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기이 제 1>
<기이 제 2>
<기이 제 2>
본문내용
에 순응하는 것으로 나타내어 비참함을 찾아 볼 수 없게 하였다. 후삼국시대의 혼란과 신라가 몰락하여 고려 태조에게 귀순하는 역사적 사실을 전하고 있다.
·남부여, 전백제 , 북부여
백제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 이다. 백제는 옛 국호는 남부여라 하였다. 주몽이 고구려 왕이되어 온조와 비류를 낳았으나 유리왕이 찾아와 용납되지 못할 까 염려하여 남쪽으로 떠나니 비류는 미추홀에 가서 살고 온조는 위례성에 가서 도읍을 정하였다. 후에 나라가 귀속되어 백제로 이름을 고쳤다. 성왕때 수도를 소부리로 옮기고 남부여라 하였고 의자왕때까지 존재하였다.
·무왕
삼국유사에는 재치있는 머리로 마를 캐어 살아가는 신분으로서 한 나라(신라)의 공주와 결혼하여 백제 30대 무왕이된 서동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어머니가 용과 관계를 맺고태어 났다고 전해지는 무왕은 어릴적 이름은 서동이다. 그는 매우 총명했는데 신라 공주의 아름다움을 익히 듣고 아이들에게 맛을 나누어 주며 선화공주를 모함하는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이로서 궁에서 쫑겨난 선화공주를 모시고간 서동은 구릉처럼 쌓여있는 금들의 위치를 선화공주에게 알리고 이것을 궁에 옮긴다. 그리하여 왕의 신임을 사 무왕에 자리에 오르게 된다.
·후백제의 견훤
견훤은 탄생에 관한 설이 많은데 그의 아버지가 농사꾼이었따는 것과 왕손이라는 것, 마지막으로 신령과 관계하여 나온 아이라는 이야기 세가지가 있다. 그중 마지막 이야기를 들자면 밤마다 자주색 옷을 입은 남자를 실을 꿰어 따라가 보니 그 실이 큰 지렁이 허리에 꿰어 있었다고 한다. 그 지렁이와의 관계에서 낳은 아이가 견훤이라는 이야기 이다. 견훤의 영롱함과 비범함이 신라에 반역을 하고 후백제의 왕이 되는 과정을 이야기 해주고 있다. 그러나 견훤이 후에 아들에게 감금당해 태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까지는 신라에 중심을 두고 역사를 출이해 나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고려의 정당성을 부여받게 되었을 것이며, 저자인 일연이 고려의 승려이었다는 점에서 이렇게 그려진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락국기
육가야의 임금의 탄생배경이 대 가야 위주로 서술되어 있다. 가야에 대한 자료가 별로 없는 이 시점에서 가야사에 대한 유일한 사료라고 보여진다.
기이편의 가장 마지막 설화는 가야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는 가야사에 대한 유일한 사료로 매우 중요시 되어지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구지가가 나오는 부분이다. 나라도 없던 떠에 아홉간들이 추장이 되어 백성을 통솔하였는데 하늘에서 구지가가 들려오게 된다. 이에 그대로 하나니 보라색 노끈이 드리워져 있어 그 밑을 찾아보니 붉은 보자기로 싼 금합안에 황금알 여섯 개가 있었다. 십여일후 알이 사내아이로 합쳐졌다. 장성하여 왕위에 오르니 이름을 수로라 하고 나라를 대 가락 (대가야)라고 하였으며 가락국이라고도 일컬었다. 탈해왕과 경쟁하게 되었으나 탈해가 지고 달아났으며 하늘의 뜻으로 왕후를 맞이하고 백성을 사랑하였다. 왕후가 죽고 158세의 나이로 죽었다.
<감상>
삼국 유사를 읽다보면 그 이야기는 각각의 독자적인 이야기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서동의 이야기, 주몽의 이야기, 단군의 이야기, .......그러나 실제적으로 그 안을 들어가보면 한반도 건국 최초부터의 역사를 서술한 것이다. 단지 그 역사를 역사적으로만 기술한 것이아니라 문학적 요소를 가미하여서 설화적 신화적으로 만들어서 쓴 것이다. 각각의 이야기에는 그 각각의 개성을 담고 있고, 그 시대상들을 반영하고 있지만, 그것을 정리하여 읽게 되면 이야기들은 순차성을 가지고 연계성을 가지고 진행되는 것이다. 삼국 유사를 읽을 떠, 각각의 이야기의 흥미나, 이해도 중요하지만 이것들의 상관관계를 가지고 구비문학으로서의, 신화적 요소로서의 특징을 살펴서 읽는다면 문학적 이해 뿐만 아니라 역사적 이해도 겸비할 수 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
삼국 사기에는 정사만을 싣고 있다. 정사란 쓰여진 그 자체, 증거를 가진 이야기만을 싣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삼국 유사는 구비문학들을 모으고 모아서 쓰여진 책이다. 문자 이전의 시대를 인정하고 구비문학을 문학의 범주로 인정하여 쓰여진 책인 것이다. 구비문학은 민중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문학이다. 구비문학을 하나의 역사로 인정하고, 문학으로 인정하는 것은 민중들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더 깊은 문학의 탐구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구비문학은 말로 존재하기 때문에 시간적이고 일회적(一回的)이며, 그것이 거듭 말해지면 이미 다른 작품이 된다. 말로 전달되므로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대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전달이 가능하며 대량생산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말로 전승된다는 것은 말로 전해 들은 내용이 기억되어 다시 말로 재연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구비문학 안에서는 그대로의 보존은 있을 수 없고 전승이 가능할 뿐이며, 이 전승은 반드시 변화를 내포한 보존이다. 그러한 구비문학을 글로서 정착 시킴으로서 구비문학으로서의 가치도 인정하고, 그 보존을 한 것이 삼국 유사라 말하고 싶다. 또한 구비문학은 공동의 관심을 만족시켜 준다는 점에서 보편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삼국 유사는 그 구비문학의 보편성을 더욱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 시대의 바램, 그 시대의 소망을 잘 나타난 이야기들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삼국유사는 우리의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될 책이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삼국사기에서 고의로 삭제하였거나, 누락된 여러가지 사실들을 수록하고 있다. 또한 삼국유사는 우리의 오래되고 자랑스러운 유산 중의 하나인 향가를 14수나 싣고 있어 옛날의 사회상과 문화에 대해 알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제공해 준다. 이 책은 우리에게 우리 나라를 이해하고 더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 참고 자료 *
·『삼국유사』일연 지음 / 김원중 옮김 -을유문화사-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삼국유사』 고운기지음, -현암사-
·두산대백과
· 두산 Encyber백과
·http://100.naver.com/100.php?srchmode=0&id=86072&adflag=1
·남부여, 전백제 , 북부여
백제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 이다. 백제는 옛 국호는 남부여라 하였다. 주몽이 고구려 왕이되어 온조와 비류를 낳았으나 유리왕이 찾아와 용납되지 못할 까 염려하여 남쪽으로 떠나니 비류는 미추홀에 가서 살고 온조는 위례성에 가서 도읍을 정하였다. 후에 나라가 귀속되어 백제로 이름을 고쳤다. 성왕때 수도를 소부리로 옮기고 남부여라 하였고 의자왕때까지 존재하였다.
·무왕
삼국유사에는 재치있는 머리로 마를 캐어 살아가는 신분으로서 한 나라(신라)의 공주와 결혼하여 백제 30대 무왕이된 서동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어머니가 용과 관계를 맺고태어 났다고 전해지는 무왕은 어릴적 이름은 서동이다. 그는 매우 총명했는데 신라 공주의 아름다움을 익히 듣고 아이들에게 맛을 나누어 주며 선화공주를 모함하는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이로서 궁에서 쫑겨난 선화공주를 모시고간 서동은 구릉처럼 쌓여있는 금들의 위치를 선화공주에게 알리고 이것을 궁에 옮긴다. 그리하여 왕의 신임을 사 무왕에 자리에 오르게 된다.
·후백제의 견훤
견훤은 탄생에 관한 설이 많은데 그의 아버지가 농사꾼이었따는 것과 왕손이라는 것, 마지막으로 신령과 관계하여 나온 아이라는 이야기 세가지가 있다. 그중 마지막 이야기를 들자면 밤마다 자주색 옷을 입은 남자를 실을 꿰어 따라가 보니 그 실이 큰 지렁이 허리에 꿰어 있었다고 한다. 그 지렁이와의 관계에서 낳은 아이가 견훤이라는 이야기 이다. 견훤의 영롱함과 비범함이 신라에 반역을 하고 후백제의 왕이 되는 과정을 이야기 해주고 있다. 그러나 견훤이 후에 아들에게 감금당해 태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까지는 신라에 중심을 두고 역사를 출이해 나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고려의 정당성을 부여받게 되었을 것이며, 저자인 일연이 고려의 승려이었다는 점에서 이렇게 그려진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락국기
육가야의 임금의 탄생배경이 대 가야 위주로 서술되어 있다. 가야에 대한 자료가 별로 없는 이 시점에서 가야사에 대한 유일한 사료라고 보여진다.
기이편의 가장 마지막 설화는 가야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는 가야사에 대한 유일한 사료로 매우 중요시 되어지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구지가가 나오는 부분이다. 나라도 없던 떠에 아홉간들이 추장이 되어 백성을 통솔하였는데 하늘에서 구지가가 들려오게 된다. 이에 그대로 하나니 보라색 노끈이 드리워져 있어 그 밑을 찾아보니 붉은 보자기로 싼 금합안에 황금알 여섯 개가 있었다. 십여일후 알이 사내아이로 합쳐졌다. 장성하여 왕위에 오르니 이름을 수로라 하고 나라를 대 가락 (대가야)라고 하였으며 가락국이라고도 일컬었다. 탈해왕과 경쟁하게 되었으나 탈해가 지고 달아났으며 하늘의 뜻으로 왕후를 맞이하고 백성을 사랑하였다. 왕후가 죽고 158세의 나이로 죽었다.
<감상>
삼국 유사를 읽다보면 그 이야기는 각각의 독자적인 이야기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서동의 이야기, 주몽의 이야기, 단군의 이야기, .......그러나 실제적으로 그 안을 들어가보면 한반도 건국 최초부터의 역사를 서술한 것이다. 단지 그 역사를 역사적으로만 기술한 것이아니라 문학적 요소를 가미하여서 설화적 신화적으로 만들어서 쓴 것이다. 각각의 이야기에는 그 각각의 개성을 담고 있고, 그 시대상들을 반영하고 있지만, 그것을 정리하여 읽게 되면 이야기들은 순차성을 가지고 연계성을 가지고 진행되는 것이다. 삼국 유사를 읽을 떠, 각각의 이야기의 흥미나, 이해도 중요하지만 이것들의 상관관계를 가지고 구비문학으로서의, 신화적 요소로서의 특징을 살펴서 읽는다면 문학적 이해 뿐만 아니라 역사적 이해도 겸비할 수 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
삼국 사기에는 정사만을 싣고 있다. 정사란 쓰여진 그 자체, 증거를 가진 이야기만을 싣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삼국 유사는 구비문학들을 모으고 모아서 쓰여진 책이다. 문자 이전의 시대를 인정하고 구비문학을 문학의 범주로 인정하여 쓰여진 책인 것이다. 구비문학은 민중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문학이다. 구비문학을 하나의 역사로 인정하고, 문학으로 인정하는 것은 민중들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더 깊은 문학의 탐구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구비문학은 말로 존재하기 때문에 시간적이고 일회적(一回的)이며, 그것이 거듭 말해지면 이미 다른 작품이 된다. 말로 전달되므로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대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전달이 가능하며 대량생산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말로 전승된다는 것은 말로 전해 들은 내용이 기억되어 다시 말로 재연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구비문학 안에서는 그대로의 보존은 있을 수 없고 전승이 가능할 뿐이며, 이 전승은 반드시 변화를 내포한 보존이다. 그러한 구비문학을 글로서 정착 시킴으로서 구비문학으로서의 가치도 인정하고, 그 보존을 한 것이 삼국 유사라 말하고 싶다. 또한 구비문학은 공동의 관심을 만족시켜 준다는 점에서 보편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삼국 유사는 그 구비문학의 보편성을 더욱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 시대의 바램, 그 시대의 소망을 잘 나타난 이야기들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삼국유사는 우리의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될 책이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삼국사기에서 고의로 삭제하였거나, 누락된 여러가지 사실들을 수록하고 있다. 또한 삼국유사는 우리의 오래되고 자랑스러운 유산 중의 하나인 향가를 14수나 싣고 있어 옛날의 사회상과 문화에 대해 알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제공해 준다. 이 책은 우리에게 우리 나라를 이해하고 더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 참고 자료 *
·『삼국유사』일연 지음 / 김원중 옮김 -을유문화사-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삼국유사』 고운기지음, -현암사-
·두산대백과
· 두산 Encyber백과
·http://100.naver.com/100.php?srchmode=0&id=86072&adflag=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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