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학자 주시경 인물 탐구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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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국어학자 주시경 인물 탐구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주시경 선생 연보

2. 주시경 선생 전기

3. 주선생님의 일화와 생활

4. 주시경 출생과 성장 / 사회활동/ 저서/ 연구 업적

5. 한글학회 해적이 간략 연보 - 한흰샘 주시경

6. 주시경의 한나라말

7. 7월의 독립운동가 주시경 선생

8. 한국일보 관련기사

9. 인물탐구를 마치며

본문내용

876~1914. 한글 학자. 황해도 봉산 출생.
1890년부터 한학 수학.
1894년 배재학당 입학.
1896년 독립협회 조직에 참여.
협성회 조직.
1898년 배재학당 졸업.
독립신문 교정원으로 일하면서 조선문 동식회 결성.
한글 기사체의 통일과 연구에 힘쓰는 한편 강습소를 열어 한글 교육과 보급에 힘씀.
1905년 정부에 대하여 사전 편찬에 관한 건의서를 냄.
1907년 국문연구소의 위원이 됨.
1908년 한글 학회의 전신인 조선어 연구회를 창설함.
저서: 국어문전음학(1908). 국어문법(1910). 말의 소리(1914).
6. 주시경의 한나라말
URL: kkucc.konkuk.ac.kr/~hanmal/nara.htm
Last modified on: 30-May-1998 - 10K bytes - in Korean (KSC)
말은 사람과 사람의 뜻을 통하는 것이라
한 말을 쓰는 사람과 사람끼리는
그 뜻을 통하여 살기를 서로 도와줌으로
그 사람들이 절로 한 덩이가 되고
그 덩이가 점점 늘어 큰 덩이를 이루나니
사람의 제일 큰 덩이는 나라라
그러하므로 말은 나라를 이루는 것인데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나니라
이러하므로 나라 마다 그 말을 힘쓰지 아니할 수 없는 바니라
글은 말을 담는 그릇이니
이지러짐이 없고 자리를 반듯하게 잡아 굳게 선 뒤에야
그 말을 잘 지키나니라
글은 또한 말을 닦는 기계니
기계를 먼저 닦은 뒤에야 말이 잘 닦아 지나니라
그 말과 그 글은 그 나라에 요긴함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으나
다스리지 아니하고 묵히면 덧거칠어지어
나라도 점점 내리어 가나니라
말이 거칠면 그 말을 적는 글도 거칠어지고
글이 거칠면 그 글로 쓰는 말도 거칠어지나니라
말과 글이 거칠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이 다 거칠어지고
말과 글이 다스리어지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도 다스리어지나니라
이러하므로 나라를 나아가게 하고자 하면
나라 사람을 열어야 되고 나라 사람을 열고자 하면
먼저 그 말과 글을 다스린 뒤에야 되나니라
또 그 나라 말과 그 나라 글은 그 나라 곧 그
사람들이 무리진 덩이가 천연으로
이 땅덩이 위에 홀로 서는 나라가 됨의 특별한 빛이라
이 빛을 밝히면
그 나라의 홀로 서는 일도 밝아지고
이 빛을 어둡게 하면
그 나라의 홀로 서는 일도 어두워 가나니라
7. 『7월의 독립운동가』 주시경(周時經) 선생.
URL: www.chongson-gun.kangwon.kr/0734.htm
Last modified on: 19-Jul-1999 - 11K bytes - in Korean (KSC)
『7월의 독립운동가』주시경(周時經) 선생
국가보훈처에서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주시경 선생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습니다.
1876년 황해도 봉산에서 출생하신 선생은 1894년 배재학당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수학하며 한글 연구의 과학적 기초를 닦으셨으며,
- 1896년 독립신문의 창간을 준비하며 배재학당에 출강하던 선생과 서재필의 만남은 '자기 나라의 말과 글을 존중하여 쓰는 것이 곧 나라를 보존하며 일으키는 길'이라고 여기신 선생의 생각을 실천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선생은 독립신문 발행에 참여하여 한글 연구단체의 효시인 국문동식회를 조직하고 한글 연구를 심화시켰으며, 독립협회와 배재학당의 협성회에도 가담하여 국권수호와 민권신장을 위한 근대민족계몽운동에 적극 동참하셨습니다.
또한,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맞서 선생은 한글 연구성과의 발간 보급, 국문연구기관 조직, 민족교육, 계몽운동단체와 언론에의 참여를 통해 한글 연구와 교육을 지속적으로 전개, 후학을 양성하면서 민족 정체성을 확립하고 독립 쟁취의 기초를 닦으셨습니다.
그러던 중 건강이 크게 악화되어 1914년 7월 27일 서울 수창동 자택에서 38세의 나이로 급서하고 말았습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80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습니다.
8.한국일보:[7월의독립운동가 ]주시경선생 (http://www.korealink.co.kr/e/199906/h1e31421.htm)
[7월의 독립운동가] 주시경선생
06/30(수) 19:24
국가보훈처는 30일 한글학자 한힌샘 주시경(1876∼1914)선생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선생은 1896년4월 창간된 독립신문을 통해 서재필 선생과 국문전용 및 띄어쓰기를 실천했으며 국문동식회를 조직, 해방후 한글학회로 발전하는데 초석을 다졌다. 선생은 국권을 잃은 1910년부터 조선어강습소를 열어 후학들을 가르치던 지병이 악화돼 1914년 7월27일 38세의 나이로 서거했다. 대한국어문법, 국어문전음학, 국문초학, 국어문법, 국문연구안, 말의 소리 등의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선생은 80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됐다.
정덕상기자 jfurn@hk.co.kr
9. 인물탐구를 마치며
주시경 선생에 대해 다시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의 업적도 업적이지만 생활환경이나 끊임없이 활동가로 활동한 행적을 보면서 새삼 내가 이름으로만 알고있던 주시경이 어째서 훌륭한 사람이라는지를 알겠다. 결코 범인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맡은 부분이 학문적인 부분보다는 인간적인 부분에 포인트를 두었고 덕분에 초등학생의 책꽂이에 꽂힌 주시경 인물 동화도 들춰보았다
어김없이 수숫대 집짓기 일화가 실려있었다. 그렇게 짧은 생애 동안에 (이것도 사실 난 조사하기 전까진 제대로 몰랐었다.) 그렇게나 많은 강의활동을 다니다니...
게다가 한문을 숭상하고 한글을 천대시 하는 시절에 어디서 그러한 선견지명이 나오는지
상당한 존경심이 들었다.
인간주시경의 강직함과 청빈함. 그리고 학자다운 모습이 나에게도 하나의 영상으로. 이미지로 떠오르고 있다.
덧붙이는말
정말 고생만 죽도록 하다가 아깝게 돌아가셨다.
범인의 경지에서 볼때는 불쌍한 마음이 들정도이다
그러나 큰 일을 도모하는 사람은 좋은 환경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된다.
인생에는 여러길이 있으며 그중 어느하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일관성있게 걷는 자는 그 자체로 너무나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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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8.31
  • 저작시기20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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