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성의 '출세기'를 읽고 - 자아여, 매스컴의 신화에서 탈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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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윤대성의 '출세기'를 읽고 - 자아여, 매스컴의 신화에서 탈출하라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론
본론
결론

본문내용

고에 의해 존속되기 때문에 많은 시청자(혹은 청취자, 독자)를 확보할 때 그만큼의 경제적·정치적 권력을 갖게 된다. 때문에 매스미디어는 대중과 영합하려는 속성을 띤다. 일단 대중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한 매스미디어는, 많은 경우 오히려 여론을 이끌며 대중을 지배한다. 그들은 이러한 대중에 대한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영웅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그들은 영웅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것의 유효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유효기간이 지난 '영웅'은 그대로 폐기처분되나, 그 '영웅'은 이미 매스미디어가 주는 환상에 도취되어 본래의 자신을 찾기 어렵다. 윤대성은 이렇게 위험한 매스미디어의 신화를 반어의 기법으로 풍자해내고 있다. 매스미디어에 대한 경고는 '신화 1900'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매스컴에 의해 무기력하게 망가지는 개인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그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매스컴의 위력을 누구보다도 실감하고, 그것의 폐해를 직시한다.
이 작품이 매스미디어의 상업성, 비인간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부분부분 아쉬운 점이 남는다. 인물의 성격을 극명하게 설정하기 위해서였겠지만, 첫 등장의 첫 대사부터 그 인물의 성격을 모두 파악해버리고,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규정짓게 만드는 대사는 극을 가볍게 만든다. 예를 들어 가장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되는 소장의 첫 대사는 "빌어먹을 사고, 사고! 이놈의 사고만 없으면 해먹을 텐데……"이다. 이 한 마디의 독백으로 우리는 그가 부정적 인물이라는 것을 순식간에 파악해 버리는 것이다.
또한 김창호가 매스컴의 신화체계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과정에서 기생과 놀아나 재산을 탕진하고, 가정을 잊고, 결국에는 가족을 잃어버리고 만다는 설정은 극의 전반부에 드러나는 김창호의 성격으로는 좀 무리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매스컴의 상업성에 휘말려 인생을 망치게 되는 과정을 극적으로 그리려는 의욕이 앞서 내용이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극의 작위성은 '신화 1900'이나 '출발', '사의 찬미'
) 예를 들면, '신화 1900'에서는 주제의식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갑작스레 간호원이 미치고 그로 인해 주인공이 죽게되는 장면, 결국 의사도 미치는 설정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사의 찬미'와 같은 경우, 주인공과 극중 극의 내용을 병렬시키는 것은 좋으나, 현실의 인물들이 갑자기 증발해버리는 내용은 납득하기 어렵다. '출발'에서는 역무원과 청년의 만남에서 과거가 밝혀지는 전체적인 줄거리가 우연적으로 이루어진다.
등에서도 적지 않게 느껴져 작가가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 이 작품의 전반적인 구성은 작가의 주제를 훌륭히 표현했다고 여겨진다. 김창호와 주변의 상황을 삽화적 구성으로 스피디하게 처리한 점, 현대의 가치관이 '돈'과 '출세'에 두어진 상황에서 개인이 겪는 아픔을 아이러니의 수법으로 투사한 것은 적절했다.
) 김성희,「현실과 연극의 겹침구조 -윤대성론」,『연극의 사회학, 희곡의 해석학』, 문예마당, 1995, p.497
주인공인 김창호를 희극적으로 그림으로써 그의 비극이 더욱 슬프게 와 닿게 되는 것이다.
윤대성은 매스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신화의 허상을 고발하고, 거기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한다. 매스미디어가 우리를 위해 만들어 주는 것 같은 모든 것들은 단지 스스로를 유지시키기 위한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우리가 매스컴의 신화에 빠져들면, 우리의 육체는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신도 우리의 것이 아니게 되어 자신도 모르는 새에 매스미디어에 의해 조종당하는 꼭두각시가 되고 마는 것이다.
현대인은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펴 든다. 그 옆에서는 TV가 쉴 새 없이 떠들고 있다. 출근길에 우리가 보는 광고는 모두 몇 편이나 되는가? 셀 수도 없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길거리에서, 눈을 감고 다니지 않는 이상 광고의 공세를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잠시 볼 일을 보러 들른 은행에는 기다리는 고객들을 위해 친절하게 잡지들을 비치해놓고 있다. 퇴근길의 버스에서는 라디오를 틀어주고, 한가한 주말이면 영화나 한 편 볼까 생각한다. 매스컴을 벗어난 현대인이란 존재할 수 없다. 하루라도 뉴스나 신문을 보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정보력 없는 인간이 된고 만다. 대개의 한국인들은 집에 도착하면 보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TV를 켠다고 한다. TV를 보지 않으면 불안하다는 사람들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매스미디어가 제공하는 정보들을 대개 사실로써 받아들인다. 그러나 매스미디어는 정말 공정하고 중립적인가? 그것들은 사실을 보여주고 잊는가?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것 역시 이윤을 추구하는 단체이라는 것이다. 특히 최근들어 언론사들은 점점 방대해지고 기업화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윤을 높여줄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하루종일 그것들을 접하고 있는 사이에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새 그 허상에 빠져들게 된다. 그것에 빠지게 되면, 점차 우리는 자신의 자아를 잃고, 매스컴의 이미지를 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나'의 생각과 의지는 사라지고 우리는 매스미디어의 의지대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언론에 의한 대중 통제'란 이러한 신화체계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홍기자 결론, 따라서 매스컴이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는 것이 현대인이다. 매스컴은 20세기적 가 되었고 종래의 어떤 종교나 예술보다 긴요한 현실적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무한한 기능으로 인해 인간 부재의 매스컴에 이르지 않는가를 부단히 경계하고 자각해야 할 것이다. 매스 커뮤니케이션! 매스컴! 이 얼마나 위대한 단어냐? (p.270)
자아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준다. 다른 사람과 똑같은 나는 의미를 갖기 어렵다. 윤대성은 묻는다. 자아여, 매스미디어의 신화에 함몰되어 자신의 개성을 포기할 것인가? 매스미디어가 제공하는 틀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느끼는 편안함 속에 안도하며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묻어둘 것인가? 비판하라. 이미지는 실체가 아니다. 그 신화에서 탈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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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2.15
  • 저작시기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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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78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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