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금속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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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序論...................................p.1
Ⅱ.本論............................... p.1~17
1.금속공예기법....................p.1~3
2.청동기 시대..........p.3~5
1)무기........................p.3~4
2)의기........................p.4~5
3.역사시대 ................p.5~16
1)장신구........................p.5~13
2)범종........................p.13~15
3)사리구.......................p.15~17
Ⅲ.結論....................................p.17

본문내용

둘러싸고 네 모퉁이에는 주악상을 배치하였다. 파편으로 흩어져 있으나 보개 부분도 출토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수식으로 추정되는 장식구에는 당초문을 투각한 수식이 달리는 난간 윗부분에 당초문과 사자머리를 배치하였다. 이난영,『한국고대의 금속공예』,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p184
감은사 다음으로 유명한 것은 1966년에 발견된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것이다. 금동제 사리외함은 보각형(寶閣形)으로 안상을 가진 기단 위에 보상당초문이 투각되었는데 지붕이 덮히는 형식이다. 지붕의 아래쪽에는 반원형을 이어 붙인 추녀가 늘어지고, 그 아래에 영락이 매달린다. 추녀의 가운데를 점선조 기법으로 마무리하였다.
금제 사리합은 안물림 형식의 장방형 합으로 넓은 면에 탑과 보살상을, 좁은 면에는 인왕상을 선각하고 간지는 어자문으로 메웠다. 이 간지의 어자문은 옆으로 가지런하나 상하는 간격이 떠서 횡렬이 두드러지는 모양이다.
은제 사리외합은 보주형의 꼭지가 뚜껑에 달려있고 감입된 꼭지 4개가 붙은 형식이다. 뚜껑 윗면에 팔화형 꽃잎을 타출하고 다시 설치하였는데. 꽃잎이 둘러싼 원형 테두리 속에 화문과 어자문이 있다. 내합은 뚜껑은 없으나 동체에 당초문이 타출되었고 간지에 어자문이 새겨져 있다. 구연부에는 띠를 두르고 사이에 크고 작은 어자문을 겹으로 시문하여 2중의 어자문이 메워져 있는데 그 솜씨는 역시 조잡하여 정연함이 결여되어 있다. 몸체에도 연꽃 무늬가 선각되었고 간지는 어자문으로 메워졌다.
1959년 경북 칠곡군 동명면 송림사의 5층 전탑에서 발견된 사리구는 전각형식의 사리기이다. 보개(寶蓋)아래 삼각형 장식을 늘이고, 네 귀에 다시 수식을 늘였으며, 그 상단에 점선조로 조금하였다. 지붕의 한 부분은 투각으로 장식하였다. 복연(覆蓮)으로 장식된 기단 위에 난간을 돌리고 중앙에는 금판을 오려서 연꽃을 만들어 사리좌(舍利座)로 하고 그 위에 녹색 유리잔을 놓고 그 안에 녹색의 사리병을 안치하였다. 이난영,『한국고대의 금속공예』,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p181
그리고 여기에서 함께 나온 수형(樹形) 금동장식은 가는 금동판(金銅板)을 벽의 모서리처럼 직각으로 접은 중앙주(中央柱)에서 좌우로 가지들을 뻗게 하고 전면에 영락(瓔珞)을 단 것인데. 가지들의 끝은 보주형(寶珠形)이고 중앙주의 뾰족한 뿌리는 꽂히도록 되어, 이것은 백제 무령왕관식처럼 관에 꽂았던 입식(立飾)이라고 믿어지면서 삼국시대와는 다른 통일기의 형태를 보여주는 데 귀중한 가치가 있다. 김원용,『한국 고미술의 이해』, 서울대학교출판사, 2001, p219
한편 1965년 전북 익산군 왕궁리의 5층 석탑에서는 사리장엄구로서 사리용기 이외에 19장의 금판경(金板經)과 경합(經盒)이 함께 발견되었다. 이 사리 용기는 금제의 앙련 받침에 녹색의 유리로 된 사리병을 갖추었다. 금제 사리합의 네 면에는 연화문이 선각되었고, 그 사이를 어자문이 메우고 있는, 가장 전형적인 사리합 기법이다. 그리고 꼭대기에 공양상이 있다. 이난영,『한국고대의 금속공예』,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p186~187
고려시대의 사리구는 1961년 광주 서 5층 석탑에서 발견된 금동제(金銅製) 일례가 중요하며. 이 사리기는 불단 형식의 안상을 가진 기단(基壇) 위에 여의두문(如意頭文)을 두 개씩 배치한 난간을 돌리고, 기단 중앙에 판금으로 된 이중 연화좌를 받쳤으며, 연꽃 둘레를 점선조 기법으로 나타내고 그 안에는 사리합을 안치하였다. 뚜껑은 지붕과 벽면을 하나로 만들어 덮으면 전각형이 되는데, 네 벽에는 각각 보살입상을 따로 만들어 각각 붙였다. 피라미드형 지붕 꼭대기에는 연꽃 봉오리 모양의 장식이 붙고, 추녀 끝에는 풍영(風鈴)과 영락이 매달린다. 기단의 네 모퉁이에는 사천왕상이 각각 바깥쪽을 향해 서 있다. 이난영,『한국고대의 금속공예』,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p262
結論
우리나라의 금속공예는 청동기시대가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어 중국의 영향을 받은 철기문화가 유입되어 찬란한 금속공예기술들을 선보이게 된다. 이러한 금속공예의 기술은 장신구·불구·일상용품·무구·농구 등 모든 종류의 생활용구에 도입되어 우리 민족문화의 중요한 맥락이 되었다.
삼국시대의 나라 중에서 신라와 백제의 유물은 그 시대의 세련되고 정교하며 호화로운 금은기처럼 균형이 잡힌 형태와 기품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신라의 동종(銅鐘)은 당시의 신라 금속공예의 우수성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한다. 종을 다는 고리인 용뉴(龍紐), 문양대(紋樣帶), 비천상(飛天像), 유곽(遊廓), 당좌(撞座)의 조각은 힘차고 정교한 아름다움이 혼연일체가 되고 있어, 신라 금속공예의 수준을 말해 준다. 석탑 안에 안치되어 있는 사리기(舍利器고)에서도 신라금속공예의 솜씨를 찾아볼 수 있으며, 여기에 배치된 신장상(神將像), 주악상(奏樂像), 동자상(童子像)등은 신라 불상조각을 응축시킨 듯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고려 때에는 여러 가지 금속을 합금하는 기법도 많이 발달하여 놋쇠를 만들어 각종 시기를 이것으로 제작하였으며, 이것은 나중에 조선시대까지 계속되었다. 금속으로 만든 그릇도 당시에 유행했던 청자기와 같은 형태나 장식을 한 유물들이 남아 있다. 그리고 목가구를 보강하고 장식하는 금구가 개발되어, 생활주변에 쓰이는 가구들을 아름답게 하는 데도 금속공예가 공헌한 바 적지 않았다.
※참고문헌
김원용(金元龍),『한국 고미술의 이해』, 서울대학교출판부, 2001
김원용(金元龍)ㆍ안휘준(安輝濬), 『한국미술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1
이난영(李蘭暎),『한국 고대의 금속공예』,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이난영(李蘭暎),『한국고대금속공예연구』, 일지사, 1992
진홍섭(秦弘燮), 『한국금속공예』, 일지사, 1993
한병화,『韓國美術史의 現況』, 한림과학원총서, 1992
황호근,『한국장신구사』, 서문당, 1996
※사진참조
이호관(李浩官),『한국의 금속공예』, 문예출판사, 1997
염영하(廉永夏), 『한국종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4
www.ocp.go.kr
(문화재청)
www.gyeongju.museum.go.kr
(경주박물관)
www.museum.go.kr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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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2.18
  • 저작시기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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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79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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