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에 대한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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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양반’에 대한 비평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序論

本論
1. 미야지마 선생의 양반이해를 논하며...
2. 양반사회의 분화와 해체에 대한 무언급에 관하여...
3. 양반사회는 붕괴되어 가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양반의 문화는 모범이다?
4. 텍스트 전체에서, 저자는 양반의 특권을 경제적인 구속의 관계에서 찾고 있다. 그렇다면 연암 박지원의 양반전에 나타난 현상은 무엇으로 보아야 하는가? 또한 저자의 입장에서 양반은 건실한 농업경영을 하는 부농으로서 존재한 것이라고 하는데 과연 맞는 것인가?

결론

본문내용

다 자기논의 김을 맨들 누가 나를 괄시하랴!’ 등의 구문에서 보았을 때 저자가 말하는 양반의 특권이란 경제적인 관계에서 파생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또 양반이 건실한 농업경영을 하여 경영형 부농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농민을 지배한 것으로 저자는 파악하고 있다. 물론 분재기에 나오는 여러 토지의 존재 양태를 살펴보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양반의 경우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상속 시스템 하에서, 체제의 유지가 힘들었으며, 조선후기의 농업발달은 양반보다는 농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한 것이었다. 이앙법이나, 이앙법에 따른 보의 축조 같은 것은 농민의 결단이었다. 오히려 양반들은 자신들의 사유지를 비정상적으로 늘려나갔다. 늘이는 방법으로는 새 땅을 사들이는 매득(買得), 남의 땅을 빼앗는 탈점(奪占), 다른 사람의 토지를 기증 받는 기진(寄進)이나 땅을 가지고 들어와 경작권만 가지는 투탁(投托), 새땅을 일구는 개간(開墾), 땅을 빌려주고 일정기간 소유권을 점유하는 환퇴(還退)등의 방법이 있었으나 개간이나 매득이 가장 많았다. 이들은 강남농법(江南農法)이 들어와 농업기술이 발달되자 토지를 집적하여 농장(農莊)을 만들어 산천을 경계로 활 정도로 대토지 소유를 할 뿐 아니라 세금을 특권적으로 면제 받아 국가를 망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양반지주들은 많은 토지를 노비를 시켜 직영하거나 소작인에게 주어 병작반수(竝作半收)를 하여 부를 축적해 갔다. 소득이 늘어나면서 이들은 장리(長利)를 놓아 더욱 많은 돈을 가지게 되었다. 장리의 경우 왕실(王室)도 예외는 아니었다. 빗을 갚을 수 없는 농민은 결국 토지를 빼앗기게 되어 경제기반이 흔들리기까지 했다. 이러한데 양반들을 건실한 농업경영인이라고 말을 할 수 있을까? 우리 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론
지금까지 우리 조가 한 <<양반>>이라는 텍스트에 대한 비평이었다. 우리는 위의 본론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사실들로 보았을 때 미야지마 히로시 선생의 양반이란 이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잔반의 문제에 대해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으신 점이라거나, 양반의 형성과정의 전개 방식, 양반층의 여러 가지 특권을 단순히 경제적인 관계에 대해서 파생한 것이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양반이란 히로시 선생의 ‘건실한 농업경영인’ 이라기 보다는 ‘봉건사회의 특권계급’ 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고 판단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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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4.12.27
  • 저작시기2004.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80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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