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파 ( 立體派 : Cubis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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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하는 것이 되었다. 피카소가 몇 개의 초상에서 실험을 한 것도 이 시기이며, 후안 그리스가 형체의 ‘비구성(非構成)’을 주장하여 ‘분석적인 그림’으로 불린 것도 이 시기이다.
원래 분석적 입체파에서는 물체는 일단 일상 눈으로 보는 포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한 개의 바이올린을 이루는 세세한 오브제가 현재(顯在)하고 있는 것이라면 보는 각도를 바꾸면 이것도 ‘물체 그 자체’의 탐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분석적 입체파의 가장 큰 업적은 르네상스 이래 이루어져 온 일들의 동시적 존재를, 뒤집어서 형체의 동시 존재로서 정착시킨 데 있으며, 인간의 얼굴만 하더라도 측면, 정면에서, 궁극적으로는 여러 가지 시점(視點)에서 구성된 것이다. 그것은 어떤 의미로는 이집트의 벽화나 부조에서 볼 수 있는 인물표현의 다원적(多元的)인 전개이며, 같은 입체파의 유력한 멤버였던 F.레제가 프리미티브한 예술에 기울인 관심과도 관계가 있다.
【종합적 입체파】 1912년 입체파는 ‘종합적 입체파’의 시기를 맞이하였다. 이것은 전술한 바와 같이 분석적 입체파가 자연히 화면구성에만 치중하여 물체가 지닌 리얼리티를 망각한 위기에서 비롯된 기법으로, 파피에 콜레(papiers colle)가 강력한 무기가 된다.
즉 즉물적(卽物的)으로 신문지나 벽지, 담배갑이나 트럼프 등을 화면에 붙여가는 방법이며, 최초의 파피에 콜레는 1912년 브라크에 의하여 응용되었다. 물론 입체파의 파피에 콜레는 회화적인 의미에서의 테크닉이었으므로, 그것으로 바로 화면에 현실감을 주었다고 할 수는 없으나, 이러한 화면에 있어서 이질적인 촉감이 처음에는 시각을 통하여, 다음에는 보는 사람의 심리에 어떤 종류의 거스름으로서 작용한 것을 간과할 수 없으며, 이것은 피카소가 말한 ‘입체파의 눈과 마음이 지각한 것을 표현하는 수단’임을 뒷받침하고 있다.
후에 다다이즘은 더욱 철저한 콜라주를, 쉬르레알리스트는 포토몽타지를 펼치게 되나, 그것도 입체파의 현대적 발상의 하나였다. 입체파의 종합적인 전람회는 1911년의 살롱 데장 데 팡당에서 개최되었는데 당시 출품자에는 앞서 말한 4인 외에 들로네, 뒤샹, 비용, 로랑생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소박한 화가로서 알려진 H.루소의 작품에서도 입체파적인 조형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중 입체파의 색채 경시의 경향을 다시 문제삼아, 다채로운 색을 동시적인 존재로 바꾼 것이 들로네의 오르피즘이며, 그의 이론이 마케, 마르케, 클레를 중심으로 한 청기사(靑騎士)운동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또 사람들 중에서는 J.그리스를 전형적인 입체파 화가로 보는 사람도 있으나 그것은 분석적 입체파에서 종합적 입체파로의 전환에 미친 그의 공적을 인정하기 때문이며, 사실 J.그리스의 경우 후년의 피카소, 브라크에 비하여 입체파에 몸바친 경향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독일의 입체주의자로는 보통 슐레머, 바우마이스터를 들고 있다. 운동으로서 입체파의 역할은 이윽고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소멸해가나, 그 후 20세기 미술에 끼친 영향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다.

키워드

입체파,   시야,   시점,   미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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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03.10.22
  • 저작시기2003.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27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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