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노인Z: 전쟁기계는 사랑기계인가?
1. 노인과 Z, 그리고 기계들
2. 인간적인, 또한 기계적인
3. 기계들의 두 상태
4. 사이보그 에이지즘?
5. 전쟁 기계와 사랑 기계
1. 노인과 Z, 그리고 기계들
2. 인간적인, 또한 기계적인
3. 기계들의 두 상태
4. 사이보그 에이지즘?
5. 전쟁 기계와 사랑 기계
본문내용
을 행사할 지언정, 폭력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마드들을 정벌하고, 그들을 포섭해왔던 국가가 전쟁 수단으로 쓰는 군대는 이점에서 변질된 전쟁 기계, 포획된 전쟁 기계다. 그것은 규율과 훈육을 통해서 국가에 전유된 전쟁 기계다. 간혹 그것들이 국가를 상대로 총부리를 겨눌 때, 우리가 바로 ‘쿠데타’라고 하는 현상을 목도하게 될 때, 우리는 전쟁 기계의 잊혀진 야성이 어떻게 변질되어 있었던가를 확인하게 된다.
따라서 전쟁 기계란 변이와 새로운 생성과 친화력을 가지며, ‘전쟁’ 보다는 ‘창조’와 ‘생성’, ‘생명’에 훨씬 가깝다. 들뢰즈가 니체의 여행에서 ‘전쟁 기계’를 발견했다면, 네그리는 스피노자에게서 그것을 발견했다. 사람들의 숱한 오해에도 불구하고, 네그리는 전쟁 기계가 ‘사랑 기계’임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랑, 사랑만이 권력과 지식의 관계를 결정할 수 있네. 이같이 비이성적인 부끄러운 고백의 저 안에서 나는 나에게 정당성을 부여해줄 수 있는 몇 명의 오랜 친구를 불러올 것이네. 이들 중의 하나가 그 좋은 스피노자네. 그는 사랑이 권력과 지식 사이를 연결하고 있다고 믿었네.” 안토니오 네그리, 장현수 역, 사회적 실천 -팰릭스 가타리에게 보내는 편지, 전복의 정치학, 세계일보사, 202쪽.
사랑(Amor)! 스피노자의 신에 대한 사랑(Amor dei)과 니체의 운명에 대한 사랑(Amor fati)! 그러나 우리는 사랑에 대한 통속적 이해로부터 가장 멀리 달아남을 통해서만 사랑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리비도, 성적 욕망을 특정 대상에만 투여하는 것, 특정 인물이나 대상에 한정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피해야할 사랑이다! 또 그것을 승화시켜야 한다는 생각 역시 버려야 한다! 사랑은 직접적으로 대중에, 혹은 모든 기계들과 자연물에 리비도를 흐르게 함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앙띠 외디푸스, 제4부
.
스피노자의 신도 니체의 운명도 사랑의 목적론을 거부했다 Joan Stambaugh, The Other Nietzsche,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1994. ch. 6
. 신과 운명은 통속적인 이해처럼 정해진 길이 아니다! 그것은 만들어지는 길이며, 생성되는 길이다. 스피노자의 신은 인간적이지 않다. 신은 자기증식적인 능력일 뿐이다. 니체가 운명의 근원으로서 스피노자적 신을 공격했다고 해도, 그는 디오니소스 속에서 그것을 재발견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모두 세계를 긍정하는 것으로서의 신과 만난 것이다.
자기 증식의 사이보그가 난 데 없이 부처로 돌아온 것! 사이보그가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바닷가의 기억 속에서 우리는 부처를 한 번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사이보그의 여행이 끝나고 다시 시작하는 점이다. Amor Dei ! 모든 것에 원리로서 내재하고, 모든 것들에 대한 사랑의 이름인 부처로의 귀환과 그것에서의 출발!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를 이루는 것도 둘을 이룬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수천 수만을 이룬다는 것이다.” 앙띠외디푸스에서
그리고 그것은 전체를 이루는 것이다!
노마드들을 정벌하고, 그들을 포섭해왔던 국가가 전쟁 수단으로 쓰는 군대는 이점에서 변질된 전쟁 기계, 포획된 전쟁 기계다. 그것은 규율과 훈육을 통해서 국가에 전유된 전쟁 기계다. 간혹 그것들이 국가를 상대로 총부리를 겨눌 때, 우리가 바로 ‘쿠데타’라고 하는 현상을 목도하게 될 때, 우리는 전쟁 기계의 잊혀진 야성이 어떻게 변질되어 있었던가를 확인하게 된다.
따라서 전쟁 기계란 변이와 새로운 생성과 친화력을 가지며, ‘전쟁’ 보다는 ‘창조’와 ‘생성’, ‘생명’에 훨씬 가깝다. 들뢰즈가 니체의 여행에서 ‘전쟁 기계’를 발견했다면, 네그리는 스피노자에게서 그것을 발견했다. 사람들의 숱한 오해에도 불구하고, 네그리는 전쟁 기계가 ‘사랑 기계’임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랑, 사랑만이 권력과 지식의 관계를 결정할 수 있네. 이같이 비이성적인 부끄러운 고백의 저 안에서 나는 나에게 정당성을 부여해줄 수 있는 몇 명의 오랜 친구를 불러올 것이네. 이들 중의 하나가 그 좋은 스피노자네. 그는 사랑이 권력과 지식 사이를 연결하고 있다고 믿었네.” 안토니오 네그리, 장현수 역, 사회적 실천 -팰릭스 가타리에게 보내는 편지, 전복의 정치학, 세계일보사, 202쪽.
사랑(Amor)! 스피노자의 신에 대한 사랑(Amor dei)과 니체의 운명에 대한 사랑(Amor fati)! 그러나 우리는 사랑에 대한 통속적 이해로부터 가장 멀리 달아남을 통해서만 사랑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리비도, 성적 욕망을 특정 대상에만 투여하는 것, 특정 인물이나 대상에 한정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피해야할 사랑이다! 또 그것을 승화시켜야 한다는 생각 역시 버려야 한다! 사랑은 직접적으로 대중에, 혹은 모든 기계들과 자연물에 리비도를 흐르게 함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앙띠 외디푸스, 제4부
.
스피노자의 신도 니체의 운명도 사랑의 목적론을 거부했다 Joan Stambaugh, The Other Nietzsche,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1994. ch. 6
. 신과 운명은 통속적인 이해처럼 정해진 길이 아니다! 그것은 만들어지는 길이며, 생성되는 길이다. 스피노자의 신은 인간적이지 않다. 신은 자기증식적인 능력일 뿐이다. 니체가 운명의 근원으로서 스피노자적 신을 공격했다고 해도, 그는 디오니소스 속에서 그것을 재발견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모두 세계를 긍정하는 것으로서의 신과 만난 것이다.
자기 증식의 사이보그가 난 데 없이 부처로 돌아온 것! 사이보그가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바닷가의 기억 속에서 우리는 부처를 한 번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사이보그의 여행이 끝나고 다시 시작하는 점이다. Amor Dei ! 모든 것에 원리로서 내재하고, 모든 것들에 대한 사랑의 이름인 부처로의 귀환과 그것에서의 출발!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를 이루는 것도 둘을 이룬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수천 수만을 이룬다는 것이다.” 앙띠외디푸스에서
그리고 그것은 전체를 이루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