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조 자유종, 화의 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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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이해조
1. 생애 및 작품약관
2. 《자유종》과 《화의 혈》
2. 《화의 혈》

Ⅲ 결론

본문내용

소설관이 드러나 있어 새로운 의식을 보여준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를 가진다.
<서언> 화의 혈이라 하는 소설을 새로 저술할 새 허언낭설은 한 구절도 기록치 아니하고 정녕히 있는 일동일정을 일호 차착없이 편집하노니 기자의 재조가 민첩치 못하므로 문장의 광채는 황홀치 못할지언정 사실은 적확하야 눈으로 그 사람을 보고 귀로 그 사람을 듣는 듯하야 선악간 족히 밝은 거울이 될 만할까 하노라
<후기> 가자 왈 소설이라 하는 것은 매양 빙공착영(憑空捉影)으로 인정에 맞도록 편집하야 풍속을 교정하고 사회를 경성(警省)하는 것이 제일 목적인 중 그와 방불한 사람과 방불한 사실이 있고 보면 애독하시는 열위 부인 신사의 진진한 재미가 일층 생길 것이오 그 사람이 회개하고 그 사실을 경계하는 좋은 영향도 없지 아니할지라 고로 본 기자는 이 소설을 기록하매 스스로 그 재미와 영향이 있음을 바라고 바라노라.
이와같이 이해조는 《화의 혈》 끝부분에서 '소설은 매양 빙공 착영(憑空捉影, 허공에 기대어 그림자 잡기)으로 실정에 맞도록 편집하여 풍속을 교정하고 사회를 경성(警省)하는 것이 제일 목적이다.' 라고 하여 소설의 허구성에 대한 뚜렷한 의식과 견해를 보여 준다. 이러한 소설관에서 이해조는 소재의 다양성, 현실적 사실에서의 취재, 사실적인 표현을 주장하고 사회의 풍속을 올바르게 이끄는 교훈성을 소설의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내세우고 더불어 독자의 재미도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를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소설의 허구성
이해조가 후기에서 말한 '빙공착영(憑空捉影)'은 '사실이 아닌 것에 의지하여 그림자를 포 착한다'는 뜻이니, 이해조는 소설의 허구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②소설의 사실성 : 현실의 객관적 반영
이해조는 서언에서 자신의 소설은 '허언낭설은 한 구절도 기록치 아니하고 정녕히 있는 일동일정을 일호 차착없이 편집하'여 '사실은 정확하야 눈으로 그 사람을 보고 귀로 그 사람을 듣는 듯하다'고 하였다. 후기에서도 자신의 소설에는 '그와 방불한 사람과 방불한 사실이 있다'고 하였다. 이는 소설은 현실을 객관적으로 그리는 것이라 본 것으로, '사실주 의'를 말하는 것이다. 소설을 '인정에 맞도록 편집한'다 함은 소설이 비록 허구이지만 '있 음직 하게 그럴듯하게' 편집한다는 것이니 소설의 허구성과 사실성의 조화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③소설의 힘
서언에서 소설이 '선악간 족히 밝은 거울이 될 만할까 하노라'하였고 후기에서도 '그 사람이 회개하고 그 사실을 경계하는 좋은 영향도 없지 아니할지라'하고 말하였다. 아울러 소설의 제 1목적이 "풍속을 교정하고 사회를 경성하는 것"이라 하였는데, 이해조는 사실 주의가 얼마나 큰 힘을 갖고 있는가를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외 《화의 혈》에서 주목되어지는 면은 다음과 같다.
①일본식 제목
이때까지 이인직이 도입한 일본식 제목를 한번도 붙인 적이 없는데, 여기서는 처음으로 일본식 표제를 붙였다. 이 표제는 일제와 타협한 이해조의 의식의 변모를 알리고 있다. 1912년 이해조는 일련의 개작 판소리 소설에도 《연의 각》, 《토의 간》으로 일본식 제 목을 달고 있다.
②현실의 객관적 반영에서 본 양 측면
이 작품은 《춘향전》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춘향전》을 해체하고 있다. 이 점은 작중인 물 이도사의 암행어사적 면모에서 잘 드러난다. 암행어사는 우리 소설과 설화 속에서 민 중의 구원자였다. 그러나 실제 암행어사는 오히려 민폐를 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말하자면 소설과 설화 속의 암행어사는 민중의 꿈이었다. 이해조는 이도사를 통해 암행어 사를 휩싸고 있는 이상적인 분위기를 깨고 암행어사를 희화함으로써 사실주의의 발전에 한 발작 이바지하였다.
또한 이 소설에서 동학농민군은 악인형으로 나와서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것은 급 진적 개혁에 반대하고 점진적 개혁을 통한 국민주권을 꿈꾸던 작가 이해조로선 당연한 일 이다. 뿐만 아니라 동학 인물에 대한 부정적인 형상은 신소설이나 1910-20년대 소설의 일 반적인 경향이기도 했다. 19세기 말 격화된 안팎의 모순을 해결하는 데 가장 진보적인 요 구를 대변했던 농민군은 식민세력, 그리고 그 세력과 결탁함으로서 구체제의 붕괴를 막으 려 했던 봉건세력, 그리고 그 세력과의 일정한 타협 위에서 나라의 점진적 개혁을 추구했 던 개화세력 모두에 반대했다. 그런데 우리 근대 작가들은 대부분 농민군을 말살했던 세 력 속에서 배출되었으니, 당시 소설 속에서 농민군에 대한 부정적 형상화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Ⅲ 결론
동농 이해조는 대원군 집권기(1864-1873)에 득세한 왕족 출신으로 대한제국이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한 시대에 이름난 계몽주의자인 김윤식,오세창,이종일 등과 교류하면서 애국계몽운동에 열렬하게 참여하였다. 당시의 대표적 민족언론의 하나인 제국신문의 기자를 지냈다. 1910년 대한제국의 멸망은 민족 세력의 인사들을 기로에 세웠다. 국내에 남아서 지하운동에 투신할 것인가, 국외로 망명해서 독립운동에 신명을 바칠 것이냐, 자결이냐, 은둔이냐, 타협이냐. 결국 이해조는 타협의 길을 택하여 총독부 어용지 매일신보에 입사하고 만다. 이후 이해조의 작품세계는 굴절과 퇴보를 걷게 된다.
위의 《자유종》,《화의 혈》을 통해, 고대소설의 전통적 맥락을 이어받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창의 즉, 묘사, 문체, 구성, 주제의식 및 인간형의 제시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 작품이 개화와 혁신을 표면적인 시대의 과제로 추구하였지만 작품의 내면에서는 항상 오락적 흥미나 사건 자체의 흥미있는 변화에 관심을 두었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즉, 표면적으로 제시한 그 시대의 민족적 과제는 인정하고 다루었으면서도 그 탐구의 진지성이나 심각성이 흥미나 오락적 감각에 의하여 약화됨으로써 심한 격차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점은 이해조 단 한사람의 단점이 아니라, 이 시기 작가들의 표면적인 의도와 내면적인 어긋남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것은 작가들의 생애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이처럼 신소설은 문학사의 흐름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한계를 스스로 보여주고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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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7.18
  • 저작시기2004.0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6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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