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① 막번체제
② 신분제도
③ 쇄국
④ 산업의 발달
⑤ 쵸오닝 문화
⑥ 3대개혁
⑦ 새로운 학문
⑧ 개국
⑨ 막부말기
② 신분제도
③ 쇄국
④ 산업의 발달
⑤ 쵸오닝 문화
⑥ 3대개혁
⑦ 새로운 학문
⑧ 개국
⑨ 막부말기
본문내용
항구를 무역을 위해 사용할 것을 허가하고 있고, 그밖에도 불평등한 내용이 두 가지 더 있었다. 하나는 수입품에 대해서, 일본이 자유로이 관세를 결정하는 권리(관세자주권)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외국인이 일본에서 범법을 하더라도 일본의 법률로 재판하지 못한다고 하는 치외법권의 허용이었다. 존황론자나 양이론자들이 이이 나오스케가 조정의 허가없이 조약을 맺은 것을 강력히 비난하자, 이이는 이들 반대파들을 사형에 처하는 등 엄하게 다스렸기 때문에, 결국 에도성의 문앞에서 반대파등에 의해 암살되고 말았다.(櫻田門外의 변:1860)
⑨ 막부말기
개국에 의해 무역이 시작되자, 생사나 차들의 수출이 급증하여, 국내 물자의 부족현상을 보이고, 물가가 앙등하여 경제가 혼란상태에 빠졌다. 그로 인해 하급무사들이나 서민의 생활이 더욱 궁핍하게 되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사쯔마(지금의 가고시마현)와 쵸오슈우(야마구찌현)의 하급무사 사이에서, 존황론과 양이론이 결합된 존황양이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막부는 조정과 협력하여 정치를 행할 것, 즉 공무합체를 고려했지만, 존황양이파들은 더욱 자기들의 생각을 다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끝내 사쯔마번은 영국의 함대와 싸우고, 쵸오슈우번은 영국, 프랑스, 미국, 네덜란드의 4국 함대와 교전했다. 그러나 이 싸움을 통하여 사쯔마, 쵸오슈우의 두 번은 외국의 힘을 실감하고, 양이의 불가능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두 번의 젊은 무사들은 막부를 타도하고 천황중심의 새로운 정치를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 존황도 막운동을 추진했다. 사쯔마번의 사이고오 타까모리, 오오쿠보 도시미찌등은 도사(코오찌현)의 사까모토 류우마의 중재로 쵸오슈우의 키도 타카요시 등과 동맹을 맺고 신정부 수립을 약속했다. 그리고 영국에 접근하여, 서양식 군비를 정비했다. 한편, 막부도 프랑스의 원조를 받아 군함이나 무기를 구입, 두 번에 걸쳐 쵸오슈우번을 정벌하려고 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이것을 지켜본 사이고오등은, 무력으로 막부를 전복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무렵, 정치와 경제의 혼란으로 인해 에도와 오오사카에서 대규모의 폭동이 일어나고, 농민봉기도 전국적으로 발생했다. 또, 사회의 불안으로 인해, 구원을 바라는 심리에서 이세신궁에 참배하는 것이 대유행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15대 장군 요시노부(慶喜)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1867년 정권을 천황에게 반납한다고 선언(大政泰還)하고, 조정은 이를 받아들여, 천황정치가 부활했음을 정식공포했다(왕정복고). 그러나 신정부가 요시노부에게 관위를 주지 않고, 그의 영지를 모두 조정으로 귀속시키기로 결정하자, 막부측의 무사들은 이에 불만을 품고, 쿄오토에서 전쟁을 일으켰다. 신정부군은 도바, 후시미에서 승리하고 요시노부를 토벌하기 위해 에도로 향했다. 그 때, 막부측의 카쯔 카이슈우(勝海舟)와 신정부군 쪽의 사이고오가 회담, 막부측은 신정부군에게 자진 에도성을 건네주는 조건으로 토쿠가와 가문을 존속시킬 것을 결정했다. 이렇게 하여 약 260년간 계속된 에도막부는 끝나게 된다.
⑨ 막부말기
개국에 의해 무역이 시작되자, 생사나 차들의 수출이 급증하여, 국내 물자의 부족현상을 보이고, 물가가 앙등하여 경제가 혼란상태에 빠졌다. 그로 인해 하급무사들이나 서민의 생활이 더욱 궁핍하게 되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사쯔마(지금의 가고시마현)와 쵸오슈우(야마구찌현)의 하급무사 사이에서, 존황론과 양이론이 결합된 존황양이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막부는 조정과 협력하여 정치를 행할 것, 즉 공무합체를 고려했지만, 존황양이파들은 더욱 자기들의 생각을 다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끝내 사쯔마번은 영국의 함대와 싸우고, 쵸오슈우번은 영국, 프랑스, 미국, 네덜란드의 4국 함대와 교전했다. 그러나 이 싸움을 통하여 사쯔마, 쵸오슈우의 두 번은 외국의 힘을 실감하고, 양이의 불가능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두 번의 젊은 무사들은 막부를 타도하고 천황중심의 새로운 정치를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 존황도 막운동을 추진했다. 사쯔마번의 사이고오 타까모리, 오오쿠보 도시미찌등은 도사(코오찌현)의 사까모토 류우마의 중재로 쵸오슈우의 키도 타카요시 등과 동맹을 맺고 신정부 수립을 약속했다. 그리고 영국에 접근하여, 서양식 군비를 정비했다. 한편, 막부도 프랑스의 원조를 받아 군함이나 무기를 구입, 두 번에 걸쳐 쵸오슈우번을 정벌하려고 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이것을 지켜본 사이고오등은, 무력으로 막부를 전복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무렵, 정치와 경제의 혼란으로 인해 에도와 오오사카에서 대규모의 폭동이 일어나고, 농민봉기도 전국적으로 발생했다. 또, 사회의 불안으로 인해, 구원을 바라는 심리에서 이세신궁에 참배하는 것이 대유행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15대 장군 요시노부(慶喜)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1867년 정권을 천황에게 반납한다고 선언(大政泰還)하고, 조정은 이를 받아들여, 천황정치가 부활했음을 정식공포했다(왕정복고). 그러나 신정부가 요시노부에게 관위를 주지 않고, 그의 영지를 모두 조정으로 귀속시키기로 결정하자, 막부측의 무사들은 이에 불만을 품고, 쿄오토에서 전쟁을 일으켰다. 신정부군은 도바, 후시미에서 승리하고 요시노부를 토벌하기 위해 에도로 향했다. 그 때, 막부측의 카쯔 카이슈우(勝海舟)와 신정부군 쪽의 사이고오가 회담, 막부측은 신정부군에게 자진 에도성을 건네주는 조건으로 토쿠가와 가문을 존속시킬 것을 결정했다. 이렇게 하여 약 260년간 계속된 에도막부는 끝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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