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랑쉬` 영화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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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블랑쉬` 영화를 보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줄거리

2. 평가

3. 17세기 프랑스

4. 역사적사실

5. 등장인물

6. 커피, 초콜릿

본문내용

또 167년에 영국으로 들어온 초콜릿은 얼마 뒤 당시에 유행하던 커피와 우열을 다투게 되었다. 1674년이 되면서 판형 초콜릿이 '스페인식 푸딩'으로 팔리면서 대중적은 당과류로 자리잡았다.
1697년에 는 런던에 새로운 유행 음료를 파는 '초콜릿 하우스' 라는 화려한 건물이 들어섰다. 스위스에는 1750년에서야 이탈리아 상인을 통해 초콜릿이 유입됨으로써 유럽에서 초콜릿을 가장 나중에 안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초콜릿이 전 유럽에 걸쳐 대중화되고 풍부한 기술력 향상으로 확실하게 성공을 거둔 것은 1세기 반이 더 지난 뒤였다.
♧ 커피 -
아랍 문헌에 커피에 대한 언급이 처음 나타난 때는 15세기 후반이다. 아랍 세계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사람은 이슬람교의 신비주의자들인 수피교도들이었다. 그들은 커피를 음료로 마셨던 것이 아니라 긴 밤 동안 기도 드리면서 잠들지 않게 하는 약으로 사용했다.
커피 열매를 그들에게 전한 사람은 다바니라는 학자였는데, 커피 열매를 의약용으로 쓰던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를 들여 왔다. 다바니가 예멘으로 돌아왔을 때 병이 들었는데 커피는 그를 병에서 구했을 뿐 아니라 기도할 힘까지 주었다. 그 후로 커피는 수피교도들 사이에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마침내 유럽에 커피는 온갖 병을 치유하는 만병통치약으로 소개됐다. 유럽인들은 나중에 아랍인들이 약효 때문이 아니라 커피의 향을 즐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유럽인들은 커피를 마시기 좋은 형태로 발전시켰다. 아랍은 이미 원두 커피 무역에 대한 독점권을 확보하고 있었다. 아랍인들은 그들의 커피를 지키기 위해 싹이 터서 발아할 수 있는 종자의 반출을 막고, 열매를 끓이거나 볶아서 유럽行 배에 선적했다. 외국인은 커피 농장 방문이 금지되었으며, 호주머니에 몰래 커피 열매나 묘목을 숨겨 달아나지 못하도록 감시당했다.
1616년 마침내 네덜란드의 한 상인이 인도의 순례자로부터 커피 열매를 입수해 그것을 유럽으로 밀반출했다. 이후 70년 동안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의 대규모 농장에서 커피를 재배했고, 커피는 네덜란드의 가장 인기 있는 음료가 되었다.
프랑스에 커피나무가 전래된 것은 1714년 암스테르담 시장이 루이 14세에게 커피나무를 선물한 때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프랑스가 본격적으로 커피를 재배할 수 있었던 것은 노르망디 출신의 젊은 군인 클리외의 애국적 정열 덕이었다.
루이 14세의 정원에서 커피 묘목 몇 그루를 구한 그는 자신이 근무하던 아메리카 식민지의 한 곳인 마르티니크 섬으로 향했고 한 그루의 나무를 옮겨 심는 데 성공했다. 이곳에서 무성하게 자란 커피는 프랑스령 기아나로 옮겨져 번성했다.
브라질에 커피가 전해진 사연은 한결 로맨틱하다. 프랑스령 기아나의 총독 부인이 화려한 꽃다발 속에 커피 묘목을 숨겨 잘 생긴 스페인 연대장에게 선물함으로써 그 묘목은 콜롬비아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고, 이어 브라질로 퍼져 나갔다. 그렇게 브라질과 콜롬비아로 보내진 커피는 최상의 재배 조건 위에서 잘 자라 두 나라를 세계 최대의 커피 생산국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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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1.20
  • 저작시기2003.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33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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