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답사 기행문] 경주를 답사하고 유적지와 특징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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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대릉원
2. 미추왕릉
3. 미추왕의 호국에 관련된 설화
4. 천마총
5. 천마도
6. 황남대총
7. 첨성대
8. 안압지
9. 황룡사지
10. 황룡사9층 목탑
11. 분황사
12. 분황사석탑

@ 참고자료.

본문내용

절에는 솔거(率居)가 그린 관음 보살상(觀音菩薩像)이 있었고, 좌전(左殿) 북쪽 벽에 있었던 천수대비(千手大悲) 그림은 영험이 있기로 유명했다. 향가 중 <도천수대비가(禱千手大悲歌)>에 나오는 천수대비가 바로 분황사의 천수대비인 것이다. 그 뒤 몽고의 침략과 임진왜란 등으로 이 절은 크게 손상을 입었으며, 자세한 역사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분황사석탑(芬皇寺石塔)
현재 탑신부는 3층까지 남아 있으며 회흑색의 안산암(安山巖)을 작은 벽돌모양으로 잘라서 쌓았는데 위의 폭이 아래 폭보다 약간 좁다. 탑신 4면에는 입구가 뚫려져 있는 감실(龕室)을 개설하고, 입구 좌우에 거의 원각(圓刻)에 가까운 인왕상(仁王像)을 배치하였으며 두짝의 돌문을 달아 여닫게 하였다. 인왕산은 모두 8구로서 조각의 형태는 인간화가 꽤 많이 진전되었으나 얼굴이나 신체 등에서 형태의 불균형한 면을 보이는 등 추상화된 면이 남아 있다. 지금 감실 안에는 머리가 없는 불상을 안치하고 있으나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초층탑신 4면에 감실을 개설 한 예는 미륵사지석탑(彌勒寺址石塔)에서 초층탑신(初層塔身) 4면에 통로를 개설하고 그 중심에 찰주(擦柱)를 세운 점과 상통하며, 이러한 형식은 목탑에서 초층탑신 내부가 공간이 되고 4면에 내부로 통하는 문을 개설하는 형식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층과 3층 탑신은 초층에 비해 높이가 현저하게 줄어서 장중한 감을 준다.
옥개석(屋蓋石)은 벽돌 한 장의 두께로 처마를 삼고 아래위에 탑신을 향하여 감축되는 받침과 낙수면(落水面) 층단이 있다. 받침은 초층부터 6단, 6단, 5단이며 낙수면 층단은 초층과 2층이 10단이고 3층 3면은 층단으로 방추형을 만들고 있으며, 그 정상에는 화강석으로 된 앙화만 남아있다. <동경잡기(東京雜記)>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왜병에 의하여 허물어지고 그 뒤 분황사의 스님들이 개축하려다가 또 허물어뜨렸다고 하나 그 실상은 알 수 없다. 1915년에는 일본인들이 해체, 수리하였는데 현재의 상태는 이때의 현상대로 복원한 것이다. 이 때 제2층과 제3층 사이에서 석함(石函)속에 장치되었던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가 발견되었다. 각종 옥류(玉類)와 패류(貝類), 금, 은제의 바늘, 침통, 가위등과 함께 숭녕통보(崇寧通寶)·상평오수전(常平五銖錢) 등 고전이 발견되어 고려 숙종 내지 예종 연간에 개탑되었음을 말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참고자료: 역사스페셜..(책)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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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3.05.22
  • 저작시기2003.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23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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