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序論
Ⅱ.本論
1.<오! 수정>의 서술구조
2.<오!수정> ‘기억의 차이’의 실제사례
1)표층적 차이들
2)함의적 차이들
3.영화 '라쇼몽'의 다층적 서술 구조의 기능
4.서술 층위의 위계 구조
5.다층적 서술 층위의 기능
Ⅲ.結論
Ⅳ.參考資料
Ⅱ.本論
1.<오! 수정>의 서술구조
2.<오!수정> ‘기억의 차이’의 실제사례
1)표층적 차이들
2)함의적 차이들
3.영화 '라쇼몽'의 다층적 서술 구조의 기능
4.서술 층위의 위계 구조
5.다층적 서술 층위의 기능
Ⅲ.結論
Ⅳ.參考資料
본문내용
두 번째 이야기가 첨가되면서 더욱 첨예해 진다. 언쟁의 차원에서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승려와 나무꾼과 평민 사이에 발생한다. 이것은 제2서술의 화자와 청자로 기능했던 이들이 자신들이 서술하거나 들었던 내용에 대해 논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나무꾼의 이야기를 포함하여 네 개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평민은 나무꾼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나무꾼은 자신이 분명히 눈으로 목격한 것이며, 자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승려는 인간이 서로를 믿지 못한다면 세상이 지옥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다. 이들의 언쟁은 보다 직접적으로 인간의 이기심과 거짓말, 그리고 인간에 대한 신뢰의 주제로 발전한다. 승려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못하는 반면 평민은 인간에 대한 불신한다. 그 중간쯤 놓인 나무꾼은 여하간 지금까지의 이야기 중 어느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들의 언쟁이 가장 절정에 달하는 것은 평민이 버려진 아이의 옷을 벗겨가려 할 때 이루어지는 언쟁에서이다. 그런데 여기서의 언쟁은 그 자체로서 어린아이를 둘러싼 하나의 사건이 된다. 버려진 아이를 발견하기 전가지 이들은 특별한 행위를 하지 않는다. 이들은 그 전까지 제2서술층위의 화자와 청자로 기능하며, 제3서술층위의 서술내용에 대한 메타 서술을 행할 뿐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그들의 행위라기보다 그들의 구술언어이다. 발화자와 수화자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던 이들이 그 지위를 잃고 행위자로서 자신의 행위를 전면에 부각시키는 것은 버려진 아이를 발견하면서부터이다. 이러한 지위의 변화는 영화 속에서 명백히 구분된다. 이 구분점은 불타는 장작을 빗속에 던지는 평민의 해우이이다. 모닥불을 피워 놓고 그 주변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이야기하기 문화의 한 형태라고 보았을 때, 평민이 모닥불을 빗속으로 던지는 것은 이야기 상황의 종료를 의미한다. 이것은 또한 발화자와 수화자라는 자신들의 지위를 던져 버리는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평민이 모닥불을 모조리 던진 다음에야 어디선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그제 서야 그들이 아이 주변으로 이동하면서 능동적인 행위자로 사건에 참여하는 것은 그저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이렇게 아이를 둘러싼 이들의 대립은 하나의 사건으로 부상하고, 이 사건에 의해 또 한 번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논쟁이 펼쳐질 때, 이 대립은 세 번째 차원인 사건의 차원에서의 논쟁의 장을 형성한다.
그런데 승려와 나무꾼과 평민 사이에 발생하는 언쟁과 그들이 엮어 가는 사건은 누구에 의해 서술되고 있는가? 이것은 제1서술층위에서 서술되는 내용에 포함되는 만큼 그 서술자는 제1서술층위의 서술자인 내포 서술자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제2서술 층위에서 스토리 차원의 논증이 이루어지고 있다면, 언쟁과 사건 차원의 논증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제1서술층위에서 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영화의 결말부는 흔히 '단순한 휴머니즘'으로 언급되곤 하는 메세지를 코드화시킨다. 비가 그치고, 나무꾼은 버려진 아이의 입양을 결심하다.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아니, 저는 당신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인간에 대한 제 신념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는 승려의 대사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울던 아이도 울음을 그친다. 카메라는 아이를 안고 라쇼몽 밖으로 걸어 나오는 나무꾼을 정면에서 비춘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지금까지 영화가 보여주었던 인간의 이기심과 부정직(不正直)에 관련한 논쟁에 대한 제1서술층위의 서술자가 자신의 입장을 나름대로 천명하는 것으로 읽힌다.
이상을 요약하면 이렇다. 제3서술층위에서 서술된 내용들(타조마루, 아내, 사무라이의 세 이야기)은 사건보다는 인물들 자신을 주관적으로 그려낸다. 이 주관적인 서술들은 제2서술층위에서 서로 병치되고 대립되면서 "진실의 상대성"에 대한 논쟁의 장을 형성한다.
제1서술층위에서는 여기에 나무꾼이 목격담을 서술함으로써 이 논쟁의 성격을 강화시킨다. 뿐만 아니라 여기서는 승려, 나무꾼, 평민 사이의 언쟁과 버려진 아이를 둘러싼 사건을 통해 하위서술층위에서 제기된 논쟁을 다차원적으로 중첩시킨다. 따라서 영화 <라쇼몽>은 서술층위의 수직적 위계 구조를 통해 <덤불 속>이 보여주는 논증의 강도를 강화시키고 주제를 보다 강력하게 구현한다.
Ⅲ.結論
위에서 보듯이, <라쇼몽>이 서로 엇갈린 진술을 하는 인물들을 통해 "진실은 상대적이다"라는 진리를 피력하는 것에 비해 <오! 수정>은 엇갈린 기억은 그들 배면에 감춰진 욕망과 의도에 의한 것이라고 '기억의 차이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즉, <라쇼몽>은 인간의 자기중심적 관점에 의한 이기주의와 허위성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담겨져 있다면, <오!수정>은 기억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기억 주체의 심리나 의도의 반영에 따른 것으로서 개인의 욕망과 의식이 기억을 취사, 선택하게 만든다는 기억에 대한 주관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영화의 주제를 더욱 부각시키게 하는 요소가 바로 영화의 반복 서사구조이다. 만일 <오!수정>이 일반적인 3인칭 서술이나 혹은 재훈의 1인칭 독백 서술 형식으로 진행되었다면, 결코 이 같은 의식의 미세한 단면들까지 정교하고 섬세하게 표현하지 못 했을 것이다. 또한 <라쇼몽>역시 동일한 상황에서의 차이를 보이는데 이러한 서사구조가 주효했다고 볼 수 있다. 즉, 각 주체가 기억하는 사건을 비교하여 보여주면서 기억의 상대성을 보여주고 있다. 같은 시공간을 경험한 인물들의 다른 시각을 반복적 영상으로 보여줌으로써 우리는 그 '차이'를 알 게 된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곧 두 영화의 주제 구현을 뒷받침해주는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Ⅳ.參考資料
『영화 속의 혹은 영화 겉은 문학』(모아드림, 최동호 외, 2003)
『한국기호학회 기호학연구 제10집』(「영화이미지와 묘사적 객관주의」, 김호영, 2001)
『영화연구 제21권』(「영화 <라쇼몽>을 통해 본 다층적 서술 구조의 기능」,장우진, 2003)
『한국언론학보 48권 2호』(「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의 탈 영토화」, 윤선희, 2004)
『나생문 외-범우문고 110』(범우사, 아쿠타가와 류토스케 외, 1977)
이러한 이들의 언쟁이 가장 절정에 달하는 것은 평민이 버려진 아이의 옷을 벗겨가려 할 때 이루어지는 언쟁에서이다. 그런데 여기서의 언쟁은 그 자체로서 어린아이를 둘러싼 하나의 사건이 된다. 버려진 아이를 발견하기 전가지 이들은 특별한 행위를 하지 않는다. 이들은 그 전까지 제2서술층위의 화자와 청자로 기능하며, 제3서술층위의 서술내용에 대한 메타 서술을 행할 뿐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그들의 행위라기보다 그들의 구술언어이다. 발화자와 수화자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던 이들이 그 지위를 잃고 행위자로서 자신의 행위를 전면에 부각시키는 것은 버려진 아이를 발견하면서부터이다. 이러한 지위의 변화는 영화 속에서 명백히 구분된다. 이 구분점은 불타는 장작을 빗속에 던지는 평민의 해우이이다. 모닥불을 피워 놓고 그 주변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이야기하기 문화의 한 형태라고 보았을 때, 평민이 모닥불을 빗속으로 던지는 것은 이야기 상황의 종료를 의미한다. 이것은 또한 발화자와 수화자라는 자신들의 지위를 던져 버리는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평민이 모닥불을 모조리 던진 다음에야 어디선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그제 서야 그들이 아이 주변으로 이동하면서 능동적인 행위자로 사건에 참여하는 것은 그저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이렇게 아이를 둘러싼 이들의 대립은 하나의 사건으로 부상하고, 이 사건에 의해 또 한 번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논쟁이 펼쳐질 때, 이 대립은 세 번째 차원인 사건의 차원에서의 논쟁의 장을 형성한다.
그런데 승려와 나무꾼과 평민 사이에 발생하는 언쟁과 그들이 엮어 가는 사건은 누구에 의해 서술되고 있는가? 이것은 제1서술층위에서 서술되는 내용에 포함되는 만큼 그 서술자는 제1서술층위의 서술자인 내포 서술자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제2서술 층위에서 스토리 차원의 논증이 이루어지고 있다면, 언쟁과 사건 차원의 논증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제1서술층위에서 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영화의 결말부는 흔히 '단순한 휴머니즘'으로 언급되곤 하는 메세지를 코드화시킨다. 비가 그치고, 나무꾼은 버려진 아이의 입양을 결심하다.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아니, 저는 당신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인간에 대한 제 신념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는 승려의 대사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울던 아이도 울음을 그친다. 카메라는 아이를 안고 라쇼몽 밖으로 걸어 나오는 나무꾼을 정면에서 비춘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지금까지 영화가 보여주었던 인간의 이기심과 부정직(不正直)에 관련한 논쟁에 대한 제1서술층위의 서술자가 자신의 입장을 나름대로 천명하는 것으로 읽힌다.
이상을 요약하면 이렇다. 제3서술층위에서 서술된 내용들(타조마루, 아내, 사무라이의 세 이야기)은 사건보다는 인물들 자신을 주관적으로 그려낸다. 이 주관적인 서술들은 제2서술층위에서 서로 병치되고 대립되면서 "진실의 상대성"에 대한 논쟁의 장을 형성한다.
제1서술층위에서는 여기에 나무꾼이 목격담을 서술함으로써 이 논쟁의 성격을 강화시킨다. 뿐만 아니라 여기서는 승려, 나무꾼, 평민 사이의 언쟁과 버려진 아이를 둘러싼 사건을 통해 하위서술층위에서 제기된 논쟁을 다차원적으로 중첩시킨다. 따라서 영화 <라쇼몽>은 서술층위의 수직적 위계 구조를 통해 <덤불 속>이 보여주는 논증의 강도를 강화시키고 주제를 보다 강력하게 구현한다.
Ⅲ.結論
위에서 보듯이, <라쇼몽>이 서로 엇갈린 진술을 하는 인물들을 통해 "진실은 상대적이다"라는 진리를 피력하는 것에 비해 <오! 수정>은 엇갈린 기억은 그들 배면에 감춰진 욕망과 의도에 의한 것이라고 '기억의 차이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즉, <라쇼몽>은 인간의 자기중심적 관점에 의한 이기주의와 허위성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담겨져 있다면, <오!수정>은 기억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기억 주체의 심리나 의도의 반영에 따른 것으로서 개인의 욕망과 의식이 기억을 취사, 선택하게 만든다는 기억에 대한 주관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영화의 주제를 더욱 부각시키게 하는 요소가 바로 영화의 반복 서사구조이다. 만일 <오!수정>이 일반적인 3인칭 서술이나 혹은 재훈의 1인칭 독백 서술 형식으로 진행되었다면, 결코 이 같은 의식의 미세한 단면들까지 정교하고 섬세하게 표현하지 못 했을 것이다. 또한 <라쇼몽>역시 동일한 상황에서의 차이를 보이는데 이러한 서사구조가 주효했다고 볼 수 있다. 즉, 각 주체가 기억하는 사건을 비교하여 보여주면서 기억의 상대성을 보여주고 있다. 같은 시공간을 경험한 인물들의 다른 시각을 반복적 영상으로 보여줌으로써 우리는 그 '차이'를 알 게 된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곧 두 영화의 주제 구현을 뒷받침해주는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Ⅳ.參考資料
『영화 속의 혹은 영화 겉은 문학』(모아드림, 최동호 외, 2003)
『한국기호학회 기호학연구 제10집』(「영화이미지와 묘사적 객관주의」, 김호영, 2001)
『영화연구 제21권』(「영화 <라쇼몽>을 통해 본 다층적 서술 구조의 기능」,장우진, 2003)
『한국언론학보 48권 2호』(「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의 탈 영토화」, 윤선희, 2004)
『나생문 외-범우문고 110』(범우사, 아쿠타가와 류토스케 외, 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