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들어가면서
2.설득의 심리학이란?
3.첫 번째 설득의 원칙 - 상호성의 원칙
4.두 번째 원칙 - 호감의 원칙
5.세 번째 원칙 - 사회적 증거의 원칙
6.네 번째 원칙 - 권위의 원칙
7.다섯 번째 원칙 - 희귀성의 원칙
8.여섯 번째 원칙 - 일관성의 원칙
9.마치면서
2.설득의 심리학이란?
3.첫 번째 설득의 원칙 - 상호성의 원칙
4.두 번째 원칙 - 호감의 원칙
5.세 번째 원칙 - 사회적 증거의 원칙
6.네 번째 원칙 - 권위의 원칙
7.다섯 번째 원칙 - 희귀성의 원칙
8.여섯 번째 원칙 - 일관성의 원칙
9.마치면서
본문내용
발휘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희귀성은 우리의 피를 뜨겁게 하고, 눈을 멀게 하고, 또 감정적으로 만든다. 그런 상태에서는 이성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즉, 본능적 감정→ 이성을 마비→ 비이성적 행동(불필요한 물건 구매, 저가의 물품을 고가로 구매)
따라서 우리는 희귀성의 영향력에 따라 어떤 대상에 대한 강렬한 감정적 반응이 느껴지면, 우리는 오히려 그것을 신호 삼아 우리의 감정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해야한다. 그 감정의 소용돌이가 지나가고 난 뒤 우리는 이성적 관점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그후에 우리는 그 대상을 원했던 최초의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의 답이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서라면 희귀성의 정도를 따져 얼마만큼의 투자가 적당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을 해야한다. 또한 우리의 답이 그 대상의 기능이라면 그것이 희귀한 것이든 아니면 흔한 것이든 상관없이 동일하다는 사실을 꼭 명심해야 한다.
●여섯 번째 원칙 - 일관성의 원칙
이는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다음과 같은 말에서 요약된다.
'내가 한 말은 꼭 책임진다.(일관성 있게 행동한다.)
이는 우리가 지금까지 행동해 온 것과 일관되게(혹은 일관되게 보이도록) 행동하려는, 거의 맹목적인 욕구다. 일단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거나, 입장을 취하게 되면, 그러한 선택이나 입장과 일치되게 행동해야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그러한 부담감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이전에 취한 선택이나 입장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일관성에 쉬게 빠지게 되는 것은 스스로의 믿음이외에도 사회적인 가치 때문에 그럴 경우가 높다. 우유부단한 사람, 의지가 약한 사람,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은 이중인격자라는 심지어는 정신병자라고까지 불리기도 한다. 일관성이야말로 논리, 이성, 안전성, 그리고 정직성의 핵심인 것이다.
이러한 일관성의 원칙은 이미 우리 생활에도 뿌리 박혀 있다. 우리가 평소에 시험공부를 하거나 혹은 어떤 운동을 할 때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손으로 쓴다. 손으로 적어둔다는 것, 이는 굉장한 힘을 발휘하여 사람들이 그 행동을 직접 실천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이렇게 보았을 때 일관성이란 점은 그것을 이용하려는 불로소득자들의 의도를 구분할 능력만 갖추게 되면 오히려 우리에게 무한한 편의를 제공해준다. 왜냐하면 이런 일관성을 생활에서 없애버린다면 우리는 바로 앞에 닥친 모든 일에 대해 매번 심사숙고하여 의사결정을 내리고 또 내리고 해야한다.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루가 25시간이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일일이 그 많은 사소한 일에 대해서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일관성의 원칙이란 것도 역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인간의 필수선택적인 요소이며 그것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불로소득자들의 '미끼'에 걸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마치면서
현대의 과학 기술은 우리가 뒤따라가기 힘들 정도의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우리의 지적능력으로는 그 많은 정보들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정보의 폭발로 인해 현대인의 삶은 점점 하등동물처럼 자동화 된 면모를 보여주고 그 자동화된 모습을 이끌어내는 것이 여테까지 말한 6가지 원칙이다.
정말 인간이 이처럼 원시적인 방법으로서의 선택을 강요받고 항상 그렇게 당하고만 있을까?
이런 원시적인 방법으로서의 선택은 그러한 방법이 올바른 결론으로만 유도해 준다면 오히려 그것이 바람직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유발기제를 사용에 우리로부터 불로소득을 챙기는 자들이 얼마나 기승을 부릴 지 걱정이 앞선다. 속임수를 잘 사용하려면 전보다 더욱 체계적이고 정교화 된 기술이 요구되기 때문에 이런 설득 전문가들로부터 우리를 방호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이익추구를 위해 볼모로 삼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신뢰성이라면 그건 참을 수 없다. 불로소득자들과 전쟁을 벌여 그들이 더 이상 그 원칙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싸워야 한다. 개인적인 즐거움(성취감)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신뢰성 유지의 차원에서라도 말이다.
마지막으로 현대인은 바보가 아니란 말을 하고 싶다. 왜냐하면 인터넷의 보급으로 개인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무한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뉴턴이나 아인슈타인보다도 우리는 더 똑똑해질 수 있다. 바로 정보 획득의 용이성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무한하고 유익한 정보를 버리고 단순해지지 말아야 한다. 언제나 깨어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즉, 본능적 감정→ 이성을 마비→ 비이성적 행동(불필요한 물건 구매, 저가의 물품을 고가로 구매)
따라서 우리는 희귀성의 영향력에 따라 어떤 대상에 대한 강렬한 감정적 반응이 느껴지면, 우리는 오히려 그것을 신호 삼아 우리의 감정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해야한다. 그 감정의 소용돌이가 지나가고 난 뒤 우리는 이성적 관점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그후에 우리는 그 대상을 원했던 최초의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의 답이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서라면 희귀성의 정도를 따져 얼마만큼의 투자가 적당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을 해야한다. 또한 우리의 답이 그 대상의 기능이라면 그것이 희귀한 것이든 아니면 흔한 것이든 상관없이 동일하다는 사실을 꼭 명심해야 한다.
●여섯 번째 원칙 - 일관성의 원칙
이는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다음과 같은 말에서 요약된다.
'내가 한 말은 꼭 책임진다.(일관성 있게 행동한다.)
이는 우리가 지금까지 행동해 온 것과 일관되게(혹은 일관되게 보이도록) 행동하려는, 거의 맹목적인 욕구다. 일단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거나, 입장을 취하게 되면, 그러한 선택이나 입장과 일치되게 행동해야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그러한 부담감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이전에 취한 선택이나 입장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일관성에 쉬게 빠지게 되는 것은 스스로의 믿음이외에도 사회적인 가치 때문에 그럴 경우가 높다. 우유부단한 사람, 의지가 약한 사람,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은 이중인격자라는 심지어는 정신병자라고까지 불리기도 한다. 일관성이야말로 논리, 이성, 안전성, 그리고 정직성의 핵심인 것이다.
이러한 일관성의 원칙은 이미 우리 생활에도 뿌리 박혀 있다. 우리가 평소에 시험공부를 하거나 혹은 어떤 운동을 할 때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손으로 쓴다. 손으로 적어둔다는 것, 이는 굉장한 힘을 발휘하여 사람들이 그 행동을 직접 실천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이렇게 보았을 때 일관성이란 점은 그것을 이용하려는 불로소득자들의 의도를 구분할 능력만 갖추게 되면 오히려 우리에게 무한한 편의를 제공해준다. 왜냐하면 이런 일관성을 생활에서 없애버린다면 우리는 바로 앞에 닥친 모든 일에 대해 매번 심사숙고하여 의사결정을 내리고 또 내리고 해야한다.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루가 25시간이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일일이 그 많은 사소한 일에 대해서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일관성의 원칙이란 것도 역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인간의 필수선택적인 요소이며 그것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불로소득자들의 '미끼'에 걸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마치면서
현대의 과학 기술은 우리가 뒤따라가기 힘들 정도의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우리의 지적능력으로는 그 많은 정보들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정보의 폭발로 인해 현대인의 삶은 점점 하등동물처럼 자동화 된 면모를 보여주고 그 자동화된 모습을 이끌어내는 것이 여테까지 말한 6가지 원칙이다.
정말 인간이 이처럼 원시적인 방법으로서의 선택을 강요받고 항상 그렇게 당하고만 있을까?
이런 원시적인 방법으로서의 선택은 그러한 방법이 올바른 결론으로만 유도해 준다면 오히려 그것이 바람직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유발기제를 사용에 우리로부터 불로소득을 챙기는 자들이 얼마나 기승을 부릴 지 걱정이 앞선다. 속임수를 잘 사용하려면 전보다 더욱 체계적이고 정교화 된 기술이 요구되기 때문에 이런 설득 전문가들로부터 우리를 방호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이익추구를 위해 볼모로 삼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신뢰성이라면 그건 참을 수 없다. 불로소득자들과 전쟁을 벌여 그들이 더 이상 그 원칙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싸워야 한다. 개인적인 즐거움(성취감)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신뢰성 유지의 차원에서라도 말이다.
마지막으로 현대인은 바보가 아니란 말을 하고 싶다. 왜냐하면 인터넷의 보급으로 개인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무한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뉴턴이나 아인슈타인보다도 우리는 더 똑똑해질 수 있다. 바로 정보 획득의 용이성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무한하고 유익한 정보를 버리고 단순해지지 말아야 한다. 언제나 깨어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