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유리공예란?
I. 유리의 역사
I. 서양의 유리공예
I. 동양의 유리공예
I. 한국의 유리공예
I. 세계의 현대유리공예
I. 유리산업의 현재와 전망
I. 우리나라의 현재
I. 유리의 역사
I. 서양의 유리공예
I. 동양의 유리공예
I. 한국의 유리공예
I. 세계의 현대유리공예
I. 유리산업의 현재와 전망
I. 우리나라의 현재
본문내용
리 구슬이 어두운 산길 도로 표지에 어김없이 사용되고, 현재 문명을 이룬 많은 연구가 렌즈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물며 지금은 모든 정보가 광케이블을 통해 전달되고 있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가깝기는 식탁 위에서 매일 만나는 친근한 집기들일 것이다. 이러한 용도는 기능뿐만이 아니라 미적인 요소를 포함하게 마련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 역사가 생기면서 지금은 예술품의 경지에 이르렀고 각 나라마다 가히 명품이라고 할 만한 브랜드를 갖게 되었으며 각자 자랑스럽게 국가를 대표한다. 이것은 국가 간의 선물에 단골로 사용되거나 왕실에서 혼수용으로 포함하기도 한다.
유럽의 이러한 업체는 대개 100년에서 200년 정도의 역사를 갖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바카라(Baccarat)와 라리크(Lalique), 돔(Daum)이 부동의 명성을 갖고 있으며, 미국은 스튜벤(Steuben), 영국은 워터포드(Waterford)를 대표로 내세우고 있다. 또한 유리의 강국 스웨덴은 일찍이 현대작가들을 참여시켜 코스타 보다(Kosta-Boda)및 오레포즈(Orrefors)라는 명브랜드를 갖고 있고, 핀란드는 이딸라(Ittala)라고하는 탁월한 디자인의 명품을 갖고 있다. 이탈리아의 베니니(Venini)는 수백년을 가계세습하는 전통적 기술력에 현대적 디자인을 멋지게 결합하여 비교적 젊은 나이(약80년)에 많은 명품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명품들은 결코 순탄한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른 것이 아니다. 수준 높은 미술성에도 불구하고 그 기업의 채산성은 항상 문제가 되어 끝내는 침몰위기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투자가의 인계를 받아 겨우 명성을 유지해오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반복되어서 명성의 이면에는 뜻밖에 매우 고달픈 연명의 기록이 있다. 앞으로 이러한 숙제가 풀리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수제품과는 달리, 한편으로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 시스템에 대한 열정은 꾸준히 발전되고 있다. 이러한 열정은 두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무언가 지금 것과는 다른 기능이 확대된 소재를 개발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물건을 만드는 방식 즉, 기계를 개발하는 것이다.
미국의 코닝(Corning)은 이미 TV브라운관을 세계최초로 성형한 기술력을 보유한 업체인데 1970년대에 파이렉스(Pyrex)라고 하는 얇고 강한 유리를 가지고 미국을 시작으로 결국은 전 세계 독점 판매를 하였다. 그 후로는 비전(Vinsion)이라고 하는 유리로 주방조리기구를 만들어 놀라게 하더니 지금은 코렐(corelle)이라고 하는 신소재를 주력 상품으로 하는데, 이는 외관상 도자기와 같으나 물성는 더 좋으면서도 도자기 만드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쉬운 공정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시장의 변화에 따라 생산규모를 쉽게 불릴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기술력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어쨌든 독점이다.
한편 유럽의 인크리스탈(Inn Crystal)은 자체적으로 개발한 기계를 이용해 스템웨어(Stemware)를 만드는 데 목적이 분명해서 수제품하고 똑같은 물건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수년전만 해도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것이었는데 이미 어쩔 수 없는 현실로 확실해졌으며 어찌 보면 제3의 새로운 양식의 가능성까지 보인다. 더구나 지금의 수제품은 가격이 오를 때까지 올라 생활집기로 사용하기에는 이미 한계를 넘은 느낌이다.
이처럼 대량 생산 판매를 전제로 한 기술적 노력은 전자의 수제품과는 달리 막대한 채산성을 동반할 뿐만 아니라 그 규모는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팽창할 수가 있고 일단 커지면 후발 업체가 그만큼 불리하다.
이러한 주변 환경을 토대로 유리산업의 미래를 전망하자면, 채산성이 확보된 기술집약형의 기계제품이 더욱 품질을 강화하며 점차 증가된 물량을 공급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 아끼고 있는 수제품도 그 영역을 꾸준히 내주어야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싼값에 좋은 물건을 쓰게 될 것이므로 이것은 조금도 아까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명품을 포함한, 아니 그 이외의 수제품, 또는 작은 유리 공장들은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 자명한 일이다. 당연히 지금까지 있어본 적도 없고, 생각지도 못하고 있는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 그것이 할 일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유리업계 종사자는 물론, 특히 현재 유리 공예에 뛰어든 많은 작가들이 숙고해야 할 일이다.
VIII. 우리나라의 현재
한국에서의 유리는 비록 역사는 짧지만 의외로 그 인구가 적지 않다.
해방, 그리고 6?25동란 이후 부산과 대구 일원에 비교적 많은 유리공장들이 있었고, 서울에서는 성수동과 수색, 등촌동 등 약간 외곽이라고 할만한 지역엔 어김없이 유리공장들이 모여 있었다. 이때의 유리공장은 지붕은 있으나 벽은 없고 흙바닥에는 어지럽게 도구가 널려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도저히 좋게 보아 줄 수 없는 작업자들의 고질적 습관이 그대로 통용되던 시대였다.
70년대 들어 모든 산업에 활기가 돌 때 유리산업 또한 호황을 맞았는데, 특이하게도 백색 반투명 유리는 모든 가정의 식탁을 채우느라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물론 이것은 성장 과도기의 일시적 현상이다. 그러나 80년대 들어서면서 어느 정도 양이 충족되자 소비자는 품질에 대해 생각할 여유를 갖게 되었고 유리업계는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저항을 받게 되었다. 반면에 도자기업계는 선진국 수출을 경험하고 있었으므로 품질, 특히 디자인에 상당한 진보를 보이고 있었다.
그 차이는 시장에서 당연한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유리업계는 불황을 겪으면서도 그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조차 동원하지 못했다. 안다고 해도 그것은 꾸준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더구나 이제는 시장개방이 진전되면서 전세계의 제품들이 차별 없이 소비자에게 제공된다. 이미 이를 경험한 소비자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수출 봉제품의 보세 시장 효과로 경험해 보지 않았던가! 앞에서도 언급했듯 한국 유리 산업의 미래는 유리제품의 경쟁력을 어디서 어떻게 창출하느냐 하는 업계의 노력이 우선적으로 요구되며, 이를 토대로 한 관련 학계의 연구와 정부의 관심 등 다각적인 노력이 동원되어야 하겠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가깝기는 식탁 위에서 매일 만나는 친근한 집기들일 것이다. 이러한 용도는 기능뿐만이 아니라 미적인 요소를 포함하게 마련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 역사가 생기면서 지금은 예술품의 경지에 이르렀고 각 나라마다 가히 명품이라고 할 만한 브랜드를 갖게 되었으며 각자 자랑스럽게 국가를 대표한다. 이것은 국가 간의 선물에 단골로 사용되거나 왕실에서 혼수용으로 포함하기도 한다.
유럽의 이러한 업체는 대개 100년에서 200년 정도의 역사를 갖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바카라(Baccarat)와 라리크(Lalique), 돔(Daum)이 부동의 명성을 갖고 있으며, 미국은 스튜벤(Steuben), 영국은 워터포드(Waterford)를 대표로 내세우고 있다. 또한 유리의 강국 스웨덴은 일찍이 현대작가들을 참여시켜 코스타 보다(Kosta-Boda)및 오레포즈(Orrefors)라는 명브랜드를 갖고 있고, 핀란드는 이딸라(Ittala)라고하는 탁월한 디자인의 명품을 갖고 있다. 이탈리아의 베니니(Venini)는 수백년을 가계세습하는 전통적 기술력에 현대적 디자인을 멋지게 결합하여 비교적 젊은 나이(약80년)에 많은 명품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명품들은 결코 순탄한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른 것이 아니다. 수준 높은 미술성에도 불구하고 그 기업의 채산성은 항상 문제가 되어 끝내는 침몰위기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투자가의 인계를 받아 겨우 명성을 유지해오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반복되어서 명성의 이면에는 뜻밖에 매우 고달픈 연명의 기록이 있다. 앞으로 이러한 숙제가 풀리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수제품과는 달리, 한편으로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 시스템에 대한 열정은 꾸준히 발전되고 있다. 이러한 열정은 두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무언가 지금 것과는 다른 기능이 확대된 소재를 개발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물건을 만드는 방식 즉, 기계를 개발하는 것이다.
미국의 코닝(Corning)은 이미 TV브라운관을 세계최초로 성형한 기술력을 보유한 업체인데 1970년대에 파이렉스(Pyrex)라고 하는 얇고 강한 유리를 가지고 미국을 시작으로 결국은 전 세계 독점 판매를 하였다. 그 후로는 비전(Vinsion)이라고 하는 유리로 주방조리기구를 만들어 놀라게 하더니 지금은 코렐(corelle)이라고 하는 신소재를 주력 상품으로 하는데, 이는 외관상 도자기와 같으나 물성는 더 좋으면서도 도자기 만드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쉬운 공정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시장의 변화에 따라 생산규모를 쉽게 불릴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기술력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어쨌든 독점이다.
한편 유럽의 인크리스탈(Inn Crystal)은 자체적으로 개발한 기계를 이용해 스템웨어(Stemware)를 만드는 데 목적이 분명해서 수제품하고 똑같은 물건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수년전만 해도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것이었는데 이미 어쩔 수 없는 현실로 확실해졌으며 어찌 보면 제3의 새로운 양식의 가능성까지 보인다. 더구나 지금의 수제품은 가격이 오를 때까지 올라 생활집기로 사용하기에는 이미 한계를 넘은 느낌이다.
이처럼 대량 생산 판매를 전제로 한 기술적 노력은 전자의 수제품과는 달리 막대한 채산성을 동반할 뿐만 아니라 그 규모는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팽창할 수가 있고 일단 커지면 후발 업체가 그만큼 불리하다.
이러한 주변 환경을 토대로 유리산업의 미래를 전망하자면, 채산성이 확보된 기술집약형의 기계제품이 더욱 품질을 강화하며 점차 증가된 물량을 공급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 아끼고 있는 수제품도 그 영역을 꾸준히 내주어야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싼값에 좋은 물건을 쓰게 될 것이므로 이것은 조금도 아까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명품을 포함한, 아니 그 이외의 수제품, 또는 작은 유리 공장들은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 자명한 일이다. 당연히 지금까지 있어본 적도 없고, 생각지도 못하고 있는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 그것이 할 일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유리업계 종사자는 물론, 특히 현재 유리 공예에 뛰어든 많은 작가들이 숙고해야 할 일이다.
VIII. 우리나라의 현재
한국에서의 유리는 비록 역사는 짧지만 의외로 그 인구가 적지 않다.
해방, 그리고 6?25동란 이후 부산과 대구 일원에 비교적 많은 유리공장들이 있었고, 서울에서는 성수동과 수색, 등촌동 등 약간 외곽이라고 할만한 지역엔 어김없이 유리공장들이 모여 있었다. 이때의 유리공장은 지붕은 있으나 벽은 없고 흙바닥에는 어지럽게 도구가 널려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도저히 좋게 보아 줄 수 없는 작업자들의 고질적 습관이 그대로 통용되던 시대였다.
70년대 들어 모든 산업에 활기가 돌 때 유리산업 또한 호황을 맞았는데, 특이하게도 백색 반투명 유리는 모든 가정의 식탁을 채우느라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물론 이것은 성장 과도기의 일시적 현상이다. 그러나 80년대 들어서면서 어느 정도 양이 충족되자 소비자는 품질에 대해 생각할 여유를 갖게 되었고 유리업계는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저항을 받게 되었다. 반면에 도자기업계는 선진국 수출을 경험하고 있었으므로 품질, 특히 디자인에 상당한 진보를 보이고 있었다.
그 차이는 시장에서 당연한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유리업계는 불황을 겪으면서도 그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조차 동원하지 못했다. 안다고 해도 그것은 꾸준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더구나 이제는 시장개방이 진전되면서 전세계의 제품들이 차별 없이 소비자에게 제공된다. 이미 이를 경험한 소비자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수출 봉제품의 보세 시장 효과로 경험해 보지 않았던가! 앞에서도 언급했듯 한국 유리 산업의 미래는 유리제품의 경쟁력을 어디서 어떻게 창출하느냐 하는 업계의 노력이 우선적으로 요구되며, 이를 토대로 한 관련 학계의 연구와 정부의 관심 등 다각적인 노력이 동원되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