz)는 선명하고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어. 가위 대조를 바탕으로 하는 소나타 알레그로와 그에 수반하는 느린 악장의 창시자라 할만하다.
1742년에 슈타미츠는 만하임으로 왔다 이곳을 중심 삼아 그와 그의 동료 예술가들, 그의 제자들은 그들의 양식을 재빠르고 효과적으로 퍼뜨렸기 때문에, 이때부터 교향악과 소나타에 있어서의 지도력은 독일로 이전되었다. 오페라만이 유일한 관심의 대상이 되어 가던 이태리는 물론, 파리도 완전히 기습을 당하여 어느 사이 독일과의 경주에서 멀리 뒤지고 있었다. 슈타미츠가 이미 역사적인 인물로 부각되어 가고 있을 때, 프랑스인들은 그의 얄팍한 모방자인 고섹 (Gossec)을 쳐주고 있었다.
새로운 양식의 음악에 있어서 교향악과 실내악은 처음부터 엄격히 분리되어 사용되고 있지는 않았다. 작품들은 2중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쓰여졌다 실내악용으로 간단한 편성. 그리고 여기에 관악기들을 추가하고 현악기들을 중복시켜 교향악에 사용하였다.
관악기를 취급하는데 있어서 태도의 변화도 보여 주었다. 낡은 수법에서는 관악기들-플롯, 오보, 트럼펫-은 독주악기로서, 총주 tutti에 대한 대조로써 사용되어 왔다. 이때부터는 이들도 다른 악기들의 역할에 동참하여 필요에 따라서는 옥타브 중복으로, 대부분의 경우 음색의 변화와 풍부함, 견고한 배경 등을 위하여 사용되게 되었다. 목관악기와 금관악기 중에서는 그래도 널리 4용된 호른의 결합-트럼펫은 이에 반해서 거의 소음의 악기 정도로 생각되었다-등이 교향악의 세계에서 독주악기로 현들의 대화에 다시 참여를 허락 받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을 필요로 하였다.
그러나 새 양식의 간판이라 할만한 것은 그 독특한 강약 dynamistic의 변화였다. 실상 음악가들은 오래 전부터 연주에 생기와 풍부함을 주기 위하여 강약을 도구 삼아 선율에 생명을 주는 방법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만하임 악파 사람들의 경우에는 극단의 ff와 극단의 pp사이에서 다양한 단계의 강약의 차이를 사용하였고, 갑작스런 강약의 대조는 그들 예술의 중요한 효과를 이루었는데, 그들은 이 것을 남용하기에 이르렀고, 그리하여 음악 본래의 액센트를 무단히 무시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레오폴드 모짜르트 * (Leopold Mozart)가 언젠가 그의 아들에게 경고하였던 '만하임 매너리즘' (Manheim Mannerism)인 것이다. (역주 : 볼프강 모짜르트의 아버지) .
만하임 크레센도
만하임 관현악의 극치는 현과 혼의 일단이 만들어내는 유명한 크레센도이었다 지속저음의 시대에 있어 합주 협주곡은 강한 부분과 약한 부분을 번갈아 등장시킴으로써, 즉 사용되는 한 개의 악기군과 다른 악기군의 명백히 제한된 음량을 교체시킴으로써, 그들 특유의 강약의 효과를 얻었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새 교향악에 있어서는 그것은 큰 소리에서 작은 소리에 이르는 등급으로 표시되었다. 현악기들은 한덩어리가 되어 주제의 한 부분을 점차적으로, 또는 급속하게 극히 작은 속 삭임에서 노호하는 소리에로 밀고 나갔으며, 여기서 생겨난 긴장은 절정부에서의 굉음에 이르러 그 극치를 이루었다.
이 새로운 감정의 고양된 세계는 이렇게 하여 기악음악에 들어오게 되었고, 이 새로운 소재, 효과를 자아내는 기존적인 수단은 오페라 서곡에 안성마춤인 것으로 생각되었으며, 이 야단스러운 기분은 연주회용 교향악에 무질서하게 남용되었다.
하이든이나 모짜르트는 훨씬 고상하고 조화된 그들의 작품에 이 만하임 크레센도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의 교향곡에 있어서의 강약의 변화는 아직도 합주 협주곡의 예를 좇아, 총주와 부드러운 기악군과의 교체로 이루어지는 흔적을 볼 수 있다.
만하임 사람들의 진정한 첫 계승자는 베토벤이었는데, 그의 격동하는 영혼과 엄청난 장력은 효과를 노리는 단순한 장난을 벗어나 처음으로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정당화 시켰던 것이다.
남부 독일인들, 특히 비엔나 악파 사람들은 야외 연주를 위한 야상곡 serenade과 카싸치온cassation을 씀으로써, 지속저음을 벗어난 대열에 서게 되었다. 그들은 작품 속에 간단한 선율의 맑고 신선한 샘물을 흘려보냈다.
바하의 클라비어 소나타
북부 독일인들은 이렇듯 인기있는 양식으로 걸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지도자이며 혁신자인 바하의 둘째 아들 엠마누엘 (Carl Philipp Emmanuel)을 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위대한 음악의 행진에 때를 놓치고 마는-브람스가 출현할 때까지-결과를 가져왔다. C.P.E. 바하가 제작해낸 작품들은 여러면에서 충실했지만, 특히 그는 클라비어 소나타를 통해서 최고로 영향을 발휘했다. 이 음악은 감각의 시대*의 화려한 증언이었다(역주 : Empfindsamer stil의 시대를 뜻함.)
그것은 한숨과 메아리와 눈물겨움으로 넘쳐 흐르는가 하면, 빠른 악장에서는 놀라움과 인습을 벗어난-그렇다고 지나치게 세련미가 흐르는 것이 아닌-섬세함으로 가득 차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재치와 익살과 독창성으로 현대까지도 그 누구의 추종도 불허하는 18세기의 가장 위대했던 이태리 기악 작곡가 스칼라티 (Domenico Scarlatti)의 제자라 할만하다. 바하에게 있어서 클라비코드 clavichord는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었으며, 그의 소나타는 무한한 용량을 가진 그릇이었다. 그는 여기에 교향곡까 협주곡에서 가져온 요소들을 도입했으며, 그의 기분에 따라 형식적인 것과 열정적인 것을 교체시켰다. 그의 감상성은 문학과 음악 공통의 '질풍 노도의 시대' (Sturm und Drang)의 병폐로써, 새로운 양식을 추구하는 작곡가들이 저항하여야 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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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12.25
  • 저작시기2002.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16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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