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추상회화를 그리게 된다. 언어 자체를 의심하고 존재의 무질서에 대한 그들의 신념과 함께 예술과 문학을 불신하는 것으로 미루어 우리는 논리적으로 따져서 다다이스트들이 무엇을 창조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사실상 이것은 항상 예술의 역설이었다. 그 이유는 창조적인 활동은 당연히 질서의 존재, 의사소통의 가능성과 소망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다에 의해서 현대미술은 새로운 소통의 영역을 확보하게 되었다. 다다의 미술품이 제작되는 과정은 창조 혹은 변형의 과정이라기보다 현실 세계에서 빌어온 단편들을 병치시키는 과정이다. 또한 기성품을 예술 작품으로 내놓는 뒤샹의 예술 행위는 예술 문화의 전통 패러다임의 붕괴가 일어나는 심각한 위기에 대한 하나의 가능한 대응의 방법으로 이해된다.
다다는 이미 절대적인 것에 대한 신념을 상실해버린 세상에 나타났다. 발전을 거듭하는 산업은, 실리적인 면에서는 진보라는 개념이 합리적인 가설이라는 것을 시사해주고는 있지만 그것이 낳은 정치적·사회적 긴장감들은 근본적인 도덕의 무질서를 나타내었다. 불질적인 부의 증가는 독립성과 미덕을 낳지 못했으며 국가간의 탐욕을 감소시키지도 못했다. 다다이즘에 앞서 이러한 현실의 붕괴에 호응했던 사람들은 바로 입체파와 미래파 화가들이었으며 파괴적인 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이러한 역할은 다다이스트들에게 넘어오게 되었다. 이들이 표현한 허무감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현실의 파편성, 이성과 전통적인 사고의 모든 양식들, 그리고 질서의 지배를 받고 정확하고도 체계적인 언어로 표현되는 삶에 대한 신념에 대한 전면적인 붕괴였다. 그들은 도덕적 무질서를 객관화시킬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하여 거짓된 질서와 목적 의식 대신에, 드러난 무질서에 대한 그들의 확신을 제공했다. 그들은 우리들이 예술·시·음악 등에 갖고 있는 사상들에 도전을 했고, 인위적이고 구식으로 보이는 취향과 행동의 기준을 난폭하게 경멸했다. 다다는 소위 이성적인 체제를 옹호하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러한 체제는 결국 논리적인 정확성을 지니고 잔인한 전쟁을 유발했다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을 그의 자유와 어느 정도는 자연적인 세계에 융화시키려고 했다. 이리하여 다다는 이 자유의 적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고, 이성과 이기주의를 없애려고 노력했다. 다다는 과거의 업적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볼때는 부정적이라 할 수 있고 창조적인 회의주의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볼때는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다다는 비합리적이고 환상적인 것에 대한 탐구라는 점에서 커다란 맥락에서 볼 때는 초현실주의와 함께 19세기의 낭만주의와 상징주의를 계승한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어떤 특정한 예술 경향이라는 것도 오랜 미술의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 근거를 갖고 그 시대의 사회적 정신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다는 현대인의 정신적 황폐, 소외, 그리고 자아 상실을 초래한 전쟁과 더불어 나타난 예술 운동으로서, 우리는 '예술이 시대를 반영한다'는 명제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다다는 이미 절대적인 것에 대한 신념을 상실해버린 세상에 나타났다. 발전을 거듭하는 산업은, 실리적인 면에서는 진보라는 개념이 합리적인 가설이라는 것을 시사해주고는 있지만 그것이 낳은 정치적·사회적 긴장감들은 근본적인 도덕의 무질서를 나타내었다. 불질적인 부의 증가는 독립성과 미덕을 낳지 못했으며 국가간의 탐욕을 감소시키지도 못했다. 다다이즘에 앞서 이러한 현실의 붕괴에 호응했던 사람들은 바로 입체파와 미래파 화가들이었으며 파괴적인 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이러한 역할은 다다이스트들에게 넘어오게 되었다. 이들이 표현한 허무감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현실의 파편성, 이성과 전통적인 사고의 모든 양식들, 그리고 질서의 지배를 받고 정확하고도 체계적인 언어로 표현되는 삶에 대한 신념에 대한 전면적인 붕괴였다. 그들은 도덕적 무질서를 객관화시킬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하여 거짓된 질서와 목적 의식 대신에, 드러난 무질서에 대한 그들의 확신을 제공했다. 그들은 우리들이 예술·시·음악 등에 갖고 있는 사상들에 도전을 했고, 인위적이고 구식으로 보이는 취향과 행동의 기준을 난폭하게 경멸했다. 다다는 소위 이성적인 체제를 옹호하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러한 체제는 결국 논리적인 정확성을 지니고 잔인한 전쟁을 유발했다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을 그의 자유와 어느 정도는 자연적인 세계에 융화시키려고 했다. 이리하여 다다는 이 자유의 적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고, 이성과 이기주의를 없애려고 노력했다. 다다는 과거의 업적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볼때는 부정적이라 할 수 있고 창조적인 회의주의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볼때는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다다는 비합리적이고 환상적인 것에 대한 탐구라는 점에서 커다란 맥락에서 볼 때는 초현실주의와 함께 19세기의 낭만주의와 상징주의를 계승한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어떤 특정한 예술 경향이라는 것도 오랜 미술의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 근거를 갖고 그 시대의 사회적 정신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다는 현대인의 정신적 황폐, 소외, 그리고 자아 상실을 초래한 전쟁과 더불어 나타난 예술 운동으로서, 우리는 '예술이 시대를 반영한다'는 명제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