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인상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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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후기인상주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그린 것으로 나는 충분한 슬픔과 극도의 고독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같다." 테오에게의 편지에 이렇게 적고 있다. 오베르의 종말기에 그는 옆으로 길게 된, 그에게 있어 새로운 규격의 그림을 시도했다. 지평선의 넓은 전망에 대한 그의 잠재의식이 예견한 종말의 의식과 함께, 대지가 폭풍 속에서 바다처럼 사납게 일렁이는 거기에 까마귀가 활개치며 나르는 불안한 화면을 통하여 그는 영혼의 고독과 슬픔을 절규하고 있다. '앞날의 예감도 어둡다. 나는 미래를 행복한 빛 속에서 보는 것이 전혀 되질 않는다.' 절망감은 그를 못 견디게 하고 있었다.
2) 폴 고갱[Paul Gauguln / 1848~1903]
1876년 회화에 매료되어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가하고 인상주의의 영향으로 밝은 색 조를 표현하였다. 그는 세잔느에 자극을 받고는 세잔느가 형의 단순화를 찾는다면 고갱은 색의 단순화로부터 시작 되었다. 그는 색을 분석하는 것이 아닌 그 순수한 색을 살리며 구성을 하여 완성하였기에 그는 원색이 주류였고 그러한 색의 화려한 상징주의를 추구하기 시작하여 테두리를 뚜렷하게 표현한 클로와 조네 [칸막이 기 법]와 채도 높은 색깔을 한 면으로 채색 처리한 종합 기법을 만들었다. 그는 1891전 타이티 섬으로 여행을 떠나 남방의 색채와 미개한 생활을 대상으로 판화, 목조, 유화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예술적 특징은 빛나는 색채. 단순화된 인체의 여러 형식의 채용에 있다. 그는 인간의 감정을 직접 화면에 투입하려는 생각으로 선과 색의 설명적인 요소를 생략하고 전체를 상징적, 종합적으로 통일하려는 새로운 화면 구성을 수립 하렸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감사의 공물", "설교 후식 환영", '원시인 ","황색의 그리스트", "타 마테테", "회화적인 자화상"등이 있다.
고갱의 자화상 1893-94
이 작품에서는 1892년 타히티에서 그린 마니우 츠파파우(죽은 혼이보고 있다)라고 이름 붙여진 그림이 보인다. 1889년에도 고갱은 유명한 (황색의 그리스도)앞에서 자화상을 그렸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그는 아마도 자신을 회화계에 있어서 새로운 그리스도로 생각한 것 같다.
황색 그리스도 1889
평면, 강렬한 색채, 대담한 윤곽선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많은 점에서 고갱의 '종합주의' 양식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화면은 전경의 인물과 똑바로 세워진 십자가 및 지평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들판, 하늘, 십자가 등에서 반복되는 직선에 대하여, 여자들과 나무의 유동적인 곡선이 조용하며, 그 모두는 밝고 단순한 색면으로 짜맞추어져 있다. 색채는 경쾌하면서도 브르타뉴 풍경화의 기운이 엿보이며, 여인들은 우아해 보이면서도 농촌 아낙의 분위기를 강하게 풍긴다.
여인의 초상(마리 앙리) 1890
고갱은 아방가르드의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세잔느를 존경했다. 세잔의 작품을 몇 점 가지고 있었는데, 생활이 궁핍해져 그림을 팔아야 할 형편인데도 절대 팔지 않았을 만큼 세잔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이 작품에서는 세잔의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진다. 배경의 정물도 세잔의 정물화에서 보이고, 무표정하고 딱딱한 표정과 리듬이나 윤곽도 고갱 자신이 즐겨 쓴 물결 모양의 흐르는 듯한 윤곽이 아니고 세잔느적인 윤곽이다.
마리아여, 문안드립니다 1891
브르타뉴에서처럼 남태평양으로 가서도 고갱은 자주 종교적인 그림을 그렸다. 고갱은 이 그림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두 타히티 여자가 노란 날개가 달린 천사으 인도로, 역시 타히티인인 마리아와 예수를 경배한다. 여자들은 꽃무늬 박힌 무명천(파레오)로 맨몸을 가리고 있다. 배경에는 음울한 산과 꽃이 핀 나무가 있고 앞에는 짙은 보라색 길과 초록색 전경이 있다. 전경 왼쪽에는 몇 개의 바나나가 있다. 이 그림이 마음에 든다."
타히티의 여인들 1891
타히티 여인은 그의 그림 중 가장 아름다운 그림으로 그 곳의 식물적인 동시에 힘있는 생활의 이미지를 보여 준다. 여인이 허리에 감고 있는 파레오의 타히티 특유의 꽃무늬는 이 그림의 장식적인 요소를 더욱 강조하면서 대담한 색조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부르는 소리 1902
이 그림은 고갱이 "오수를 즐기도록 태양을 막아주고 미풍이 천여 피트 떨어진 바다로부터 야자수 사이를 지나 불어오던 구석에 해먹이 걸려 있던 그 넓은 화실"에서 살 때인 마르케사스에서 그린 것이다. 고갱은 이곳에 대한 느낌에 몸을 맡기고 있는데 이 때문에 자연과 인간이 혼연일체를 이룬다.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 !! -
건강 악화와 빈곤의 실의에 빠진 고갱은 이 작품을 신들린 사람처럼 서둘러 완성했다. 습작 데생을 거치지 않고 고갱은 직접 캔버스에 작업을 했지만, 이는 고갱의 오랜 사색과 집념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오른 쪽에 그려진 노인과 여인, 아이들을 통해 그는 인생의 단면을 보여준다. 가운데에 위치해 열매를 따려고 하는 중앙의 남자를 통해서는 존재의 의미를 묻고 있다.
4. 후기 인상파가 현대 미술에 미친 영향
후기 인상파는 세계 미술사조에 큰 획을 그은 유파로 이후에 일어나는 거의 대부분의 미술사조에 영향을 미쳤다. 후기 인상주의는 물체의 실제감과 고전적 작품이 견고한 화면 구성을 구해서 입체파의 길을 열였다. 또, 정열적인 감정의 표현을 통해 서 인상주의를 탈피, 순색의 넓은 색면에 의한 기법을 개발하여 야수파의 길을 개척했다. 지금 프랑스 파리를 가게 되어도 인상주의의 흔적이 가장 짙게 나타나고 있다.
5. 결 론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은 객관성, 영구적인 미의 표출, 개성의 혼에 감각을 예속시키는 종합적 관조를 추구하였고, 그들은 현실을 넘어선 이상적인 것과 낭만적인 것을 보는 것을 넘어 상징적인 것과 감각을 넘어 사고를 선호하는 쪽에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미술에 고도의 긴장과 흥분을 가져왔다. 이 처럼 후기 인상주의는 다르게 어떤 명칭을 주기에는 너무 그때의 작가들 특징이 다양하고 그들의 개성이 뚜렷하다.
오늘날 후기 인상주의는 다른 시대의 파들보다 짧은 기간에 형성되었고 적당한 자리가 없어 명칭도 제대로 가추지 못했지만 후대인 지금까지 계속해서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고, 화가들에게 주입되어 있다고 본다.

키워드

  • 가격1,3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4.06.19
  • 저작시기2004.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56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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