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들어가는 말 -뷔히너와 인간 문제 제기
Ⅱ. 본론
Ⅱ.1. 당통과 `살과 피를 지닌 인간 Mensch von Fleisch und Blut
Ⅱ.2. `살과 피를 지닌 인간`에 대한 로베스삐에르와 당통의 대립
Ⅱ.2.1. `살과 피를 지닌 인간`의 `인간애`와 당통
Ⅱ.3 `살과 피를 지닌 인간`을 대변하는 당통의 죽음과 그 의미
Ⅲ. 나오는 말 -당통과 뷔히너
Ⅱ. 본론
Ⅱ.1. 당통과 `살과 피를 지닌 인간 Mensch von Fleisch und Blut
Ⅱ.2. `살과 피를 지닌 인간`에 대한 로베스삐에르와 당통의 대립
Ⅱ.2.1. `살과 피를 지닌 인간`의 `인간애`와 당통
Ⅱ.3 `살과 피를 지닌 인간`을 대변하는 당통의 죽음과 그 의미
Ⅲ. 나오는 말 -당통과 뷔히너
본문내용
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하는 질의와 관련해 대부분의 논평가들은 만족할만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으나, 그러나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 Claude David, Danton vom Buchner aus gesehen. In: Georg Buchner, hrsg. v. Wolfgang Martens, a.a.O., S.333
s. auch Karl Viёtor, Die Tragodie des heldischen Pessimismus.
비에토올의 말을 빌리면 뷔히너는 ≫발렌슈타인의 죽음 Wallensteins Tod≪, ≫탓소 Tasso≪등에서처럼 그의 『당통의 죽음』을 통해 비경향적이고, 시대 초월적이며, 언제나 통용되는 것을 나타내고자 했다는 것이다.
참고: 프릿쉬 Max Frisch는 뷔히너의 문학을 "체념", 그러나 투쟁적 체념 eine Resignation, eine kombattante Resignation"이라고 하고 있다. (재인용 nach: 임호일, 게오르그 뷔히너의『레옹세와 레나』나타난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 독일문학』 제56집, 한국독어독문학회, 서울 1995, P.45
논자도 다른 많은 논평가들처럼 당통이 작품 마지막에 맞이하게 되는 "죽음"은 단순한 생명의 단절도 아니고, 현실에서의 좌절도 아닌, 보다 높은 차원에 존재하는 "미덕"을 지향하는 고귀한 "죽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하겠다. 즉 "미덕은 포상과 벌칙을 떠난 참된 인간 스스로의 조화인데, 이는 감성을 초월함으로써 획득되어 진다. 이 미덕은 감각적인 쾌락이나 불쾌를 초월한 가장 최고의 내면적인 평온함과 고귀함을 전제하고 있다. 미덕은 현인을 무감각하게 만들지 않으나, 그러나 감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존재로, 그리고 현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생명까지도 감수하게 해서 목숨을 끊게도 한다"
) G. Buchner, [Kato von Utika] [ 29.Sept. 1830]. In: Georg Buchner, Werke und Briefe, a.a.O., S.451
라고 작가 뷔히너는 그가 발표한『우티카의 카토 Kato von Utika』에서 진술하고 있다. 뷔히너에 따르면 고대 로마인 카토
) 카토 Marcus Porcius Cato는 기원전 95-46년 사람으로, 기원전 234-149년 살았던 그의 증조 할아버지인 카토의 증손이다. 증손인 카토는 공화국주의자이고, 시저의 적대자로서 시저가 아프리카의 우티카에서 있은 싸움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함으로써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도시의 이름을 따서 그는 우티센시스 Uticensis라는 별명을 얻는다. (Er lauterungen und Dokumente, Georg Buchner, Dantons Tod, hrsg. v. Josef Jansen, a.a.O., S.17)
증조 할아버지인 카토 Marcus Porcius Cato는 로마의 정치가이고 관료로써 엄한 윤리의 고대 로마기풍의 대변자이고, 헬레니즘의 파괴적인 영향에 맞서 모범적인 고대 라틴어로서 고대 로마기풍을 지켰다. 그가 행하는 연설 마지막에는 카르타고의 붕괴를 요구했다. 윤리의 강직함에 있어 그는 로베스삐에르의 표상이 되었다. (Ibid.)
는 시저와의 투쟁에서 패배함으로써 그의 앞에 놓인 굽힐 수 없는 현실을 인식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나, 그러나 이는 현실에서의 좌절이 아니고, "그의 가장 순수했던 확신의 결과 die Folge seiner reinsten berzeugung",
) G. Buchner, [Kato von Utika]. In: Georg Buchner, Werke und Briefe, a.a.O., S.451
즉 "흔들리지 않는 미덕으로 가득한 그는, 미덕으로 자신을 보이기보다는 차라리 미덕답고자 했는 Voll unserschutterlich -er Tugend, wollt er lieber tugendhaft sein als scheinen"
) Ibid.
"확신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로서 카토의 "죽음"은 그가 몸둔 현실에서의 좌절이 결코 아니고, 그의 확고한 내면적인 도전이라고 하겠다. 이 내면적인 도전, 즉 보다 높은 단계의 "미덕"을 지향하는 카토의 "죽음"은 "살과 피를 지닌 인간" 편에 서있는 당통의 도전이기도 하다.
Ⅲ. 나오는 말
-당통과 뷔히너
『당통의 죽음』에서의 인물 당통의 "죽음"에 대한 다각적인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논자가 살펴 본 "살과 피를 지닌 인간"에 측면에서 볼 때, "인간개조"를 목표로 하는 로베스삐에르의 이념적이고도 비인간애적인 혁명행위에 의해 "살과 피를 지닌 인간"은 이의 희생물이 되고 있다는 점을 뚜렷이 하고 있다. 이런 부정적인 면을 뷔히너는 "무행위"로 일관하고 있는 당통을 통해 확인케 하고 있다. 즉 메르시에 Mercier의 견해에 땅똥은 다음과 같이 동참한다.
"메르시에. 그렇지 않나, 라크르와,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칼날을 모든 사람의 머리위로 왔다갔다하고 있으니[...] 이 잔혹한 자들, 사형수들, 그리고 길로틴은 너희들의 살아 있는 웅변이다. 너희들은 마치 바야제트
) 아마도 터어키 황제 바야시드 1세 (1389-1402)가 아닌가 본다. 그는 3년 후에 발칸을 정복했고, 그리고 콘스탄티노펠을 포위했다. (Erlauterungen und Dokumente, Georg Buchner, hrsg. v. Josef Jansen, a.a.O., S.34)
가 인간들의 머리들로 피라밋트를 세운 것 같이 너희들 기구들을 인간 머리들로 만들고 있다.
당통. 자네 말이 맞아 오늘날 인간은 모든 것을 인간살로 작업하고 있지."
) G. Buchner, Werke und Briefe, a.a.O., S.56-7 (3.Akt, 3.Szene)
위의 대화에서 뚜렷이 하고 있듯이, 어떻게 해볼 수 없는 힘앞에 현실에서 펼쳐지는 인간살육의 작업에 대한 당통의 수긍은 반드시 절망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유인즉 그의 수긍이면에는 그러나 미래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묵시적인 당통의 부인, 즉 인간살육 작업은 이젠 사라져야만 되리라는 인간살육 작업의 부인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겠다.
다
) Claude David, Danton vom Buchner aus gesehen. In: Georg Buchner, hrsg. v. Wolfgang Martens, a.a.O., S.333
s. auch Karl Viёtor, Die Tragodie des heldischen Pessimismus.
비에토올의 말을 빌리면 뷔히너는 ≫발렌슈타인의 죽음 Wallensteins Tod≪, ≫탓소 Tasso≪등에서처럼 그의 『당통의 죽음』을 통해 비경향적이고, 시대 초월적이며, 언제나 통용되는 것을 나타내고자 했다는 것이다.
참고: 프릿쉬 Max Frisch는 뷔히너의 문학을 "체념", 그러나 투쟁적 체념 eine Resignation, eine kombattante Resignation"이라고 하고 있다. (재인용 nach: 임호일, 게오르그 뷔히너의『레옹세와 레나』나타난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 독일문학』 제56집, 한국독어독문학회, 서울 1995, P.45
논자도 다른 많은 논평가들처럼 당통이 작품 마지막에 맞이하게 되는 "죽음"은 단순한 생명의 단절도 아니고, 현실에서의 좌절도 아닌, 보다 높은 차원에 존재하는 "미덕"을 지향하는 고귀한 "죽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하겠다. 즉 "미덕은 포상과 벌칙을 떠난 참된 인간 스스로의 조화인데, 이는 감성을 초월함으로써 획득되어 진다. 이 미덕은 감각적인 쾌락이나 불쾌를 초월한 가장 최고의 내면적인 평온함과 고귀함을 전제하고 있다. 미덕은 현인을 무감각하게 만들지 않으나, 그러나 감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존재로, 그리고 현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생명까지도 감수하게 해서 목숨을 끊게도 한다"
) G. Buchner, [Kato von Utika] [ 29.Sept. 1830]. In: Georg Buchner, Werke und Briefe, a.a.O., S.451
라고 작가 뷔히너는 그가 발표한『우티카의 카토 Kato von Utika』에서 진술하고 있다. 뷔히너에 따르면 고대 로마인 카토
) 카토 Marcus Porcius Cato는 기원전 95-46년 사람으로, 기원전 234-149년 살았던 그의 증조 할아버지인 카토의 증손이다. 증손인 카토는 공화국주의자이고, 시저의 적대자로서 시저가 아프리카의 우티카에서 있은 싸움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함으로써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도시의 이름을 따서 그는 우티센시스 Uticensis라는 별명을 얻는다. (Er lauterungen und Dokumente, Georg Buchner, Dantons Tod, hrsg. v. Josef Jansen, a.a.O., S.17)
증조 할아버지인 카토 Marcus Porcius Cato는 로마의 정치가이고 관료로써 엄한 윤리의 고대 로마기풍의 대변자이고, 헬레니즘의 파괴적인 영향에 맞서 모범적인 고대 라틴어로서 고대 로마기풍을 지켰다. 그가 행하는 연설 마지막에는 카르타고의 붕괴를 요구했다. 윤리의 강직함에 있어 그는 로베스삐에르의 표상이 되었다. (Ibid.)
는 시저와의 투쟁에서 패배함으로써 그의 앞에 놓인 굽힐 수 없는 현실을 인식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나, 그러나 이는 현실에서의 좌절이 아니고, "그의 가장 순수했던 확신의 결과 die Folge seiner reinsten berzeugung",
) G. Buchner, [Kato von Utika]. In: Georg Buchner, Werke und Briefe, a.a.O., S.451
즉 "흔들리지 않는 미덕으로 가득한 그는, 미덕으로 자신을 보이기보다는 차라리 미덕답고자 했는 Voll unserschutterlich -er Tugend, wollt er lieber tugendhaft sein als scheinen"
) Ibid.
"확신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로서 카토의 "죽음"은 그가 몸둔 현실에서의 좌절이 결코 아니고, 그의 확고한 내면적인 도전이라고 하겠다. 이 내면적인 도전, 즉 보다 높은 단계의 "미덕"을 지향하는 카토의 "죽음"은 "살과 피를 지닌 인간" 편에 서있는 당통의 도전이기도 하다.
Ⅲ. 나오는 말
-당통과 뷔히너
『당통의 죽음』에서의 인물 당통의 "죽음"에 대한 다각적인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논자가 살펴 본 "살과 피를 지닌 인간"에 측면에서 볼 때, "인간개조"를 목표로 하는 로베스삐에르의 이념적이고도 비인간애적인 혁명행위에 의해 "살과 피를 지닌 인간"은 이의 희생물이 되고 있다는 점을 뚜렷이 하고 있다. 이런 부정적인 면을 뷔히너는 "무행위"로 일관하고 있는 당통을 통해 확인케 하고 있다. 즉 메르시에 Mercier의 견해에 땅똥은 다음과 같이 동참한다.
"메르시에. 그렇지 않나, 라크르와,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칼날을 모든 사람의 머리위로 왔다갔다하고 있으니[...] 이 잔혹한 자들, 사형수들, 그리고 길로틴은 너희들의 살아 있는 웅변이다. 너희들은 마치 바야제트
) 아마도 터어키 황제 바야시드 1세 (1389-1402)가 아닌가 본다. 그는 3년 후에 발칸을 정복했고, 그리고 콘스탄티노펠을 포위했다. (Erlauterungen und Dokumente, Georg Buchner, hrsg. v. Josef Jansen, a.a.O., S.34)
가 인간들의 머리들로 피라밋트를 세운 것 같이 너희들 기구들을 인간 머리들로 만들고 있다.
당통. 자네 말이 맞아 오늘날 인간은 모든 것을 인간살로 작업하고 있지."
) G. Buchner, Werke und Briefe, a.a.O., S.56-7 (3.Akt, 3.Szene)
위의 대화에서 뚜렷이 하고 있듯이, 어떻게 해볼 수 없는 힘앞에 현실에서 펼쳐지는 인간살육의 작업에 대한 당통의 수긍은 반드시 절망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유인즉 그의 수긍이면에는 그러나 미래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묵시적인 당통의 부인, 즉 인간살육 작업은 이젠 사라져야만 되리라는 인간살육 작업의 부인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겠다.
다
추천자료
예수의 역사적 배경
A+ 안락사(여러가지 정의와 이슈)
한국신화의 이해
자살에 대한 고찰
안락사의 정의와 그 정당성에 대한 윤리적 고찰
자살에 관한 사회적 통념과 사실, 자살구상행동의 단계, 자살의 원인, 청소년자살의 특성, 자...
[뇌사][뇌사인정][뇌사판정기준][뇌사설]선진국의 뇌사인정 사례를 통해 본 뇌사판정기준의 ...
안락사 논란
[핫이슈] 존엄사에대한 모든것 정의, 종류, 찬성의견,반대의견
[존엄사]존엄사(소극적 안락사)에 대한 논란과 찬반입장 - 존엄사의 의미
안락사와 임신중절
생활과 법률 존엄사
노인자살
(A+ 레포트,시험대비) [정신건강론] 자살의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