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을 통해본 역사적 의의나 성격은 이미 기존의 학자들이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발견해 놓은 사실들을 다시 되짚어 보는 일일에 지나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객관적 사실로서 논증가능하게 그 이상의 무언가를 새로이 찾아내기란 나에게 엿 부족 이었다. 그러나 <<목민심서>>를 통해 나의 짧고 얕은 지식에서 나오는 판이하고 편편한 하나의 분명한 감정이 있었다. 19세기나 21세기나 하나같이 정치가들은 축 처진 턱살을 긁으며, 입가에 조소를 띤 썩은 인물들이라는데 대한 적잖은 분노심 이었다. 간혹 육두문자로 티브이에 나오는 정치인들에게 몇 마디를 던지는 것이 고작이었다. <<목민심서>>는 그 육두문자를 장황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해 놓은 내 어리석은 논리와 사고의 미약함을 찌르는 모범 답안 같은 것이었다. 19세기에 작성한 정약용의 모범답안은 그대로 21세기에도 적용된다. 다시 말해 19세기에 수령들의 악행은 21세기에도 하나 변한 게 없다는 말이다. 다만, 기술의 발달로 인한 생활 방식에만 상당한 변화가 있었을 뿐이다. 마치, 영양가 좋은 음식을 과잉 섭취한 비만아가 머릿속은 텅텅 비어있는 거 같다. 말 그대로 뚱뚱한 바보다.. 해답은 이미 오랜 세기 전에 제시되었는데도, 문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이 어찌 답답한 노릇이 아니겠는가.
19세기에는 실학적 사상을 담은 저서로 그 개혁적인 면에서 역사적 의의를 찾아냈던 정약용의 <<목민심서>>가 현대적 시각에서는 그 개혁성이 퇴색된 것이라도, 아직도 이로 인해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많은 부분 현대에도 시사점을 주는 것으로 충분한 의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19세기에는 실학적 사상을 담은 저서로 그 개혁적인 면에서 역사적 의의를 찾아냈던 정약용의 <<목민심서>>가 현대적 시각에서는 그 개혁성이 퇴색된 것이라도, 아직도 이로 인해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많은 부분 현대에도 시사점을 주는 것으로 충분한 의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