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조선사회의 특징과 교육
1.역사적 배경
2. 조선의 교육제도
Ⅱ.조선시대의 교육기관
1. 관학
2. 사학
Ⅲ. 교육법규와 규범
1. 경국대전의 학교
2. 학령
3. 권학사목
4. 구재학규
5. 진학절목
6. 경외학교절목
7. 학교사목
8. 학교모범
9. 학제조건
10. 학교절목
11. 제강절목
12. 원점절목
13. 경학사목
Ⅳ. 과거제도
1. 조선시대의 과거 제도
2. 과거제도의 성격
3. 과거제도의 영향
4. 과거제도가 교육에 미친 영향과 그 폐해
Ⅴ. 실학사상기의 특징과 교육사상
1. 실학사상기의 시대적 상황
2. 실학사상의 주요 내용
3. 대표적 실학사상가의 교육사상
4. 실학사상의 교육사적 의의
참고자료
1.역사적 배경
2. 조선의 교육제도
Ⅱ.조선시대의 교육기관
1. 관학
2. 사학
Ⅲ. 교육법규와 규범
1. 경국대전의 학교
2. 학령
3. 권학사목
4. 구재학규
5. 진학절목
6. 경외학교절목
7. 학교사목
8. 학교모범
9. 학제조건
10. 학교절목
11. 제강절목
12. 원점절목
13. 경학사목
Ⅳ. 과거제도
1. 조선시대의 과거 제도
2. 과거제도의 성격
3. 과거제도의 영향
4. 과거제도가 교육에 미친 영향과 그 폐해
Ⅴ. 실학사상기의 특징과 교육사상
1. 실학사상기의 시대적 상황
2. 실학사상의 주요 내용
3. 대표적 실학사상가의 교육사상
4. 실학사상의 교육사적 의의
참고자료
본문내용
반계 유형원(1622-1673)
첫째, 종래의 과거제도를 폐지하고 학교교육을 통하여 능력 있는 인물을 관리로 등용 할 것을 주장하였다.
둘째, 근대적 학제의 도입을 제안하였다. 즉, 서울에는 태학·중학·사학을 설치하고, 각 도의 감영에는 영학(營學)을 설치하고, 군(주)·현에는 읍학을 설치하고, 서울의 각 방에 는 방상, 주·현의 향에는 향상을 설치할 것을 주장했다. 이는 태학-중학·영학-사학· 읍학-방상·향상의 체계로 종래보다 체계화된 단계별 학제안(學制案)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태학을 마친 자는 만 1년간 진사원에서 견습케 한 후에 차등을 정하여 관직에 등용해 야 한다고 했다.
*그가 주장한 학제*
(중앙) 방상(坊庠) 사학(四學) 중학(中學)
태학(太學) (유능한 교관필요성)
(지방) 향상(鄕庠) 읍학(邑學) 영학(營學)
셋째, 학교 입학 자격을 사대부에만 국한하지 말고, 서얼과 서민의 자제에게도 부여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넷째, 사대부의 관직 세습화를 억제하고 인재 등용의 기준을 문벌보다 개인의 능력에 두어야 한다고 하였으며, 학교교육에서도 문벌보다는 나이와 능력에 따라 차례를 정해 야한다고 주장하였다.
다섯째, 이상적 교육적 인간상은 덕행인(德行人)과 능력인(能力人)으로 보고, 신분을 초 월하여 교육의 기회를 균등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2) 성호 이익(1681-1763)
첫째, 민족 주체의식을 강조하여 교육과정에 [퇴계집]과 [동국사]를 포함시켜야 한다 고 강조했다.
둘째,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예의를 숭상하는 데 있다고 보고, 교육에서 숭례 (崇禮)와 근검(勤儉)을 강조했다.
셋째, 민본사상을 바탕으로 능력에 따른 개인차가 반영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대 저 백성이 있은 다음에 군왕이 있고, 백성을 얻음으로서써 군왕이 되는 것"이라고 하였 다. 또한 인간은 현자와 어리석은 자가 있다고 보고, 과거제의 많은 폐단을 보완하는 방 법으로 과천합일의 제도를 주장하였다.
넷째, 교육방법과 관련하여 탐구심의 계발이 자기계발의 요소이며, 자기수양의 방법으 로 매일 새롭게(日新) 스승을 구하고(得師), 왕성한 호기심을 갖고 즐겨 질문하는 것 (好問)이 참다운 살아있는 교육이라고 했다. 특히 강의식이나 맹목적인 암기보다 질의 응답을 중시했으며, 교육에서의 지행합일을 강조했다.
4) 연암 박지원(1737∼1805)
첫째, 문학작품을 통하여 신랄한 사회비판과 함께 민중의 각성을 꾀했다.
둘째, 도덕성을 지닌 경제인으로서의 선비를 교육적 인간상으로 보았다.
셋째, 교육내용에 있어서의 민족주체성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천자문"의 문자
배열이 어린아이의 일상생활의 용어보다 시의 운에 따라 배열되었으므로 비실용적이라고
비판하였다.
5) 초정 박제가(1750∼1805)
첫째, 과거제도의 개혁을 강조하였다. 과거의 종류가 지나치게 많고 , 너무 자주 실시되
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비정기적 시험의 폐해를 비판하였다.
둘째, 중국의 과거제도를 참고할 것을 주장하였다. 중국의 선발방식인 고시관의 엄선과,
합격자에 대한 추후 검증 절차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였다.
6) 다산 정약용(1762-1836)
첫째, 그의 교육이념의 핵심은 실학정신에 있다. 다산은 당시의 적폐를 공리공담의 이 기설(理氣設)을 비롯하여, 경전의 자의(字義)나 음훈에 빠져버린 훈고학, 미사여구의 문 자적유희인 문사(文辭), 과거제도 및 우민을 현혹시키는 도선비결(道詵秘訣) 혹은 정감록 (鄭鑑錄) 등 다섯 가지라고 지적하고, 이것들을 바로 잡으려면 실사구시에 의해서만 가능 하다고 보았다.
둘째, 교육적 인간상으로 수기위천하인(修己爲天下人)을 제시하였다. 자기 수양에 의 해 능력을 닦고, 이것을 천하와 국가를 위해 실천하는 사람으로, 현대적 의미에서 볼 때 사회적 자아실현인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감각기관을 활용한 과학적, 실천적 교육방법의 제시하였다.
4. 실학사상의 교육사적 의의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실학사상은, 서양의 경우와 비교해 볼 때, 르네상스에 맞먹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 민족 근대화의 시발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스럽게도 실학사상은 사회ㆍ정치적 상황의 미성숙과 일부 학자들 중심의 운동, 해당 학자들의 정치권력의 미약 등과 같은 이유로 인해 그 크고 귀한 뜻을 만족스럽게 실현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학사상은 교육사적으로 다음과 같은 중 요한 의의를 갖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첫째, 교육이념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점이다. 실학사상가들이 주장했던 신분을 초월한 교육의 기회균등 사상과 민본주의적 개인차의 중시 등은 현대의 보편적 교육이념과 일맥상 통한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과거제도의 폐단을 비판하고 다양한 대안을 모색했다는 점이다. 고려사회에 대해 설 명할 때 이미 말했듯이, 과거제도의 폐해는 한 두 마디로 지적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 고도 다양하다. 또한 고려나 조선의 과거제도가 갖고 있던 문제들은 아마 오늘날 우리 시 대에도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과거제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실학사상가들의 노력은 교육사적으로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셋째, 민족주체성의 제고를 들 수 있다. 실학사상가들은 대부분 우리 민족의 지리나 산물, 사회 실정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강조했으며, 이익은 [퇴계집]과 [동국사]를 읽도록 권장했 으며, 박지원은 [천자문]이나 [사략]과 같은 중국의 문자와 역사를 교육 입문서로 읽히고 있는 실정을 비판했다. 이러한 점들은 모두 민족 주체성을 강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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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사}(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편, 교육과학사, 1997)
.{교육사상의 탐구}(김선양 편, 양서원, 1999)
.{조선시대의_교육} 논문
.{교육의 역사와 철학}(박외수 外, 동문사, 2003)
첫째, 종래의 과거제도를 폐지하고 학교교육을 통하여 능력 있는 인물을 관리로 등용 할 것을 주장하였다.
둘째, 근대적 학제의 도입을 제안하였다. 즉, 서울에는 태학·중학·사학을 설치하고, 각 도의 감영에는 영학(營學)을 설치하고, 군(주)·현에는 읍학을 설치하고, 서울의 각 방에 는 방상, 주·현의 향에는 향상을 설치할 것을 주장했다. 이는 태학-중학·영학-사학· 읍학-방상·향상의 체계로 종래보다 체계화된 단계별 학제안(學制案)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태학을 마친 자는 만 1년간 진사원에서 견습케 한 후에 차등을 정하여 관직에 등용해 야 한다고 했다.
*그가 주장한 학제*
(중앙) 방상(坊庠) 사학(四學) 중학(中學)
태학(太學) (유능한 교관필요성)
(지방) 향상(鄕庠) 읍학(邑學) 영학(營學)
셋째, 학교 입학 자격을 사대부에만 국한하지 말고, 서얼과 서민의 자제에게도 부여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넷째, 사대부의 관직 세습화를 억제하고 인재 등용의 기준을 문벌보다 개인의 능력에 두어야 한다고 하였으며, 학교교육에서도 문벌보다는 나이와 능력에 따라 차례를 정해 야한다고 주장하였다.
다섯째, 이상적 교육적 인간상은 덕행인(德行人)과 능력인(能力人)으로 보고, 신분을 초 월하여 교육의 기회를 균등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2) 성호 이익(1681-1763)
첫째, 민족 주체의식을 강조하여 교육과정에 [퇴계집]과 [동국사]를 포함시켜야 한다 고 강조했다.
둘째,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예의를 숭상하는 데 있다고 보고, 교육에서 숭례 (崇禮)와 근검(勤儉)을 강조했다.
셋째, 민본사상을 바탕으로 능력에 따른 개인차가 반영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대 저 백성이 있은 다음에 군왕이 있고, 백성을 얻음으로서써 군왕이 되는 것"이라고 하였 다. 또한 인간은 현자와 어리석은 자가 있다고 보고, 과거제의 많은 폐단을 보완하는 방 법으로 과천합일의 제도를 주장하였다.
넷째, 교육방법과 관련하여 탐구심의 계발이 자기계발의 요소이며, 자기수양의 방법으 로 매일 새롭게(日新) 스승을 구하고(得師), 왕성한 호기심을 갖고 즐겨 질문하는 것 (好問)이 참다운 살아있는 교육이라고 했다. 특히 강의식이나 맹목적인 암기보다 질의 응답을 중시했으며, 교육에서의 지행합일을 강조했다.
4) 연암 박지원(1737∼1805)
첫째, 문학작품을 통하여 신랄한 사회비판과 함께 민중의 각성을 꾀했다.
둘째, 도덕성을 지닌 경제인으로서의 선비를 교육적 인간상으로 보았다.
셋째, 교육내용에 있어서의 민족주체성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천자문"의 문자
배열이 어린아이의 일상생활의 용어보다 시의 운에 따라 배열되었으므로 비실용적이라고
비판하였다.
5) 초정 박제가(1750∼1805)
첫째, 과거제도의 개혁을 강조하였다. 과거의 종류가 지나치게 많고 , 너무 자주 실시되
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비정기적 시험의 폐해를 비판하였다.
둘째, 중국의 과거제도를 참고할 것을 주장하였다. 중국의 선발방식인 고시관의 엄선과,
합격자에 대한 추후 검증 절차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였다.
6) 다산 정약용(1762-1836)
첫째, 그의 교육이념의 핵심은 실학정신에 있다. 다산은 당시의 적폐를 공리공담의 이 기설(理氣設)을 비롯하여, 경전의 자의(字義)나 음훈에 빠져버린 훈고학, 미사여구의 문 자적유희인 문사(文辭), 과거제도 및 우민을 현혹시키는 도선비결(道詵秘訣) 혹은 정감록 (鄭鑑錄) 등 다섯 가지라고 지적하고, 이것들을 바로 잡으려면 실사구시에 의해서만 가능 하다고 보았다.
둘째, 교육적 인간상으로 수기위천하인(修己爲天下人)을 제시하였다. 자기 수양에 의 해 능력을 닦고, 이것을 천하와 국가를 위해 실천하는 사람으로, 현대적 의미에서 볼 때 사회적 자아실현인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감각기관을 활용한 과학적, 실천적 교육방법의 제시하였다.
4. 실학사상의 교육사적 의의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실학사상은, 서양의 경우와 비교해 볼 때, 르네상스에 맞먹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 민족 근대화의 시발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스럽게도 실학사상은 사회ㆍ정치적 상황의 미성숙과 일부 학자들 중심의 운동, 해당 학자들의 정치권력의 미약 등과 같은 이유로 인해 그 크고 귀한 뜻을 만족스럽게 실현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학사상은 교육사적으로 다음과 같은 중 요한 의의를 갖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첫째, 교육이념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점이다. 실학사상가들이 주장했던 신분을 초월한 교육의 기회균등 사상과 민본주의적 개인차의 중시 등은 현대의 보편적 교육이념과 일맥상 통한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과거제도의 폐단을 비판하고 다양한 대안을 모색했다는 점이다. 고려사회에 대해 설 명할 때 이미 말했듯이, 과거제도의 폐해는 한 두 마디로 지적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 고도 다양하다. 또한 고려나 조선의 과거제도가 갖고 있던 문제들은 아마 오늘날 우리 시 대에도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과거제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실학사상가들의 노력은 교육사적으로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셋째, 민족주체성의 제고를 들 수 있다. 실학사상가들은 대부분 우리 민족의 지리나 산물, 사회 실정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강조했으며, 이익은 [퇴계집]과 [동국사]를 읽도록 권장했 으며, 박지원은 [천자문]이나 [사략]과 같은 중국의 문자와 역사를 교육 입문서로 읽히고 있는 실정을 비판했다. 이러한 점들은 모두 민족 주체성을 강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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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사}(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편, 교육과학사, 1997)
.{교육사상의 탐구}(김선양 편, 양서원, 1999)
.{조선시대의_교육} 논문
.{교육의 역사와 철학}(박외수 外, 동문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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