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몰락의 위기
본 자료는 2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해당 자료는 2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2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1. 흑사병

2. 백년전쟁

3. 농민반란

4. 마녀사냥

본문내용

끈으로 묶어서 뒤에 돌을 달아 강물 속에 집어넣으면 악마가 도와주어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만약 물 속으로 가라앉아 고발된 여자가 죽는다면 그녀는 결백을 인정 받았고 가라앉지 않고 떠오른다면 그녀는 확실히 마녀로 생각되어 화형 당하였다.
(5) 마녀들의 희생
원래 그 기원은 마법사 사냥임에도 불구하고 마녀사냥 이라 불려지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다. 마법사라 몰리는 희생양은 열에 아홉이 여자였고 혼자 사는 과부들이었다. 또 마법의 집단에서 최고 우두머리는 여자들 중에서 선발되고, 특히 가장 나이가 많고 가장 가난한 여자가 적격이라고 당시 사람들은 믿었다. 종종 구전되어 오던 민간요법의 지혜를 지니고 있는 할머니 과부들은 주술을 걸 줄 아는 존재로 의심 받아 여지없이 마녀로 몰렸다. 그리고 신학자들은 여자란 그 본성에서 남자보다 악마적 환영에 약하다고 떠들어댔으며 이로써 마법사 사냥은 마녀사냥이 되었다. 마녀로 몰리면 살아날 길은 없었다. 재판관들은 고문을 통해서 자백 아닌 자백을 하도록 만들었고 마녀로 몰린 여자들의 입에서 자백이 나옴과 동시에 화형은 그 여자들의 운명이 되었다.
(6) 마녀사냥의 쇠퇴
마녀에 대한 재판이 종교재판소에서 세속법정으로 넘어감에 따라 잔혹함과 참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갔다. 교회는 사법현실 속에서 자제의 필요성을 느꼈고 세속의 지식인들은 갈등하기 시작했다. 17C에 프랑스 의회 재판관들은 계속적인 사회 논란을 겪으며 최대한 관용을 베푼다는 취지로 마법 재판의 행로를 바꾸게 되고 마법을 더 이상 범죄 구성요소로 간주하려 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하급 재판장들은 이를 무시하고 즉결 재판을 통해 마녀라 지목된 여성들을 화형 시켰는데 파리 의회는 이에 대해 재판장을 문책 하는 등 엄격한 대응을 하였다. 이 때부터 마녀 사냥은 점차 수그러들었으며 점차 미신이나 무지한 대중들이 만들어낸 신화로 생각되기 시작하면서 마녀사냥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참고 문헌>
E. 두르슈미트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
J. 폰타나 "거울에 비친 유럽"
J. -M. Sallmann, "사탄과 약혼한 마녀"
J. Russell, "마녀의 문화사"
배영수 "서양사 강의"
<참고 사이트>
http://members.tripod.lycos.co.kr/jskhj/world/w44.html
http://home.opentown.net/%7ENEW11010/main/main/Fantasy/2-10.html

키워드

  • 가격1,0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3.11.18
  • 저작시기2003.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33212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