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본론
2-1. 이광수의 유년시절(고아에의 길)
2-2. 이광수의 유학시절(배움에의 길)
2-3. 이광수의 교사시절(교사에의 길)
2-4. 이광수의 방랑시절(방랑에의 길)
2-5. 그후의 춘원의 생애
3. 결론
2. 본론
2-1. 이광수의 유년시절(고아에의 길)
2-2. 이광수의 유학시절(배움에의 길)
2-3. 이광수의 교사시절(교사에의 길)
2-4. 이광수의 방랑시절(방랑에의 길)
2-5. 그후의 춘원의 생애
3. 결론
본문내용
일제의 동우회(수양동우회가 1929년부터 동우회로 명칭이 바뀜)사건 구속에 걸려 옥고를 겪지만 이내 병보석으로 풀려나는 한편, 정신적인 지주 도산의 타계(1938)에 직면한다.
이어 그는 1939년 중국의 일본군 위문을 위한 모임(북지황군위문작가단) 결성식의 사회를 맡게 되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제3단계의 친일행위로 들어선다.
즉, 춘원의 친일은 제1단계가 1919년 이전까지로 이 시기는 주로 통치권자에 대한 관념적인 협력정신으로 볼 수 있고, 제2단계는 상하이로부터의 귀국 이후로 자신의 이상과 현실적인 욕구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이념체계인 민족개량주의와 문화주의의 실현을 주장하던 때이며, 이어 제3단계는 1939년 이후로 이 때는 전시협력체제로 흔히들 친일이라고 하면 이 시기에 국한시 키는 경향이 있으나 오히려 그 앞 시기가 더 중요한 역사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볼 수 있다.
3. 결론
한국 현대문학 100년 동안 춘원 이광수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 왔다. 춘원 이광수를 연구해온 대표적인 작가인 김윤식교수(서울대)는 "이광수는 만지면 만질수록 그 증세가 덧나는 그런 상처와도 같다. 한국 현대문학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지만, 그의 친일(親日)로 한국 정신사에 역시 감출 수 없는 흠집을 만든 사람이기 때문이다."이라고 말했다. 김윤식은 이광수라는 인물에 30년이나 매달려온 인물이다. 김윤식은 춘원에 대하여 그다지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김윤식은 “한사람이 세상을 살아 나가는 데엔 자기만의 틀이 있습니다. 이광수에겐 그게 바로 고아의식이었습니다. 열한 살에 부모를 잃은 이광수. 고아가 아니었더라면 그는 문인이 될 수도, 출세할 수도 없었던 것이죠. 그의 소설 주인공이 고아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것은 당시 나라(아버지)를 잃은 식민지시대의 고아의식과 맞물렸고 그것이 증폭되면서 문학적 성과를 이뤘던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춘원 이광수는 현실에 타협해서 사는 수동적인 인간으로 보았다.
춘원 이광수를 연구한 사람은 작가만이 아니었다. 재미 교포 이중오는 근 6년동안 이광수의 전저작을 참조하고 1차자료를 통해 이광수 심리를 분석하고 있으며, 한국에 있는 이광수 연구가들에게 확인을 거쳤다. 재미 정신과의사 이중오씨는 '이광수를 위한 변명' 출간하였다. 이 글의 집필 목적은 분명하다. '왜 지금 이광수를 다시 봐야하는가’란 거다. 저자에 따르면 이광수야말로 구한말에서 일제치하 해방 한국전쟁까지‘한국인의 영광과 오욕’의 역사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인물이란 거다. 이광수가 가진 상징성을 통해 한국인은 누구인가를 밝히고자하는 것이 이 책의 집필목적이다. 이 글에서 이중오씨는 대표적인 친일파 문인으로 낙인 찍혀 오랜 세월동안 이 땅의 지식인들로부터 외면당해온 춘원(春園)이광수. 감정에 치우친 비난에서 벗어나 춘원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뉴욕주립대 의과대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이중오(61)씨는 "숱한 지식인이 흑백 논리로 이광수를 재단했다" 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광수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던가. 춘원이 우리가 원하는 영웅, 위인, 호걸로 역사 속에 남아 주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오는 노여움과 배신이 그에게 더 잔인한 잣대를 들이대는 결과를 낳았다는 게 이교수의 분석이다. 이 교수는 민족 보존을 위해 친일을 했다는 춘원의 변명에 귀를 틀어막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춘원이 친일의 대가로 어떠한 명예나 부의 보상을 받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춘원의 완전한 범죄 사실이 드러날 때까지 무죄 추정의 권리를 짓밟지는 말자고 말한다.
중학생 때부터 춘원을 문학적 스승으로 모셨던 수필가 피천득씨는 이교수의 주장에 대해 "춘원의 삶과 문학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해보려는 노력은 매우 긍정적인 태도" 라며 "해방후 반민특위법으로 감옥에 들어갔을 때 차라리 돌아가셨다면 민족의 애국자로 남을 수 있었을 텐데…" 라고 아쉬워했다. 지난해 ''이광수와 그의 시대'' 를 출간한 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서울대)는 "실로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는 춘원을 단순한 흑백 논리로 바라봐서는 안된다는 이교수의 주장에는 동의한다" 면서도 "춘원의 문학은 다름 아닌 한국문학이기 때문에 친일 행적을 결코 간과할 수는 없다" 고 말한다. 이 교수는 "김 교수의 방대한 이광수 연구 또한 기존의 평가를 다시 확인해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 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 '춘원' 은 늘 열려있기 때문에 그를 어떻게 분석하든 개인의 자유" 라며 이에 개의치 않는 입장을 보였다. 이 교수는 춘원에 대한 가장 두드러진 비판을 낳았던 논설 '민족개조론' 에 대해서도 색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의 텍스트로서 '민족개조론' 에 접근하는 한 어떤 친일의 흔적도, 제국주의 앞잡이의 흔적도 찾아낼 수 없다. 그것은 오직 나중에 친일의 색안경을 썼을 때에 비로소 채색되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이광수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모두들 춘원 이광수의 문학사적 업적은 인정한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면 그 것은 바로 일제의 식민통치의 후반기에 보여준 춘원 이광수의 친일파적인 발언과 행동에 대한 해석이다. 어떤 이들은 이광수의 그런 행동은 시대적인 상황에서 민족을 위해서 어쩔 수가 없던 행동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어떤 이들은 이러한 춘원의 행동은 현실에 타협하고 자신만을 위해서 한 것이라 보고 있다.
이렇게 춘원 이광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평가는 비판적이기도 하고 긍정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춘원 이광수는 우리 현대 문학사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는 것이 먼저 높게 평가 받아야 할 것이고, 이광수의 삶에 대한 긍정 또는 비판적 입장은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우리가 토론 해 볼 주제가 된다고 생각된다.
참고문헌
이용남 외, 『한국현대작가론』, 민지사 , 2001
김윤식 『이광수(李光洙와 그의 시대(時代』, 한길사, 1986
이광수, 『이광수전집』, 삼중당, 1971
구인환,『이광수 소설 연구』, 삼영사, 1983
한승옥,『이광수연구』, 조일문화사, 1984
『두산 세계대백과사전』, 두산동아, 2000
이어 그는 1939년 중국의 일본군 위문을 위한 모임(북지황군위문작가단) 결성식의 사회를 맡게 되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제3단계의 친일행위로 들어선다.
즉, 춘원의 친일은 제1단계가 1919년 이전까지로 이 시기는 주로 통치권자에 대한 관념적인 협력정신으로 볼 수 있고, 제2단계는 상하이로부터의 귀국 이후로 자신의 이상과 현실적인 욕구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이념체계인 민족개량주의와 문화주의의 실현을 주장하던 때이며, 이어 제3단계는 1939년 이후로 이 때는 전시협력체제로 흔히들 친일이라고 하면 이 시기에 국한시 키는 경향이 있으나 오히려 그 앞 시기가 더 중요한 역사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볼 수 있다.
3. 결론
한국 현대문학 100년 동안 춘원 이광수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 왔다. 춘원 이광수를 연구해온 대표적인 작가인 김윤식교수(서울대)는 "이광수는 만지면 만질수록 그 증세가 덧나는 그런 상처와도 같다. 한국 현대문학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지만, 그의 친일(親日)로 한국 정신사에 역시 감출 수 없는 흠집을 만든 사람이기 때문이다."이라고 말했다. 김윤식은 이광수라는 인물에 30년이나 매달려온 인물이다. 김윤식은 춘원에 대하여 그다지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김윤식은 “한사람이 세상을 살아 나가는 데엔 자기만의 틀이 있습니다. 이광수에겐 그게 바로 고아의식이었습니다. 열한 살에 부모를 잃은 이광수. 고아가 아니었더라면 그는 문인이 될 수도, 출세할 수도 없었던 것이죠. 그의 소설 주인공이 고아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것은 당시 나라(아버지)를 잃은 식민지시대의 고아의식과 맞물렸고 그것이 증폭되면서 문학적 성과를 이뤘던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춘원 이광수는 현실에 타협해서 사는 수동적인 인간으로 보았다.
춘원 이광수를 연구한 사람은 작가만이 아니었다. 재미 교포 이중오는 근 6년동안 이광수의 전저작을 참조하고 1차자료를 통해 이광수 심리를 분석하고 있으며, 한국에 있는 이광수 연구가들에게 확인을 거쳤다. 재미 정신과의사 이중오씨는 '이광수를 위한 변명' 출간하였다. 이 글의 집필 목적은 분명하다. '왜 지금 이광수를 다시 봐야하는가’란 거다. 저자에 따르면 이광수야말로 구한말에서 일제치하 해방 한국전쟁까지‘한국인의 영광과 오욕’의 역사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인물이란 거다. 이광수가 가진 상징성을 통해 한국인은 누구인가를 밝히고자하는 것이 이 책의 집필목적이다. 이 글에서 이중오씨는 대표적인 친일파 문인으로 낙인 찍혀 오랜 세월동안 이 땅의 지식인들로부터 외면당해온 춘원(春園)이광수. 감정에 치우친 비난에서 벗어나 춘원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뉴욕주립대 의과대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이중오(61)씨는 "숱한 지식인이 흑백 논리로 이광수를 재단했다" 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광수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던가. 춘원이 우리가 원하는 영웅, 위인, 호걸로 역사 속에 남아 주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오는 노여움과 배신이 그에게 더 잔인한 잣대를 들이대는 결과를 낳았다는 게 이교수의 분석이다. 이 교수는 민족 보존을 위해 친일을 했다는 춘원의 변명에 귀를 틀어막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춘원이 친일의 대가로 어떠한 명예나 부의 보상을 받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춘원의 완전한 범죄 사실이 드러날 때까지 무죄 추정의 권리를 짓밟지는 말자고 말한다.
중학생 때부터 춘원을 문학적 스승으로 모셨던 수필가 피천득씨는 이교수의 주장에 대해 "춘원의 삶과 문학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해보려는 노력은 매우 긍정적인 태도" 라며 "해방후 반민특위법으로 감옥에 들어갔을 때 차라리 돌아가셨다면 민족의 애국자로 남을 수 있었을 텐데…" 라고 아쉬워했다. 지난해 ''이광수와 그의 시대'' 를 출간한 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서울대)는 "실로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는 춘원을 단순한 흑백 논리로 바라봐서는 안된다는 이교수의 주장에는 동의한다" 면서도 "춘원의 문학은 다름 아닌 한국문학이기 때문에 친일 행적을 결코 간과할 수는 없다" 고 말한다. 이 교수는 "김 교수의 방대한 이광수 연구 또한 기존의 평가를 다시 확인해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 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 '춘원' 은 늘 열려있기 때문에 그를 어떻게 분석하든 개인의 자유" 라며 이에 개의치 않는 입장을 보였다. 이 교수는 춘원에 대한 가장 두드러진 비판을 낳았던 논설 '민족개조론' 에 대해서도 색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의 텍스트로서 '민족개조론' 에 접근하는 한 어떤 친일의 흔적도, 제국주의 앞잡이의 흔적도 찾아낼 수 없다. 그것은 오직 나중에 친일의 색안경을 썼을 때에 비로소 채색되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이광수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모두들 춘원 이광수의 문학사적 업적은 인정한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면 그 것은 바로 일제의 식민통치의 후반기에 보여준 춘원 이광수의 친일파적인 발언과 행동에 대한 해석이다. 어떤 이들은 이광수의 그런 행동은 시대적인 상황에서 민족을 위해서 어쩔 수가 없던 행동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어떤 이들은 이러한 춘원의 행동은 현실에 타협하고 자신만을 위해서 한 것이라 보고 있다.
이렇게 춘원 이광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평가는 비판적이기도 하고 긍정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춘원 이광수는 우리 현대 문학사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는 것이 먼저 높게 평가 받아야 할 것이고, 이광수의 삶에 대한 긍정 또는 비판적 입장은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우리가 토론 해 볼 주제가 된다고 생각된다.
참고문헌
이용남 외, 『한국현대작가론』, 민지사 , 2001
김윤식 『이광수(李光洙와 그의 시대(時代』, 한길사, 1986
이광수, 『이광수전집』, 삼중당, 1971
구인환,『이광수 소설 연구』, 삼영사, 1983
한승옥,『이광수연구』, 조일문화사, 1984
『두산 세계대백과사전』, 두산동아,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