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본론
1. 유대인 문제
2. 사랑
3. 전통과 현재의 관계
Ⅲ. 결론
Ⅱ.본론
1. 유대인 문제
2. 사랑
3. 전통과 현재의 관계
Ⅲ. 결론
본문내용
모방과 아류가 판치는 예술의 현 상황에 대한 반성이, 한스 작스의 전통에 기반하고 그것을 혁신하는 발터의 미래 예술의 제시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옛 것과 새 것 사이의 관계는 다소 단순한 구조를 지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폰타네의 『슈테힐린 호수』는 같은 주제를 보다 복잡하고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이것은 이 작품의 인물구도만 살펴봐도 완연히 드러난다. 가령 윤리적 영역에서의 옛 것과 새 것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자면, 고루하고 편협한 아델하이트 같은 보수적인 시골 귀족적 사고와 모든 사회적 규범을 무시하는 카를리네 같은 인물들의 성해방적 사고가 대립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옛 것과 새 것의 형태가 단순히 일방적으로 부정적인 모습으로만 형상화되어 있지는 않다.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며 열린 태도를 지닌 두브슬라프 노인과 사회주의적 이상에도 불구하고 프로이센 군대에 대한 엘리트 의식 등 낡은 편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는 그의 아들 볼데마르에게서 옛 것과 새 것 사이의 관계가 보다 복잡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볼데마르는 아버지 두브슬라프와의 대화를 통해 열린 사고를 배울 뿐만 아니라 스승 로렌첸 목사에게서 인간에 대한 사랑과 희생정신을 배워 나간다. 이 작품에서 옛 것과 새 것 사이의 이상적 조화가 구체적인 상으로 제시되지는 않고 있지만, 그것은 볼데마르의 발전 과정에서 보이듯이 옛 것과 새 것 사이의 비판적 대결 및 올바른 문화적 유산 전수를 통해서만 획득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폰타네가 말하는 이상적인 새로운 것은 옛 것의 전복을 통해 생겨나지 않으며, 옛 것과의 비판적 대결 및 그것의 보완을 통해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폰타네의 『슈테힐린 호수』는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창』과 비교해서 옛 것과 새 것 사이의 관계를 보다 복합적이고 포괄적으로 다루기는 하지만, 결론에 있어서는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폰타네가 바그너의 『명창』을 제일 좋아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폰타네가 바그너와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점은 무엇보다도 전통의 혁신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방식에서 그가 외래적인 것을 어떻게 자신의 사회, 문화 속으로 흡수하고 통합시키는냐 하는데 있다. 바그너는 독일적인 것을 진정한 예술로 간주하며, 다른 민족이나 나라의 예술들은 비본질이고 아류적인 것으로 가치 폄하한다. 타문화에 대한 바그너의 이러한 배타성이야말로 폰타네와 그를 구분시켜주는 가장 본질적인 차이일 것이다. 『슈테힐린 호수』에서 볼데마르는 고향의 로렌첸과 두브슬라프 노인을 통해서만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그는 베를린에 살고 있고 외국 경험도 있는 바르비 가족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의 견문을 넓히고 새로운 세계를 간접 체험할 수 있게 된다. 그의 영국 여행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일종의 자기 발전 과정의 일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나중에 다시 고향에 가 살기로 결정할 때, 이것은 단순히 독일의 한 작은 시골의 좁은 세계로 회귀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베를린과 영국이라는 보다 큰 세계를 경험함으로써 더 넓은 시야를 갖고 고향에 되돌아오는 것이다. 이것은 타자를 통한 자아의 확대를 의미한다. 더 나아가 슈테힐린 호수 역시 이 작품에서는 단순히 독일의 어느 한 지역에 속한 호수로 묘사되지 않는다. 이 호수는 리스본에서 지진이 일어나면 같이 반응한다고 할 정도로 세계의 변화와 시대의 흐름에 끊임없이 동참하는, 즉 타자와 자아를 함께 내재한 상징적 호수로서 등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폰타네가 지향하는 미래적인 것은 외래적인 것을 배제하는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적인 것이 아닌 독일적인 것과 외래적인 것을 변증법적으로 결합시키고 발전시키는 가운데 생겨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폰타네의 비평가인 호르히의 말을 빌어 우리는 바그너와 폰타네의 비교를 축약시켜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바그너의 악극이 예술에 대한 독일적 기여를 의미한다면, 폰타네의 소설은 예술에 대한 유럽적 기여가 될 것이다.
) Horch: Ansichten des 19. Jahrhunderts. Theodor Fontanes Verhaltnis zu Richard Wagner und dem Wagnerismus, S. 322.
Ⅲ. 결론
폰타네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바그너에 대한 입장 표명을 통해 자신의 성격, 세계관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 바그너의 악극은 폰타네의 소설에서 앞으로의 사건 전개에 대한 전조 내지 상황에 대한 암시를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우리는 위의 두 측면을 고찰함으로써 바그너에 대한 폰타네의 비판적 입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본고에서 보다 중점을 둔 사항은 19세기 후반의 동일한 시대적, 문화적 배경 하에서 바그너와 폰타네가 유사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관심사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는 차이를 보여주었다는 사실이다. 낡은 관습과 억압적 제도가 지배하는, 그러나 서서히 옛 것과 새 것의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19세기 중·후반의 독일 사회에 대해 이들은 각기 자기 나름대로의 해법을 찾았던 것이다. 바그너와 폰타네가 19세기 후반 독일의 음악과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이라고 하였을 때, 이들이 자신이 속한 세계에 대해 보이는 반응은 그 당시 독일 문화계의 전반적인 양상을 결정하는 의미를 갖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반응을 특히 유대인 문제를 둘러싼 일상의식 및 정치의식의 측면과 사랑의 문제와 관련된 개인적, 윤리적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더 나아가 위의 문제들을 포괄하는 보다 큰 주제로서의 옛 것과 새 것 사이의 관계의 형상화와 관련하여 이들이 보이는 공통점과 차이를 고찰하였다. 이러한 고찰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독일 문화계를 대변하는 두 거장의 단순한 비교에 그치지 않고, 이러한 비교를 통해 독일 문화계의 핵심적인 양상을 전형적인 모습으로 보여주었다는 데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김문환: 바그너의 생애와 예술. 총체 예술의 원류. 서울 1997.
음악 지우사 편: 바그너. 서울 1999.
폰타네의 『슈테힐린 호수』는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창』과 비교해서 옛 것과 새 것 사이의 관계를 보다 복합적이고 포괄적으로 다루기는 하지만, 결론에 있어서는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폰타네가 바그너의 『명창』을 제일 좋아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폰타네가 바그너와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점은 무엇보다도 전통의 혁신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방식에서 그가 외래적인 것을 어떻게 자신의 사회, 문화 속으로 흡수하고 통합시키는냐 하는데 있다. 바그너는 독일적인 것을 진정한 예술로 간주하며, 다른 민족이나 나라의 예술들은 비본질이고 아류적인 것으로 가치 폄하한다. 타문화에 대한 바그너의 이러한 배타성이야말로 폰타네와 그를 구분시켜주는 가장 본질적인 차이일 것이다. 『슈테힐린 호수』에서 볼데마르는 고향의 로렌첸과 두브슬라프 노인을 통해서만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그는 베를린에 살고 있고 외국 경험도 있는 바르비 가족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의 견문을 넓히고 새로운 세계를 간접 체험할 수 있게 된다. 그의 영국 여행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일종의 자기 발전 과정의 일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나중에 다시 고향에 가 살기로 결정할 때, 이것은 단순히 독일의 한 작은 시골의 좁은 세계로 회귀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베를린과 영국이라는 보다 큰 세계를 경험함으로써 더 넓은 시야를 갖고 고향에 되돌아오는 것이다. 이것은 타자를 통한 자아의 확대를 의미한다. 더 나아가 슈테힐린 호수 역시 이 작품에서는 단순히 독일의 어느 한 지역에 속한 호수로 묘사되지 않는다. 이 호수는 리스본에서 지진이 일어나면 같이 반응한다고 할 정도로 세계의 변화와 시대의 흐름에 끊임없이 동참하는, 즉 타자와 자아를 함께 내재한 상징적 호수로서 등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폰타네가 지향하는 미래적인 것은 외래적인 것을 배제하는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적인 것이 아닌 독일적인 것과 외래적인 것을 변증법적으로 결합시키고 발전시키는 가운데 생겨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폰타네의 비평가인 호르히의 말을 빌어 우리는 바그너와 폰타네의 비교를 축약시켜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바그너의 악극이 예술에 대한 독일적 기여를 의미한다면, 폰타네의 소설은 예술에 대한 유럽적 기여가 될 것이다.
) Horch: Ansichten des 19. Jahrhunderts. Theodor Fontanes Verhaltnis zu Richard Wagner und dem Wagnerismus, S. 322.
Ⅲ. 결론
폰타네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바그너에 대한 입장 표명을 통해 자신의 성격, 세계관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 바그너의 악극은 폰타네의 소설에서 앞으로의 사건 전개에 대한 전조 내지 상황에 대한 암시를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우리는 위의 두 측면을 고찰함으로써 바그너에 대한 폰타네의 비판적 입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본고에서 보다 중점을 둔 사항은 19세기 후반의 동일한 시대적, 문화적 배경 하에서 바그너와 폰타네가 유사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관심사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는 차이를 보여주었다는 사실이다. 낡은 관습과 억압적 제도가 지배하는, 그러나 서서히 옛 것과 새 것의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19세기 중·후반의 독일 사회에 대해 이들은 각기 자기 나름대로의 해법을 찾았던 것이다. 바그너와 폰타네가 19세기 후반 독일의 음악과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이라고 하였을 때, 이들이 자신이 속한 세계에 대해 보이는 반응은 그 당시 독일 문화계의 전반적인 양상을 결정하는 의미를 갖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반응을 특히 유대인 문제를 둘러싼 일상의식 및 정치의식의 측면과 사랑의 문제와 관련된 개인적, 윤리적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더 나아가 위의 문제들을 포괄하는 보다 큰 주제로서의 옛 것과 새 것 사이의 관계의 형상화와 관련하여 이들이 보이는 공통점과 차이를 고찰하였다. 이러한 고찰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독일 문화계를 대변하는 두 거장의 단순한 비교에 그치지 않고, 이러한 비교를 통해 독일 문화계의 핵심적인 양상을 전형적인 모습으로 보여주었다는 데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김문환: 바그너의 생애와 예술. 총체 예술의 원류. 서울 1997.
음악 지우사 편: 바그너. 서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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