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결되기 때문에 결코 최종적이고 완결적인 이해에 도달하지 못한다.
가다머는 딜타이가 자신의 후기 저작에서 사용한 체험 개념은 체험과 경험을 구별한 훗설에게서 차용해 온 것이라고 지적한다. 두 사람에게 체험은 유의미한 통일체로서 의식에 직접 소여된 것을 의미한다. 이런 한에 있어서 체험 개념은, 대상들에 대한 의식은 보다 일차적인 감각 소여나 인상들로부터 형성된다고 보는 원자론적 심리학에 대한 비판을 내포하고 있다.
딜타이가 인간적 체험에 대한 연구와 상관된 과학 형태로 간주한 자연의 수학적 이상화란 여전히 인간적 체험에 의존하고 있으며, 거기에서 생겨나는 기투들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수단의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딜타이는 새로운 형태의 객관적 과학을 정초하는 일이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했던 데 반해, 훗설은 객관적 과학 자체가 성립할 수 있는 가능 조건들을 해명하는 문제에 온갖 정력을 쏟았다. 생활세계는 객관적 과학들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이상화를 위한 감각적 기초이며, 또한 객관적 과학 연구의 방향을 인도하는 관심과 목적의 토대이다. 이리하여 객관적 과학은 생활 세계 속에서 생겨난 기투, 즉 특정한 공동체의 관심사를 반영하고 또 그 공동체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지식형태로 간주된다.
가다머에 따르면 훗설은 모든 과학적 작업들은 역사적·문화적으로 제약된, 성격을 갖고 있다는 근본적 통찰을 하고 있다. 이런 통찰은 랑케, 드로이젠, 딜타이 모두로 하여금 사회적·역사적 지식의 가능적 객관성을 입증하는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함과 동시에 좌절을 주었다. 과학적 객관성은 모든 형태의 지식이 반드시 고수해야만 하는 초월적인 개념이 아니라, 일정한 목적가 목표를 가진 일정 유형의 지식에 부합되는 한 가지 척도나 표준일 뿐이다. 그래서 훗설은 객관적 과학은 특정한 공동체의 관심사와 세계관에 참여하여 그 공동체의 목표들을 달성하는 수단을 제공하는 지식형태로 간주한다.
현상학이란 대상들이 의식에 주어지는 방식들에 관한 '학'이고자 한다. 물론 이때의 학이란 자연과학을 모델로 한 '객관적' 과학이 아니라, 훗설 자신이 늘상 강조하는 대로 '엄밀' 학을 말한다. 현상학은 소여 방식들에 관한 천착을 통해 객관적 과학의 원천이 되는 '본질'들에 대한 확실하고 객관적인 지식을 추구한다. 현상학적 탐구는 서로 다른 문화적 생활 세계들을 파고들어 근원적이고 비역사적인 의미 구성 작용의 산물, 즉 '선험적 주관성'의 산물인 '본질적 생활체계'를 해명해야 한다.
딜타이가 사회적·역사적 세계의 실천적 관심사로부터 사회적·역사적 탐구를 해방시키려 했듯이, 훗설은 문화적·역사적 생활세계의 다양성을 극복하기 위해 선험적 주관성을 호소한다. 하이데거는 "세계 내 존재"를 근본적이라고 간주함으로써 객관적 과학의 토대를 역사성에서 구하며, 이렇게 함으로써 딜타이를 극복한 훗설의 학문적 성과를 그대로 보존한다. 과학적 객관성은 이제 더 이상 정당한 지식 일반의 척도로 간주될 수 없으며, 다만 생활세계 내의 일정한 기투에 적합한 방법론적 기준으로 여겨질 뿐이다.
가다머는 딜타이가 자신의 후기 저작에서 사용한 체험 개념은 체험과 경험을 구별한 훗설에게서 차용해 온 것이라고 지적한다. 두 사람에게 체험은 유의미한 통일체로서 의식에 직접 소여된 것을 의미한다. 이런 한에 있어서 체험 개념은, 대상들에 대한 의식은 보다 일차적인 감각 소여나 인상들로부터 형성된다고 보는 원자론적 심리학에 대한 비판을 내포하고 있다.
딜타이가 인간적 체험에 대한 연구와 상관된 과학 형태로 간주한 자연의 수학적 이상화란 여전히 인간적 체험에 의존하고 있으며, 거기에서 생겨나는 기투들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수단의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딜타이는 새로운 형태의 객관적 과학을 정초하는 일이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했던 데 반해, 훗설은 객관적 과학 자체가 성립할 수 있는 가능 조건들을 해명하는 문제에 온갖 정력을 쏟았다. 생활세계는 객관적 과학들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이상화를 위한 감각적 기초이며, 또한 객관적 과학 연구의 방향을 인도하는 관심과 목적의 토대이다. 이리하여 객관적 과학은 생활 세계 속에서 생겨난 기투, 즉 특정한 공동체의 관심사를 반영하고 또 그 공동체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지식형태로 간주된다.
가다머에 따르면 훗설은 모든 과학적 작업들은 역사적·문화적으로 제약된, 성격을 갖고 있다는 근본적 통찰을 하고 있다. 이런 통찰은 랑케, 드로이젠, 딜타이 모두로 하여금 사회적·역사적 지식의 가능적 객관성을 입증하는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함과 동시에 좌절을 주었다. 과학적 객관성은 모든 형태의 지식이 반드시 고수해야만 하는 초월적인 개념이 아니라, 일정한 목적가 목표를 가진 일정 유형의 지식에 부합되는 한 가지 척도나 표준일 뿐이다. 그래서 훗설은 객관적 과학은 특정한 공동체의 관심사와 세계관에 참여하여 그 공동체의 목표들을 달성하는 수단을 제공하는 지식형태로 간주한다.
현상학이란 대상들이 의식에 주어지는 방식들에 관한 '학'이고자 한다. 물론 이때의 학이란 자연과학을 모델로 한 '객관적' 과학이 아니라, 훗설 자신이 늘상 강조하는 대로 '엄밀' 학을 말한다. 현상학은 소여 방식들에 관한 천착을 통해 객관적 과학의 원천이 되는 '본질'들에 대한 확실하고 객관적인 지식을 추구한다. 현상학적 탐구는 서로 다른 문화적 생활 세계들을 파고들어 근원적이고 비역사적인 의미 구성 작용의 산물, 즉 '선험적 주관성'의 산물인 '본질적 생활체계'를 해명해야 한다.
딜타이가 사회적·역사적 세계의 실천적 관심사로부터 사회적·역사적 탐구를 해방시키려 했듯이, 훗설은 문화적·역사적 생활세계의 다양성을 극복하기 위해 선험적 주관성을 호소한다. 하이데거는 "세계 내 존재"를 근본적이라고 간주함으로써 객관적 과학의 토대를 역사성에서 구하며, 이렇게 함으로써 딜타이를 극복한 훗설의 학문적 성과를 그대로 보존한다. 과학적 객관성은 이제 더 이상 정당한 지식 일반의 척도로 간주될 수 없으며, 다만 생활세계 내의 일정한 기투에 적합한 방법론적 기준으로 여겨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