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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게 평가했으며, 문제제기를 하는 그 순간에도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함을 잊지 않았다. 이는 오늘날 자기만을 알고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일 줄 모르는 자기중심적 문화에 익숙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오늘날은 모든 것이 너무도 편리하게 행해진다. 어느 시간, 어느 곳에서나 이메일을 보내거나 함께 대화하는 일이 가능한 시대를 우린 살고 있다. 하지만 정보화 사회의 도래와 함께 오히려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깊이는 더욱 얕아진 듯 하다. 가입과 탈퇴가 자유자재로 이루어지는 까페나 커뮤니티는 더 이상 인간적인 정에 대해 보증해주지 않는다. 익명성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무책임한 발언과 원색적인 욕설이 난무하는 속에서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진실된 인간적 감정을 그리워하게 되는 듯 싶다. 현대적 교통도, 기기의 화려함도 존재치 않던 시절, 퇴계가 사망하던 해까지 무려 13년 동안 끊이지 않고 계속된 편지가 시대를 초월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읽히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인 듯 하다. 진실된 정을 나누면서도 학문적 치열함을 견지했던 두 사람, 그 따스함은 나를 절로 미소짓게 만들어주었다.
내가 이 사회에 의미를 남길 교류를 가질 주체는 못 될지라도, 시간이나 공간을 넘어 사람들을 만날 기회는 많았을 것이다. 단지 나의 게으름과 부족했던 정성으로 십년의 세월, 나아가 평생을 가져갈 만남을 순간에 그치게 만들어 왔지 않나 한다. 특히, 나를 고쳐 주려던 사람들을 석연치 않은 자존심에 물리쳤던 어리석음에 한스러워하며, 자신의 비워 상대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우리의 옛 분들을 그린다.
생각해보면 오늘날은 모든 것이 너무도 편리하게 행해진다. 어느 시간, 어느 곳에서나 이메일을 보내거나 함께 대화하는 일이 가능한 시대를 우린 살고 있다. 하지만 정보화 사회의 도래와 함께 오히려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깊이는 더욱 얕아진 듯 하다. 가입과 탈퇴가 자유자재로 이루어지는 까페나 커뮤니티는 더 이상 인간적인 정에 대해 보증해주지 않는다. 익명성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무책임한 발언과 원색적인 욕설이 난무하는 속에서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진실된 인간적 감정을 그리워하게 되는 듯 싶다. 현대적 교통도, 기기의 화려함도 존재치 않던 시절, 퇴계가 사망하던 해까지 무려 13년 동안 끊이지 않고 계속된 편지가 시대를 초월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읽히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인 듯 하다. 진실된 정을 나누면서도 학문적 치열함을 견지했던 두 사람, 그 따스함은 나를 절로 미소짓게 만들어주었다.
내가 이 사회에 의미를 남길 교류를 가질 주체는 못 될지라도, 시간이나 공간을 넘어 사람들을 만날 기회는 많았을 것이다. 단지 나의 게으름과 부족했던 정성으로 십년의 세월, 나아가 평생을 가져갈 만남을 순간에 그치게 만들어 왔지 않나 한다. 특히, 나를 고쳐 주려던 사람들을 석연치 않은 자존심에 물리쳤던 어리석음에 한스러워하며, 자신의 비워 상대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우리의 옛 분들을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