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발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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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소유권의 중요성

2. 정부 역할의 변화

3. 개방화(자유무역의 강화)

4. 결론

본문내용

이 부족한 동북아시아가 더 빠른 고도성장을 한 사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기술이 부족하면 외국에서 도입하면 된다. 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 도입하는 편이 오히려 더 경제적일 수 도 있다. 그런데 바람직한 제도나 의식은 외국에서 쉽게 도입할 수 없다.
물론 제도의 외형을 모방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사회에 체화된 제도는 문화의 산물이기 때문에 쉽게 고쳐지거나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 사회가 경쟁력이 있는 제도를 갖추는 것은 기술수준을 올리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제도는 그 사회의 인센티브 구조를 반영한다.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생산적인 활동에 적극 종사하는 인센티브 구조를 가진 사회와 남의 것을 빼앗는데 몰두하는 사회의 성과는 다를 것이다.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 옆에는 실리콘밸리가 있는데, 우리 나라의 서울대학교 옆에는 고시촌이 있다’는 말은 한국의 인센티브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문화와 그 속에 녹아 있는 인센티브 구조를 바꾸기 위한 교회의 역할을 생각해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광활한 농지와 석유 등 풍부한 자원으로, 한때 남미에서 가장 부유하고, 남미의 파리라고 불리던 예술의 나라 아르헨티나가 이제 인구의 42 퍼센트가 극빈자인 나라로 추락했다. 폭동이 일어나더니 결국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일반적으로 세수(稅收)기반의 악화와 방만한 재정운용 때문이라고 한다. 즉 경제가 어려워져 세금수입은 줄어드는데, 정부는 재정지출을 과도하게 했기 때문에, 빚을 계속 지다가 결국 국가부도사태가 났다는 것이다. 방만한 재정지출의 원인은 페론주의 때문이라고 본다. 1946년 페론 대통령은 인기에 영합하여 사회보장을 확대하는 포퓰리즘(populism) 정책을 남발했고, 아르헨티나는 지난 반세기동안 정부의 선심성 정책에 길들여져 페론주의의 함정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세수기반 약화 원인은 1991년에 도입된 고정환율정책에서 찾는다. 당시 연간 물가상승률이 5천 퍼센트가 넘었는데, 이를 안정시키기 위해 페소화의 가치를 미국 달러화와 동일하게 고정시킴으로써 물가안정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 부작용으로 경제가 침체에 빠졌다. 즉 미국에 비해 아르헨티나의 성장률이 낮았으므로 페소화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페소화를 미국 달러와 같아지도록 환율을 고정시켜두었기 때문에 페소화는 고평가 되었고, 결국 이는 아르헨티나 제품이 비싸게 되는 결과를 낳아 산업경쟁력 저하와 경기침체를 낳았다.
그러나 비슷한 제도를 가진 많은 국가들 중에 유독 아르헨티나 경제만 불안정한 것을 보면,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부정부패와 국민의 의식이다. 예를 들면 공기업을 민영화해 확보한 400억 달러 중 절반이 없어졌다. 또 국회의원 한 명이 수십 명분의 월급을 타내고, 또 보좌관을 수십 명씩 거느리고 있어 연간 의회 비용이 28억 달러에 달한다. 심지어는 죽은 사람도 월급을 받는 유령공무원도 존재한다. 애국심이 부족해 이번 외환위기 때도 1,000억 달러의 예금이 국내은행에서 빠져나갔다. 그리하여 노동자들도 월급과 연금을 삭감하려는 정부의 고통 분담요청을 거부해 재정지출은 줄어들지 못했으며, 경쟁력강화법 등 각종 개혁은 ‘민중저항의 덫’에 걸려서 좌절되었다. 아르헨티나 사태는 거짓과 불신이 난무하는 정의롭지 못한 사회는 아무리 훌륭한 이론과 개혁도 효과를 나타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이다.
북미와 중남미는 공통점이 많다. 광활한 농지와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서구 유럽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다민족 이민국가들이다. 과거에는 북미보다 남미의 문화가 더 찬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현재 중남미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북미에 비해 매우 낙후되었다. 최근의 아르헨티나 사태를 보면서 왜 이 두 지역이 이렇게 다른 길을 걷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중남미가 경제적으로 낙후된 이유를 종속이론가들은 미국 등 선진국이 착취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일부학자들은 현 정부들의 정책실패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과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그 원인을 찾는 학자들이 많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노스(D. North)는 그 이유를 북미는 영국의 식민지였는데 반해서 중남미는 스페인의 식민지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스페인은 16세기 ‘대 항해 시대’에 거대한 제국을 이룩했지만 1세기만에 몰락했다. 반면에 영국은 유럽의 강자인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를 차례로 격파하고 19세기에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하는 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북미는 성공한 영국의 시스템을 받아들였고, 중남미는 실패한 스페인의 시스템을 받아들였는데, 바로 이것이 오늘날까지 북미와 남미의 경제적 성과가 다른 이유라는 것이다.
그러면 영국과 스페인의 승패가 갈라진 이유는 무엇인가? 베버(M. Weber)는 그 이유를 개신교와 구교의 차이에서 찾았다. 베버는 신교국가인 영국과 네덜란드의 경제성장이 구교국가인 프랑스나 스페인보다 빠르다는 사실에 흥미를 갖고 그 원인을 분석한 결과 칼뱅주의에 영향받은 청교도들의 근검절약정신이 그 원인이라고 주장하며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정신>을 저술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노스 교수는 베버와는 달리 그 이유를 정치체제와 경제제도에서 찾았다. 영국이나 네덜란드는 절대주의시대에도 국왕의 권력이 의회로부터 제한을 받았기 때문에 개인의 경제활동이 비교적 자유로웠다. 따라서 영국의 식민지였던 북미지역도 역시 다른 식민지에 비해서 자유롭게 경제를 발전시켰다. 반면에 스페인이나 프랑스에서는 절대군주의 힘이 매우 강력해 각종 이권에 국왕이 개입했다. 마찬가지로 스페인 국왕은 중남미 식민지에도 강력한 관료제도를 이식해 일일이 통제했으며, 심지어 종교도 강요했다. 중남미 국가들은 독립 후 미국과 유사한 헌법을 제정했지만 여전히 중앙집권적인 관료적 통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노스교수는 스페인이 이식한 관료주의적 전통이 중남미 국가들의 정책과 국민들의 의식에 계속 영향을 미쳤으며, 이것이 중남미 각국의 경제가 북미에 비해 뒤떨어진 근본적인 이유라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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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0.27
  • 저작시기2003.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28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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