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서 론
I. 북한의 수용소는 전체주의적 수용소이다.
II. 북한의 수용소는 공산주의식 수용소이다
III. 북한의 수용소는 아시아식 수용소이다.
IV. 북한 수용소의 몇 가지 특수성
[2]결 론
I. 북한의 수용소는 전체주의적 수용소이다.
II. 북한의 수용소는 공산주의식 수용소이다
III. 북한의 수용소는 아시아식 수용소이다.
IV. 북한 수용소의 몇 가지 특수성
[2]결 론
본문내용
을 신어야만 한다! 또, 『로동신문』의 사설을 통한 "학습" 시간이라든지, 위대한 지도자의 신년사 암송 경연대회도 있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요덕 수용소에 갇힌 탈진하고 병들고 굶주린 수용자들에게 필기도구와 더불어 세 권의 커다랗고 멋진 노트가 지급된다는 사실이다. 첫 번째 것은 비판 및 자아비판 시간에 사용되는 <인생평가 노트>이다. 두 번째 것은 김일성 교시를 기록하는 <당 정책 노트>이며, 마지막 것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혁명역사 노트>이다.
IV. 북한 수용소의 몇 가지 특수성
(A) 북한 수용소 체제가 지니는 가장 주된 특징은 가족적 성격이다. 이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 방향으로 가능하다.
1) "범죄자"와 그의 가족들이 구분된다. 여기서 가족이라 함은 동일한 거주지에 산다는 사실만으로 정의된다. "범죄자"는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올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엄격한 체제의 수용소로 보내어진다. 그에 반해 나머지 가족은 일반적으로 요덕의 "정상적인" 수용소로 이송된다.
2) 요덕 수용소에서는 가족 구성이 파괴되지 않는다. 이는 나치 독일이나 소련과 반대이다. 다시 말해, "범죄자" 당사자를 뺀 나머지 구성원은 가족 단위로 요덕 수용소로 보내어지며, 그곳의 "마을"에서도 가족 단위로 생활하는데, 언뜻 보면 가난한 농촌생활과 비슷한 삶을 영위하게 되는 것이다.
(B) 수용소 내의 "마을"은 "작업단 1호, 2호, 3호 등"으로 지명된다. 이는 북한에서는 수용소 내부에 일터와 학습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련과 나치의 수용소가 철조망과 담벽으로 둘러싸인 제한된 공간이며, 죄수의 일터는 수용소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 것과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요덕 수용소는 소련이나 나치 독일의 수용소보다는 오히려 광대한 보호지구와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안에 전답, 채석장, 탄광, "작업단" (즉, 마을), 학교, 강과 산이 들어서 있는 직경 40-50 킬로미터의 넓은 공간인 것이다.
(C) 북한 수용소의 세 번째 특징은 “일반사범”과 “정치범”을 뚜렷이 구분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정치범”이라는 말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므로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무심코 말 한마디 실수했다든지 단순히 출국을 기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치범으로 체포되어 수용소에 보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사범” 역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데, 그것은 수많은 처벌사례의 사유가 결국에는 단 하나의 정치적 의미와 원천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그와 같은 특수한 의미를 지적하고 난 다음에 강조해야할 사실은 일반사범은 강제수용소가 아닌 교화소로 이관된다는 것이다. 북한의 수용소는 오직 “정치범”만을 대상으로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소련이나 나치 수용소의 비극 중 하나가 면제된다. 그것은 솔제니친이 적나라하게 묘사한 바 있는데, 수용소 내에 같이 잡혀와 있는 도둑 패거리들과의 대결이다.
결 론
이렇게 해서, 유럽에 북한 강제 수용소 문제를 보다 용이하게 제기하기 위해 우리가 목적했던 바, 북한의 수용소를 나치 및 소련의 수용소와 연결시키는 작업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몇 가지 생각할 점을 제시함으로써 이 번 논의를 마감하려 한다.
1. 각각의 강제 수용소 체제는 나름대로 특수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서로 비교만 하는 것이 올바르고, 다 같은 것으로 취급하거나 등급을 정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2. 강제 수용소 비교연구의 어려움은 전쟁상태인가 평화상태인가, 또는 수용소를 세운 정권의 존속 기간이 얼마나 되는가 등 주변적 요소들이 개입하게 됨에 따라 더욱 늘어난다. 예를 들어, 전쟁과 더불어 나치의 수용소 체제는 성격이 변화하였으며 그 숫자도 두 배로 늘어났다. 이는 집단처형장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우리가 대상으로 삼은 세 유형의 정치체제는 각각 존속기간이 아주 다르다. 소련의 수용소는 70년간 지속되었고, 북한의 수용소는 50년에 가까운 반면, 나치의 수용소는 12년밖에 존속되지 않았으며, 그것도 절반은 전쟁기간에 해당한다.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소련과 나치의 수용소 체제는 이제 사라진 반면, 북한의 수용소는 여전히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의 고찰은 냉철한 학술적 단계에서만 머물러 있을 수 없는 법이다. 북한의 수용소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을 전파하고 그 본질을 세상에 밝히는 일은 깊은 분노의 감정과 섞여 있으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전체주의에 대항하여 벌이는 우리의 싸움을 만인에게 알리고자하는 의지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IV. 북한 수용소의 몇 가지 특수성
(A) 북한 수용소 체제가 지니는 가장 주된 특징은 가족적 성격이다. 이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 방향으로 가능하다.
1) "범죄자"와 그의 가족들이 구분된다. 여기서 가족이라 함은 동일한 거주지에 산다는 사실만으로 정의된다. "범죄자"는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올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엄격한 체제의 수용소로 보내어진다. 그에 반해 나머지 가족은 일반적으로 요덕의 "정상적인" 수용소로 이송된다.
2) 요덕 수용소에서는 가족 구성이 파괴되지 않는다. 이는 나치 독일이나 소련과 반대이다. 다시 말해, "범죄자" 당사자를 뺀 나머지 구성원은 가족 단위로 요덕 수용소로 보내어지며, 그곳의 "마을"에서도 가족 단위로 생활하는데, 언뜻 보면 가난한 농촌생활과 비슷한 삶을 영위하게 되는 것이다.
(B) 수용소 내의 "마을"은 "작업단 1호, 2호, 3호 등"으로 지명된다. 이는 북한에서는 수용소 내부에 일터와 학습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련과 나치의 수용소가 철조망과 담벽으로 둘러싸인 제한된 공간이며, 죄수의 일터는 수용소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 것과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요덕 수용소는 소련이나 나치 독일의 수용소보다는 오히려 광대한 보호지구와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안에 전답, 채석장, 탄광, "작업단" (즉, 마을), 학교, 강과 산이 들어서 있는 직경 40-50 킬로미터의 넓은 공간인 것이다.
(C) 북한 수용소의 세 번째 특징은 “일반사범”과 “정치범”을 뚜렷이 구분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정치범”이라는 말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므로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무심코 말 한마디 실수했다든지 단순히 출국을 기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치범으로 체포되어 수용소에 보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사범” 역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데, 그것은 수많은 처벌사례의 사유가 결국에는 단 하나의 정치적 의미와 원천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그와 같은 특수한 의미를 지적하고 난 다음에 강조해야할 사실은 일반사범은 강제수용소가 아닌 교화소로 이관된다는 것이다. 북한의 수용소는 오직 “정치범”만을 대상으로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소련이나 나치 수용소의 비극 중 하나가 면제된다. 그것은 솔제니친이 적나라하게 묘사한 바 있는데, 수용소 내에 같이 잡혀와 있는 도둑 패거리들과의 대결이다.
결 론
이렇게 해서, 유럽에 북한 강제 수용소 문제를 보다 용이하게 제기하기 위해 우리가 목적했던 바, 북한의 수용소를 나치 및 소련의 수용소와 연결시키는 작업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몇 가지 생각할 점을 제시함으로써 이 번 논의를 마감하려 한다.
1. 각각의 강제 수용소 체제는 나름대로 특수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서로 비교만 하는 것이 올바르고, 다 같은 것으로 취급하거나 등급을 정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2. 강제 수용소 비교연구의 어려움은 전쟁상태인가 평화상태인가, 또는 수용소를 세운 정권의 존속 기간이 얼마나 되는가 등 주변적 요소들이 개입하게 됨에 따라 더욱 늘어난다. 예를 들어, 전쟁과 더불어 나치의 수용소 체제는 성격이 변화하였으며 그 숫자도 두 배로 늘어났다. 이는 집단처형장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우리가 대상으로 삼은 세 유형의 정치체제는 각각 존속기간이 아주 다르다. 소련의 수용소는 70년간 지속되었고, 북한의 수용소는 50년에 가까운 반면, 나치의 수용소는 12년밖에 존속되지 않았으며, 그것도 절반은 전쟁기간에 해당한다.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소련과 나치의 수용소 체제는 이제 사라진 반면, 북한의 수용소는 여전히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의 고찰은 냉철한 학술적 단계에서만 머물러 있을 수 없는 법이다. 북한의 수용소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을 전파하고 그 본질을 세상에 밝히는 일은 깊은 분노의 감정과 섞여 있으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전체주의에 대항하여 벌이는 우리의 싸움을 만인에게 알리고자하는 의지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