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문제 제기
Ⅱ. 근 현대의 상징으로서 모더니즘
Ⅲ. 우리 시대의 상징으로서 포스터모더니즘
Ⅳ. 마무리
Ⅱ. 근 현대의 상징으로서 모더니즘
Ⅲ. 우리 시대의 상징으로서 포스터모더니즘
Ⅳ. 마무리
본문내용
확보에 의해 주체로서 존재해야 한다. 이런 까닭에 푸코는 근대의 계몽이 지니는 반계몽성을 비판하고 포스트모더니즘으로서의 계몽의 조건을 검토하고자 한다. 우리 시대의 계몽은 정치·사회적 권력에 대항하기 위해 우리를 구속하는 사회적 기제들이 어떻게 형성되엇는가를 역사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우리 시대의 계몽은 이미 이데올로기의 시대를 거쳐 온 탓에 어떤 이념에 의한 전체적인 변화를 추구할 수는 없다. 오로지 부분적인 변화에 의해서만 권력의 억압으로부터 탈출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계몽은 권력이 창출한 담론의 질서, 정치적 합리성의 바깥을 통찰함으로써 전체화의 논리를 극복하고 주체로서의 자유를 확보해야 한다.
환경세계와 생활세게에서 인간 현존재가 자신의 결단을 통해 구체적·주관적·상대적인 특수세게를 열어 젖힘으로써 실존적인 자신의 삶 속에서 세계-내-존재가 되고, 개인은 매 시기마다 자신을 억압하여 전체성 속에서 틀화하고자 하는 정치·사회적 권력에 대항하여 싸움으로써 개인의 힘을 인식하고, 그 속에서 주체가 된다. 권력과의 싸움에서 주체를 확보한 개인은 공동체의 맥락 속에서 연대적 실천을 모색한다. 인간 현존재는 자신의 세계를 갖는다는 의미에서 과학적 이성에 의해 확보된 총체적인 하나의 세게를 해체하고, 주관적·상대적 세계를 갖기 때문에 통일적이고 사변적인 주체로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부터 구별되는(다양한 주체 속에서 존재하는) 구체적인 주체가 된다. 뿐만 아니라 권력과의 투쟁 속에서 소외된 담론질서를 회복하고자 하는 개인의 싸움은 억압되고 소외된 것들을 드러내 주어 자신의 자리를 되찾게 하고, 이를 통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권력 질서를 만들게 할 것이다. 리오타르는 이와 같은 우리 시대의 사회적 담론질서를 한 마디로 큰 이야기의 붕괴, 메타 이야기에 대한 불신으로 파악한다. 근대사회가 큰 이야기에 의존하여 이론과 행동을 정당화하고, 통일성과 총체성을 유지했다면 우리 시대의 사회는 이러한 큰 이야기에 의해 지탱될 수가 없다.
리오타르는 우리 시대의 사회가 다양한 언어게임에 의해 사회적 유대를 형성한다고 말한다.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삶을 근거 지우는 지식의 체계를 두 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과학적 지식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야기적 지식이다. 과학적 지식응 지시적 언어게임만을 수행하고, 이야기적 지식은 사회의 기준에 다름아닌 능력의 기준을 규정하여 사회적 행위들을 평가한다. 이야기는 과학적 지식과는 달리 다양한 언어게임을 허용하며, 이를 통해 사회적 유대를 형성한다. 과학적 지식이 검증이나 반증의 대상이라고 한다면 이야기적 지식은 문화 속에서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두 지식은 불가공약성을 지닌다. 인간과 삶에 관심이 있는 우리에게는 여기에서 과학적 지식보다는 이야기적 지식이 중요하고 의미있다. 우리의 지식은 푸코의 개인의 힘(권력)처럼 다양한 언어게임을 억압하는 테러에 대항하여 언어의 이질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만약 다양한 언어질서를 규정하는 규칙이 있다면 그것은 전체적 합의가 아니라 국부적 합의이며 잠정적이다. 이것은 마치 인간 현존재가 실존적 삶을 수행하는 세게를 확립했을 때, 그 세계가 임시성을 지니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Ⅳ. 마무리
유럽의 근대가 중세와의 투쟁 속에서 성취되고, 유럽의 현대가 근대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새로이 형성되려고 한다면, 우리의 근대는 무엇과의 투쟁 속에서 형성되고, 지금 우리의 시대는 어떤 근대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유럽의 근대는 새로운 경제적 토대와 경제적 주체(혹은 계급)로부터 시작되어 종교적·이념적·문화적 재구성을 시도하려고 한다. 해방으로서의 근대성이 이미 더 이상 새로운 사회를 구성할 수 없고 오히려 역으로 억압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으로 말미암아 근대로부터 해방하려는 시도들이 지금의 선진사회의 이념적·문화적 논쟁이며, 사회적·정치적 제도의 변화이며, 재구성의 시도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어떤 논쟁을 시작해야 할 것이며, 어떤 변화를 꿈꾸어야 하는 것일까? 우리의 근대는 우리 자신의 삶의 토대인 역사 속에서 씨앗을 잉태하여 그 형성을 방해하고 억압ㅎ사는 이념과 제도와의 끈질긴 싸움을 통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외적으로 주어진 상황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별다른 갈등없이 형성되어 왔다. 경제적 토대의 변화와 경제적 주체의 성립, 이에 따른 미성숙된 사회구조와 정체제도의 확정이 우리 삶의 근대를 형성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근대 사회의 형성은 전통사회와 어떤 갈등도 없이 이루어졌단 말인가.
경제적 토대의 변화와 경제적 주체의 성립, 이에 따른 미성숙된 사회구조와 정치제도의 확정이 젼통사회와아무런 갈등없이 존재할 수 있었단 말인가? 더욱이 전통적인 도덕감, 삶의 질서, 정서적 유대, 지적·문화적 공감대를 어떻게 넘어 설 수 있었단 말인가? 외적인 변화로서 근대의 성취는 전통 사회와의 어떤 관계에서 어떤 부분을 전승했으며, 어떤 부분과 갈등을 일으키며 조정되었는가. 아니면 힘없는 전통사회의 이념적 질서를 송두리채 빼던지고 정신없는 물적 토대화 사회적 질서만을 무작정 이식한 것은 아니가. 아니면 우리 사회의 외형적 변화는 근대화를 이룩했어도 이념적·정신적·문화적 조건은 여전히 전통사회와의 관게에서 자기변화를 성취하지못하고, 이 조건이 우리식의 근대화를 제약하고 우리사회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또한 외적 근대화의 성취는 도덕적·문화적 측면에 있어서 극심한 세대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물질적 근대화의 성취를 주도했던 세대들은 전통적인 의식 속에서 살고 있되, 근대화의 성취로서 형성된 물질적 푸요와 그에 걸맞는 삶을 살고자 하는 세대들은 전혀 이질적인 의식 속에 살기 때문에 형성된 심연은 어떻게 메꿀 수가 있단 말인가. 근대성(모더니즘)도 성취하기 전에 등장한 새로운 이념(포스트모더니즘)은 우리를 어떤 상황 속에 빠뜨릴 것인가. 우리 시대를 제정신으로 살고자 할 때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이념의 전법(典範)은 무엇인가. 이제 우리의 출발은 우리가 발딛고 서있는 이 삶의 장으로부터일 것이다.
참고문헌
1. 손호철: [근대와 탈근대의 정치학], 문화과학사, 2002
환경세계와 생활세게에서 인간 현존재가 자신의 결단을 통해 구체적·주관적·상대적인 특수세게를 열어 젖힘으로써 실존적인 자신의 삶 속에서 세계-내-존재가 되고, 개인은 매 시기마다 자신을 억압하여 전체성 속에서 틀화하고자 하는 정치·사회적 권력에 대항하여 싸움으로써 개인의 힘을 인식하고, 그 속에서 주체가 된다. 권력과의 싸움에서 주체를 확보한 개인은 공동체의 맥락 속에서 연대적 실천을 모색한다. 인간 현존재는 자신의 세계를 갖는다는 의미에서 과학적 이성에 의해 확보된 총체적인 하나의 세게를 해체하고, 주관적·상대적 세계를 갖기 때문에 통일적이고 사변적인 주체로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부터 구별되는(다양한 주체 속에서 존재하는) 구체적인 주체가 된다. 뿐만 아니라 권력과의 투쟁 속에서 소외된 담론질서를 회복하고자 하는 개인의 싸움은 억압되고 소외된 것들을 드러내 주어 자신의 자리를 되찾게 하고, 이를 통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권력 질서를 만들게 할 것이다. 리오타르는 이와 같은 우리 시대의 사회적 담론질서를 한 마디로 큰 이야기의 붕괴, 메타 이야기에 대한 불신으로 파악한다. 근대사회가 큰 이야기에 의존하여 이론과 행동을 정당화하고, 통일성과 총체성을 유지했다면 우리 시대의 사회는 이러한 큰 이야기에 의해 지탱될 수가 없다.
리오타르는 우리 시대의 사회가 다양한 언어게임에 의해 사회적 유대를 형성한다고 말한다.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삶을 근거 지우는 지식의 체계를 두 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과학적 지식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야기적 지식이다. 과학적 지식응 지시적 언어게임만을 수행하고, 이야기적 지식은 사회의 기준에 다름아닌 능력의 기준을 규정하여 사회적 행위들을 평가한다. 이야기는 과학적 지식과는 달리 다양한 언어게임을 허용하며, 이를 통해 사회적 유대를 형성한다. 과학적 지식이 검증이나 반증의 대상이라고 한다면 이야기적 지식은 문화 속에서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두 지식은 불가공약성을 지닌다. 인간과 삶에 관심이 있는 우리에게는 여기에서 과학적 지식보다는 이야기적 지식이 중요하고 의미있다. 우리의 지식은 푸코의 개인의 힘(권력)처럼 다양한 언어게임을 억압하는 테러에 대항하여 언어의 이질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만약 다양한 언어질서를 규정하는 규칙이 있다면 그것은 전체적 합의가 아니라 국부적 합의이며 잠정적이다. 이것은 마치 인간 현존재가 실존적 삶을 수행하는 세게를 확립했을 때, 그 세계가 임시성을 지니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Ⅳ. 마무리
유럽의 근대가 중세와의 투쟁 속에서 성취되고, 유럽의 현대가 근대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새로이 형성되려고 한다면, 우리의 근대는 무엇과의 투쟁 속에서 형성되고, 지금 우리의 시대는 어떤 근대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유럽의 근대는 새로운 경제적 토대와 경제적 주체(혹은 계급)로부터 시작되어 종교적·이념적·문화적 재구성을 시도하려고 한다. 해방으로서의 근대성이 이미 더 이상 새로운 사회를 구성할 수 없고 오히려 역으로 억압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으로 말미암아 근대로부터 해방하려는 시도들이 지금의 선진사회의 이념적·문화적 논쟁이며, 사회적·정치적 제도의 변화이며, 재구성의 시도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어떤 논쟁을 시작해야 할 것이며, 어떤 변화를 꿈꾸어야 하는 것일까? 우리의 근대는 우리 자신의 삶의 토대인 역사 속에서 씨앗을 잉태하여 그 형성을 방해하고 억압ㅎ사는 이념과 제도와의 끈질긴 싸움을 통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외적으로 주어진 상황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별다른 갈등없이 형성되어 왔다. 경제적 토대의 변화와 경제적 주체의 성립, 이에 따른 미성숙된 사회구조와 정체제도의 확정이 우리 삶의 근대를 형성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근대 사회의 형성은 전통사회와 어떤 갈등도 없이 이루어졌단 말인가.
경제적 토대의 변화와 경제적 주체의 성립, 이에 따른 미성숙된 사회구조와 정치제도의 확정이 젼통사회와아무런 갈등없이 존재할 수 있었단 말인가? 더욱이 전통적인 도덕감, 삶의 질서, 정서적 유대, 지적·문화적 공감대를 어떻게 넘어 설 수 있었단 말인가? 외적인 변화로서 근대의 성취는 전통 사회와의 어떤 관계에서 어떤 부분을 전승했으며, 어떤 부분과 갈등을 일으키며 조정되었는가. 아니면 힘없는 전통사회의 이념적 질서를 송두리채 빼던지고 정신없는 물적 토대화 사회적 질서만을 무작정 이식한 것은 아니가. 아니면 우리 사회의 외형적 변화는 근대화를 이룩했어도 이념적·정신적·문화적 조건은 여전히 전통사회와의 관게에서 자기변화를 성취하지못하고, 이 조건이 우리식의 근대화를 제약하고 우리사회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또한 외적 근대화의 성취는 도덕적·문화적 측면에 있어서 극심한 세대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물질적 근대화의 성취를 주도했던 세대들은 전통적인 의식 속에서 살고 있되, 근대화의 성취로서 형성된 물질적 푸요와 그에 걸맞는 삶을 살고자 하는 세대들은 전혀 이질적인 의식 속에 살기 때문에 형성된 심연은 어떻게 메꿀 수가 있단 말인가. 근대성(모더니즘)도 성취하기 전에 등장한 새로운 이념(포스트모더니즘)은 우리를 어떤 상황 속에 빠뜨릴 것인가. 우리 시대를 제정신으로 살고자 할 때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이념의 전법(典範)은 무엇인가. 이제 우리의 출발은 우리가 발딛고 서있는 이 삶의 장으로부터일 것이다.
참고문헌
1. 손호철: [근대와 탈근대의 정치학], 문화과학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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