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라일본부 연구의 현황과 문제점
본 자료는 2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해당 자료는 2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2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임라일본부 연구의 현황과 문제점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고작 小國을 형성했을 뿐이며, 5세기 초가 되면 여러 세대에 걸쳐 토착화 과정을 밟은 결과 완전히 일본민족이 되었다고 한다.
이밖에도 '제3세력론' 등이 있다.
(4) 기마민족설에 대한 韓國學界의 반응
사실 한국고고학의 지식에 비추어 볼 때 기마민족설은 큰 약점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江上의 주장대로 부여족 계통의 기마민족이 4세기 초까지 한동안 加耶지방에 머물러 있었다면 응당 이 지역에서 기마문화의 흔적이 발견되어야 할 터인데, 그것이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래 가야 고분에서 기병용 갑옷이 나온 바 있지만 이들 고분의 연대는 5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는다는 것이 고고학계의 통설이다.
3. 韓·倭연합왕국론의 문제점
(1) 辰王의 해석에 대한 의문
(2) 倭人 남한 居住說에 대한 의문
(3) 韓·倭연합왕국론의 虛構性
4. 맺는말
韓半島를 경유하여 일본열도로 쳐들어간 북방 기마민족이 大和정권을 세웠다고 하는 江上波夫의 기마민족설은 1948년 제창된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정 보완되어 왔다.
江上은 이 기마민족이 夫餘·高句麗族과 특별한 친연관계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辰王정권이 弁韓지역에서 일본열도로 진출하여 한·왜연합왕국을 형성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마민족설에서는 夫餘族 계통의 기마민족이 남한지역으로 이동하여 진왕정권을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본시 부여족을 '胡族'의 개념에 포함시켜 생각하는 것부터가 문제가 아닐 수 없으며 또한 변한이 부여 계통이라는 것도 아직은 未解決의 문제이다. 더욱이 진왕의 문제는 역사학계에서 논의가 분분하여 그 정체를 확실히 파악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진왕이 4세기 초 일본열도로 건너갈 때까지 金海의 狗邪國을 중심으로 하여 변한지역을 지배했다고 보는 江上의 주장은 실제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 자의적인 해석일 뿐이다.
한편 江上은 일찍부터 倭人들이 狗邪지방에 진출하여 이를 점유하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倭라는 종족이 남한지역의 어디에도 거주했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 이는 江上이 진왕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문헌자료를 무리하게 해석한 데서 나온 착오에 불과하다.
요컨대 기마민족설은 일본 고대국가의 형성문제에 대한 매우 발랄한 견해임에 틀림없지만, 그러나 한국사의 입장에서 보면 종전의 '任那日本府說'의 새로운 '變形' 내지 '또 하나의 전개 형태'로 간주할 수 밖에 없는 치명적인 결함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 가격1,0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4.07.02
  • 저작시기2004.0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59121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