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국가를 바라보는 맑스-엥겔스-레닌의 견해
2. 국가운동의 복합성
: 맑스-엥겔스-레닌의 난점들
3. 맑스주의의 이데올로기론
4.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의 발견
4-1. 국가의 역할
4-2. 알튀세의 이데올로기론
① 이데올로기는 그들의 실재 존재조건에 대한 개인들의 상상적 관계의 ‘표상’이다.
② 이데올로기는 개인들을 주체로서 호명한다.
4-2.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의 발견
4-3.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의 기능
5. 결론 -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와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의 변혁
5-1. 알튀세가 남긴 것들
5-2.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서의 계급투쟁
5-3. 자본주의 이후
2. 국가운동의 복합성
: 맑스-엥겔스-레닌의 난점들
3. 맑스주의의 이데올로기론
4.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의 발견
4-1. 국가의 역할
4-2. 알튀세의 이데올로기론
① 이데올로기는 그들의 실재 존재조건에 대한 개인들의 상상적 관계의 ‘표상’이다.
② 이데올로기는 개인들을 주체로서 호명한다.
4-2.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의 발견
4-3.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의 기능
5. 결론 -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와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의 변혁
5-1. 알튀세가 남긴 것들
5-2.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서의 계급투쟁
5-3. 자본주의 이후
본문내용
계급투쟁을 주목하면서 빠지기 쉬운 함정들이 있다.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서의 계급투쟁을 강조했을 때, 문화예술 영역에서의 계급투쟁을 강조한다든지, 아니면 종종 그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안에서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를 변혁하고자 하는 모습들을 보이게 되는 그 함정들 말이다.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내에서의 계급투쟁에 대한 강조는 이제까지의 억압적 국가장치에 대한 인식만을 토대로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파괴하려는 시도에 더욱 풍부한 실천들을 제공할 수 있지만 자칫하면 억압적 국가장치에 대한 인식을 오히려 사장시켜버릴 가능성을 내포할뿐더러 알튀세가 논증했듯이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또한 은폐되고 완화된 억압에 의해서도 함께 구성됨을 망각할 우려가 있다. 억압과 이데올로기의 밀접한 관련성 속에서 운동하는 국가장치들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는 순간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안에서의 풍부한 실천들을 모조리 포기하거나 또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안에서 결국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안에 직접 진지를 구축한다는 문제의식에 대한 평가도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교육 부문이 자본주의 사회구성체를 재생산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임이 밝혀졌는데, 자본주의 사회구성체를 변혁하기 위해 교육 부문에 진지를 구축한다는 발상은 과연 정당한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서의 계급투쟁은 알튀세가 지적하듯이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를 넘어서는 계급투쟁의 한 축일 뿐이다.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가 스스로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라 그것은 다른 곳에서 유래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교사가 되어 교육부문에 있어서의 저항 이데올로기의 진지를 구축하겠다는 것은 철없는 발상이다. 중요한 것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서 이데올로기의 내용이 결코 지배계급의 것이냐 피지배계급의 것이냐가 아니라 고유한 이데올로기를 가질 수밖에 없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5-3. 자본주의 이후
또한 後자본주의 사회구성체에서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 대해 더 이야기해볼 수 있겠다. 과연 자본주의 사회구성체를 뛰어넘은 이후,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는 어떠한 것이 될 것인가? 물론 학교교회 등은 그 이후에도 존재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 안에서 학교의 지배적 기능이 더욱 강화되었고 교회의 위치가 상대적으로 낮은 자리로 내려간 것을 고려해본다면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자리에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구성체에서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를 ‘상상’해본다는 것은 단지 공상에 불과할 것이다. 지배적으로 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계급투쟁의 과정 속에서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이며 이는 지배계급으로 올라서는 계급이 구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결국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변혁의 과제와 맞물리면서 현재의 교육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전화시켜낼 것인가, 교회를 어떻게 할 것인가 정도의 문제의식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내에서의 계급투쟁에 대한 강조는 이제까지의 억압적 국가장치에 대한 인식만을 토대로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파괴하려는 시도에 더욱 풍부한 실천들을 제공할 수 있지만 자칫하면 억압적 국가장치에 대한 인식을 오히려 사장시켜버릴 가능성을 내포할뿐더러 알튀세가 논증했듯이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또한 은폐되고 완화된 억압에 의해서도 함께 구성됨을 망각할 우려가 있다. 억압과 이데올로기의 밀접한 관련성 속에서 운동하는 국가장치들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는 순간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안에서의 풍부한 실천들을 모조리 포기하거나 또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안에서 결국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안에 직접 진지를 구축한다는 문제의식에 대한 평가도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교육 부문이 자본주의 사회구성체를 재생산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임이 밝혀졌는데, 자본주의 사회구성체를 변혁하기 위해 교육 부문에 진지를 구축한다는 발상은 과연 정당한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서의 계급투쟁은 알튀세가 지적하듯이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를 넘어서는 계급투쟁의 한 축일 뿐이다.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가 스스로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라 그것은 다른 곳에서 유래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교사가 되어 교육부문에 있어서의 저항 이데올로기의 진지를 구축하겠다는 것은 철없는 발상이다. 중요한 것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서 이데올로기의 내용이 결코 지배계급의 것이냐 피지배계급의 것이냐가 아니라 고유한 이데올로기를 가질 수밖에 없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5-3. 자본주의 이후
또한 後자본주의 사회구성체에서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 대해 더 이야기해볼 수 있겠다. 과연 자본주의 사회구성체를 뛰어넘은 이후,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는 어떠한 것이 될 것인가? 물론 학교교회 등은 그 이후에도 존재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 안에서 학교의 지배적 기능이 더욱 강화되었고 교회의 위치가 상대적으로 낮은 자리로 내려간 것을 고려해본다면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자리에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구성체에서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를 ‘상상’해본다는 것은 단지 공상에 불과할 것이다. 지배적으로 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계급투쟁의 과정 속에서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이며 이는 지배계급으로 올라서는 계급이 구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결국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변혁의 과제와 맞물리면서 현재의 교육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전화시켜낼 것인가, 교회를 어떻게 할 것인가 정도의 문제의식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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