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찾자 소중한 우리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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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유물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반출되었다. 그러나 국외로 반출되었던 유물 중에는 다행히 국내로 다시 반환되는 사례도 있었다.
1906년 일제 강점기에 한국을 방문한 일본 궁내성 대신인 다나카는 고종 황제가 하사하였다는 거짓말을 하면서 개성 근처 절터에 있는 <경천사지석탑>을 동경에 있는 자신의 저택으로 밀반출하였다. 그러나 다나카의 불법 반출 행위가 알려지면서 양식 있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비난의 소리가 높아졌다. 그 중심은 아이러니 하게도 초대 조선총독부 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다케였다. 일본 내에서의 반환 압력에도 불구하고 여러 해를 버티던 다나카는 마침내 경천사지탑 석재를 반환하였으나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탑은 이미 심하게 손상된 후였다. 914년을 전후하여 일본 동경에서 활동했던 영국인 변호사 존 개스비는 고려자기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일본과 조선에서 도자기를 포함한 한국 유물을 다수 수집하였다. 이 중에는 고려시대의 걸작인 <청자상감 유죽연로 원앙문 정병>과 <백자 박산 향로>도 포함되어 있었다. 미술품에 대한 수준 높은 안목을 지녔던 그의 유물은 매우 우수한 컬렉션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러나 1937년 일본이 미국과 영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것을 간파한 개스비는 자신의 소장품들을 판매할 결심을 하는데, 이 판매 정보를 입수한 간송 전형필에 의해 다시 국내로 반환되어 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음은 매우 다행한 일이 아니라 할 수 없다.
문화재는 조상의 얼이 깃든 문화유산으로 돈으로는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정치적 혼란기 등을 틈타 수많은 귀중한 문화재가 현재 외국으로 반출되어 민족의 혼이 서려있는 유산들이 고향을 잃고 떠돌고 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일차적으로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에 대한 정확한 현황 파악 노력이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반환 노력과 현지 선양 방안 등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만이 우리 후손들이 외국에 있는 우리 유산에 대한 안타까움을 가지지 않게 될 것이며, 외국에서 우리유산을 찾아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이 과제를 수행하면서 우리 것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솔직히 이제까지 '우리의 것'이라는 의식이 없었던 것 같다. 그냥 멀게만 느껴졌던 이러한 유산들을 주인의식을 가지고 바라보게 되었고, 내가 가진 물건들 역시 미래에 과거의 유산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중한 마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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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6.26
  • 저작시기2004.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57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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