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준과 갑오농민전쟁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전봉준과 갑오농민전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 론

2. 본 론
(1) 인간 전봉준
(2) 조선후기의 봉건 지배체제 상황
(3) 갑오농민전쟁의 전개과정
(4) 전봉준과 갑오농민전쟁의 역사적 의의

3. 결 론

본문내용

사회변혁의 중요 요소로 등장했다. 이때에 이르러 여러 형태로 분산되어 있던 민중사상들의 내적 연결과 통합이 이루어지면서 조선 현실을 진단하고 민중주체의 미래상을 제시하는 구체적인 자기 위상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상의 통합과정이 한편으로 그 각각의 사상에 관련된 계층들의 결집과정과 무관하지 않다면 확실히 19세기-주로 후반기-는 계급의 분화에 따른 새로운 저항세력의 결집이 일어난 시기로 볼 수 있겠다. 결집된 저항세력은 민중사상의 소극적인 측면과 적극적인 측면의 양면성을 동시에 포용하면서 그것이 그리는 미래상을 현실적으로 구현시켜나가야 했다.
젊은 시절 전봉준은, 조선 봉건체제에 대한 저항적 이념으로 작용하면서 새로운 지평을 스스로 열어온 민중사상을 능동적으로 수용하여 사회변혁의 사상적 토양으로서, 전술적 도구로서 체득하였다. 또 이런 민중사상적 맥락에서 종교 형태로서 제시된 동학에도 몸을 담았다. 그리고 몰려오는 외세의 침략-특히 일본의 침략-에 저항하는 척왜양의 대중운동을 주도하기도 했고, 조선의 체제모순을 제거하기 위한 반봉건의 횃불을 들기도 했다. 이렇게 살아온 길은 당시 해체되어가던 조선사회의 소용돌이를 헤쳐나가려는 한 농촌지식인의 자기 존재확인에 성실한 삶의 행로였으며, 1894년 농민전쟁에로 수렴되어가던 커다란 두 전통의 계승자로서 자기 역량을 키워나간 한 변혁주체의 부단한 현실 투쟁 과정이었다.
전봉준이 농민봉기와 민중사상의 계승자로서 조선에 부과된 과제에 접근하는 의식의 커다란 전환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첫째, 인간의 능력은 선천적으로 동질성에 바탕하고 있다. 그리고 그 능력은 후천적인 평등성에 입각하여 발휘된다. 둘째, 인간의 평등성으로부터 신분의 차별과 그 세습은 인정될 수 없다. 신분과 경제적 활동은 무관하다. 셋째, 인간에게 제한된 생산계급이 따로 존재하여 그들만이 생산활동에 종사하는 것이 아니다. 또 그들만이 조세 대상자로 설정될 수 없다. 그리고 노동의 대가로 얻어진 경제적 부는 부당한 권력과 권위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전봉준의 이와같은 개혁사상은 당시 봉건사회를 총체적으로 개혁하려는 혁명적인 것이었다. 이런 개혁사상은 제도적 장치에 의해 뒷받침되어야만 현실사회에 뿌리를 내릴 수 있으므로 당대의 모순을 극복할 정치체제구상과 맞물려 있지 않으면 한낱 관념의 유희로 끝날지도 모른다. 그런데 전봉준의 체제구상은 곧 농민전쟁의 과정에서 구체화되었고, 또 그것을 실현하려는 농민세력의 뒷받침이 있었다.
실학자들의 개혁론 중 정치체제구상은 그 당시 정치적 실세와 연결되지 못함으로써 사실상 실현 불가능했다. 또 그들 스스로가 그것을 추진할 주도세력이 될 수 없었다는 점도 한계였다. 한 예로써 정약용의 정치체제구상이 정조와 같은 개명군주에 의해 실현될 수도 있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약용의 바람이었고 현실적으로 그런 군주는 정조 이후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또 그것이 군주를 그 개혁론의 중심-개혁을 추진할 권력의 원천으로서-에 둔다는 점에서 민중적일 수 없었다. 또 기술관료의 등용에 있어서도 신분의 전면적 철폐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제한적 기회만을 주었다는 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전봉준의 체제구상은 아래에서 올라오는 엄청난 힘을 바탕으로 하였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런 점에서 실학자들의 치명적인 한계-추진세력 문제-가 전봉준에게서 극복되었고, 또 실학자들의 제한적 구상과 비민중적인 입장이 전봉준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현실적이고 민중적인 것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그런 전봉준의 체제구상도 일본제국주의 세력과 국내 반동세력의 야합에 의하여 사실상 이땅에서 실현되지 못하고 말았다.
Ⅲ. 결 론
전봉준이 살았던 구한말 시대 상황과 지금의 시대상황은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조선의 봉건지배체제가 그 균열상을 심하게 나타내며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다면, 현 남한사회는 극도로 심화되는 자본주의체제의 모순과 초국적 독점 자본을 앞세운 제국주의와 다국적 기업의 횡포에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야만의 광폭 속에 여전히 억압받고 있는 것은 이땅 민중들이다. 실업자수는 200만을 기록하고 있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750만-전체 노동자수의 60%에 달하는-에 달한다. 또한 지배계급들은 이러한 민중들의 아픔을 외면한 채, 진흙탕 정치싸움에만 몰두하고 있으며 가진 자들은 더욱 자신의 배를 채우기에만 급급하다. 남한 사회는 20-80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 속에 끼니를 굶는 아이들이 늘어가고 있고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거리로 내쫓긴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은 기본적인 생존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국가는 국가의 고유 업무인 의료, 교육, 재해 구제 등에서 그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이며 그 책임을 모두 민중에게 전가하고 있다.
이러한 물결 속에서 역사의 주인이며 생산의 주체인 노동자들은 기만적인 자본과 정권에 저항해 거리로 나오고 있다. 노동자들은 연대파업-임금협상에 따른 경제파업 뿐만 아니라, 현 지배체제에 대항한 정치파업 형태-으로 자신들의 요구와 권리를 되찾기 위해 나서며 자본주의체제의 핵심인 이윤에 심대한 타격을 입히고 있다.
갑오농민전쟁 기간에 당시 조선 민중들이 보여준 자치의 모습-집강소 형태로 나타난-은 봉건체제의 생산계급이였던 농민들이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일궈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중요한 역사적 경험을 보여주고 있다. 현 자본주의체제의 생산계급인 노동자들 역시 세상을 통제하며 자신들의 삶을 계획하며 이끌어갈 수 있는 힘이 있다. 또한 1990년대 동구권의 몰락으로 인해 시대의 뒤안길로 쫓겨났던 사회주의 사상이 다시 조명 받고 있으며, 그 유효함으로 인해 사회주의사상은 현 체제의 질곡을 걷어낼 수 있는 사회변혁적 사상으로써 여전히 미래의 대안적 사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 후기 당시, 갑오농민전쟁에서 전봉준과 농민군이 흘린 피는 21세기 폭력적인 자본주의의 시대에 사회변혁의 주체인 노동자들의 맥박이 되어 뛰고 있으며, 이땅 생산의 주체인 노동자계급이 사라지지 않는 한 시대적 모순을 해결하려는 노동자들의 몸짓은 계속될 것이다.
  • 가격2,000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04.06.06
  • 저작시기2004.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54280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