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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기서 대립물이 자신의 대립물을 생산하는 변증법적 생산의 도식을 보게 된다. 또한 부정의 변증법적 테제를, 즉 자연히 개념적 필연성에 따라 자신의 대립물을 대체해야 하고 지배적으로 되어야 하는 이 대립물을 다시 보게 된다. 그런데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만약 부르조아지가, 봉건제의 대립물의 산물이기는커녕 그것의 마무리이자 정점, 최고형태, 말하자면 완성이었다면? 이것은 그만큰 우리를 다음과 같이 곤경에 빠뜨리는 문제들로부터, 즉 그 모든 힘에서 자본가적 혁명이어야 하나 실은 그렇지 않았던 부르조아 혁명들, 이를테면 프랑스 혁명과 같은 이 부르조아 혁명들의 문제로부터, 또는 이에 못지 않게 불가사의한 문제, 즉 미래를 보면 자본가적이지만 모든 자본주의에 훨씬 앞서 봉건제 아래서 형성된 이 이상한 계급인 부르조아지란 대체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마찬가지로 맑스에게는 이른바 상인적 생산양식에 대한 만족할 만한 이론이 없으며, 상업(그리고 금융) 자본주의에 대한 만족할 만한 이론은 더더욱 없다. 형용사 '부르조아'를 과다하게 사용할 뿐이다.
우리는 여타 요소들과 마찬가지로 '浮動하는' '부르조아지'와 부동하는 '여타 요소들'의 '마주침',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라는 특이한 생산양식을 구성하기 위한 그것들의 '마주침'이라는 관념의 반대 극에 서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마주침이 없다. 왜냐하면 통일성이 자신의 요소들에 선행하기 때문이며, 모든 우발적인 마주침에 필수적인 이 공백이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완성되어야 할 사실을 사고하는 것이 문제인데도 맑스는 의도적으로 기성사실 속에 자리 잡으며, 이 기성사실의 필연성의 법칙들 속에서 이 기성사실을 따라가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우리는 맑스를 따라 생산양식을 하나의 이중적 결합(발리바르), 즉 생산수단들의 결합과 생산관계들의 결합으로 정의한 바 있다. 이 분석을 더 진전시키고자 한다면 우리는 거기서 '생산력들, 생산수단들, 생산수단 소유자들, 생산수단을 갖거나 못가진 생산자들, 자연, 인간 등등'과 같은 요소들을 구분해야 한다. 생산양식을 구성하는 것, 이것은 생산력들(생산수단들, 생산자들)을 하나의 총체의 지배에 복속시키는 하나의 결합이다. 이 총체 속에서 지배적인 것은 생산수단의 소유자들이다. 이 결합은 핵심적인 것이다. 물론 그것은 해체될 수 있지만, 이탈 속에서 항상 동일한 구조를 보존한다. 생산양식은 하나의 결합이다. 왜냐하면 일련의 요소들에 자신의 통일성을 부과하는 것은 하나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생산양식에서 중요한 것은 구조의 요소들에 대한 구조의 지배양식이다. 봉건적 생산양식에서 이 생산양식의 요소들에 의미를 부과하는 것은 영지에서 노동하는 농노를 포함한 영지 소유, 집단적 도구들(방앗간 등)에 대한 영주의 소유, 화폐의 부차적 역할과 같은 의존의 구조이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그것은 이 생산양식의 모든 요소들에 부과될 착취구조, 생산수단들과 생산력들의 착취과정으로의 종속, 생산수단을 박탈당한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 자본가들계급의 생산수단 독점 등등이다.
마찬가지로 맑스에게는 이른바 상인적 생산양식에 대한 만족할 만한 이론이 없으며, 상업(그리고 금융) 자본주의에 대한 만족할 만한 이론은 더더욱 없다. 형용사 '부르조아'를 과다하게 사용할 뿐이다.
우리는 여타 요소들과 마찬가지로 '浮動하는' '부르조아지'와 부동하는 '여타 요소들'의 '마주침',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라는 특이한 생산양식을 구성하기 위한 그것들의 '마주침'이라는 관념의 반대 극에 서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마주침이 없다. 왜냐하면 통일성이 자신의 요소들에 선행하기 때문이며, 모든 우발적인 마주침에 필수적인 이 공백이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완성되어야 할 사실을 사고하는 것이 문제인데도 맑스는 의도적으로 기성사실 속에 자리 잡으며, 이 기성사실의 필연성의 법칙들 속에서 이 기성사실을 따라가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우리는 맑스를 따라 생산양식을 하나의 이중적 결합(발리바르), 즉 생산수단들의 결합과 생산관계들의 결합으로 정의한 바 있다. 이 분석을 더 진전시키고자 한다면 우리는 거기서 '생산력들, 생산수단들, 생산수단 소유자들, 생산수단을 갖거나 못가진 생산자들, 자연, 인간 등등'과 같은 요소들을 구분해야 한다. 생산양식을 구성하는 것, 이것은 생산력들(생산수단들, 생산자들)을 하나의 총체의 지배에 복속시키는 하나의 결합이다. 이 총체 속에서 지배적인 것은 생산수단의 소유자들이다. 이 결합은 핵심적인 것이다. 물론 그것은 해체될 수 있지만, 이탈 속에서 항상 동일한 구조를 보존한다. 생산양식은 하나의 결합이다. 왜냐하면 일련의 요소들에 자신의 통일성을 부과하는 것은 하나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생산양식에서 중요한 것은 구조의 요소들에 대한 구조의 지배양식이다. 봉건적 생산양식에서 이 생산양식의 요소들에 의미를 부과하는 것은 영지에서 노동하는 농노를 포함한 영지 소유, 집단적 도구들(방앗간 등)에 대한 영주의 소유, 화폐의 부차적 역할과 같은 의존의 구조이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그것은 이 생산양식의 모든 요소들에 부과될 착취구조, 생산수단들과 생산력들의 착취과정으로의 종속, 생산수단을 박탈당한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 자본가들계급의 생산수단 독점 등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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