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 발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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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프랑스 영화 발달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들어가는 말>
Ⅰ.영화의 발명에서 유성영화의 탄생까지.
1.발명가와 제작자들.
2.예술영화와 영화예술.
3.유성영화.
Ⅱ.1930년대 초부터 1950년대 말까지.
1.양차 대전 사이의 리얼리즘.
2.나치 점령기, 검열하에서의 영화.
3.해방 후 신인들.
Ⅲ.누벨 바그에서 영화 탄생 100주년까지.
1.사실을 찍기.
2.1970년대의 혼란.
3.1980년대 이후.

본문내용

나름대로 의미 있는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분명 이 사건은 1970년대에 들어와 다양한 양식으로 작용한다. 어떤 영화인들에게는 명백한 단절이 찾아온다.
한편 이 시대에는 '기 드로브'가 영화를 보편화된 모사행위로 간주하며 비판의 대사으로 삼은 반면, '크리스 마커'등은 제도권 영화가 개인적 표현을 소외시키는 관례를 되밟지 않기 위해 '직접영화'의 미덕을 그 어느 때보다도 확신했다. '르네 프레달'이 1974년 프랑스인들은 우파를 지지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좌파였을 것이다. 하고 말한 것처럼 완화된 검열의 시기에 그럴듯한 주제가 없어 고심하는 제작자들의 심리를 이용해, 몇몇 감독들은 독창성보다는 신념과 교훈을 바탕으로 정치적 주제들을 다루어낸다. 즉 순교당한 민주주의에 성가를 불러준 것이다. 또한 어두운 시절을 잊으려는 프랑스인 들의 기억을 일깨워주는 영화들이 만들어졌는데, 가장 냉엄한 일격을 가한 이는 '마르셀 오퓔스'였다. '막스 오풩스'의 아들인 그는 「슬픔과 연민」(1969-1971)이라는 작품으로 점령기의 망령들을 다시 되살려냈다. 「라콩브 뤼시앵」(1974)의 '루이 말'역시 비슷한 강도로 허구로서의 영화에 거칠고 강렬한 기록 장면들을 더하면서, 나치 점령 시기의 친독 단체 중 하나를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냉철하게 분석한다.
프랑스 사회를 새롭게 정의 하려는 이 시기에 '트뤼포'와 '샤브롤'같은 누벨 바그의 선도자들은 자신의 위치를 찾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1959년 이후 누벨바그의 유산을 물려받은 창조적 작가들은 영화를 계속해서 풍부하게 만들어간다. 당시는 포르노의 물결이 투르 시장의 파편으로 퍼져가고 섹스가 정치와 마찬가지로 스크린을 침범하던 시기였는데, '외스타슈'는 쾌락과 욕망·열정·절망에 대해 화당무계할 정도로 솔직하게 표현했다. 그가 영화에서 보여준 긴 독백들은 보수적이던 당시 영화계에 대한 일종의 반격 같은 것이었다.
한편 '모키'는 블랙 코미디로부터 멀어졌지만 누벨 바그의 교훈은 인간 행동에 대한 차가운 분서가인 '두아용'과 '피알라'에서 찾을 수 있고, '타베르니에'에게서는 그 반대의 모습도 발견하게 된다. 프랑스 영화의 새로운 우수성은 코미디 영화와 탐정영화에서도 개가를 올리는데, 특히 '소테'의 작품들과 쾌락을 추구하면서도 알 수 없는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그의 부르주아 주인공들에게서 빛을 발한다. 또한 이 시기에는 새로운 배우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곧바로 사라지거나 혹은 '드파르디외'와 '이자벨 아자니'처럼 계속 살아남는다. 반면에 '로미 슈나이더'와 '안니 지라르도'는 명감독의 작품들에 출연하여 흥행면에서 대성공을 거둔다.
영화 「조조」는 육체관계에 대해, 「사촌과 여사촌」은 심리문제에 대해 길게 얘기를 하면서 당시 대부분의 젊은 영화가 다루고 있던 사호문제의 영역을 축소시키는데, 이런 새로운 내면주의 안에서 사람들은 미래의 영화에 대한 희망을 얻게 된다.
) 뱅상 피넬·샹탈 조르젤·스테판 게강·장 피에르 장콜라·제라르 게강『프랑스 영화』(도서 출판창해, 2000) p.22∼p.24
3.1980년대 이후.
1984년 이후 프랑스의 작가 영화들은 작품성이 뛰어나긴 했지만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는 경우는 거의 없는 편이었고, 폭넓은 대중을 겨냥하여 만들어진 상업 영화의 경우도 늘 성공적 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1980년대 10년 동안 프랑스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영화 세편은 놀랍게도 모두 심리적인 코미디물이었다.
) 르네 프레달. 『세계 영화 100년사』(도서출판 이론과실천, 1999)p.337∼p.341
이 시대의 영화 감독인 '아노', '베리', '코르노', '셰로'는 1959년에 그들이 분개했던 '베르뇌유'와 '크리스티앙 자크'식의 영화 제작법을 자연스럽게 다시 취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비사실주의적이고 환각적인 어두운 중세를 과도하게 보게 된다. 영화는 프랑스의 역사를 위조하며, 낭만주의의 이름으로 과거의 사회적 갈등을 달콤하게 완화시킨다. 이처럼 분석이 눈요기 속에 같혀 버릴수록 지난 시대에 대한 향수는 그 정당성을 읽게 된다. 매우 뛰어난 솜씨의 시각적 효과들로 포장된 이야기의 경박성과 세계에 대한 비참여적 성향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일이지만, 젊은 관객들은 「그랑 블루」(1987)를 일종의 컬트적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여하튼 영화제작이 목표로 삼은 것은 바로 오늘날 관개그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젊은 층이었다. 따라서 영화는 젊은 층의 이야기이거나, 그들의 사회 적응문제 및 가정문제 또는 성 문제 등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로메르', '두아용', '아네스 바르다'등은 매우 다양한 각도에서 영화를 다루고 있고, '로샹', '밀레'그리고 '아랍 2세'들의 영화는 사회집단의 황폐함과 부패의 근원을 날카롭게 관찰한다.
반면에 '콜라르'같은 감독들은 청소년의 성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사회문제를 다룬 진정한 영화들은 드문 편이다. 일부 예외(피알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작품이 카페 테아트르 식 영화의 후예들로 약간 신랄한 유머나, 혹은 더 못한 경우 '샤티예즈'의 「생은 조용히 흐르는 강물」(1989)같이 광고방송의 외설스러운 희화화 등에 의존한다. 결국 미테랑 집권 시절의 프랑스 영화는 모든 면에서 냉각기를 겪었으며, '페라라'나 '모레티' 같은 거장을 탄생시키지는 못했다.
) 뱅상 피넬·샹탈 조르젤·스테판 게강·장 피에르 장콜라·제라르 게강『프랑스 영화』(도 서 출판창해, 2000) p.24∼p.25
장 피에르 장콜라 『프랑스 영화사』(東文選 現代新書, 2003)p.123∼p.152 참고.
<참고문헌>
뱅상 피넬·샹탈 조르젤·스테판 게강·장 피에르 장콜라·제라르 게강.『프랑스 영화』(도
서출판창해, 2000)
김화.『이야기 한국영화사』(하서출판사, 2001)
장 피에르 장콜라 『프랑스 영화사』(東文選 現代新書, 2003)
톰슨·보드웰.『세계 영화사-영화 발명에서 무성영화 시대까지 1880s∼1929』(도서출판 시
각과 언어, 2000)
르네 프레달. 『세계 영화 100년사』(도서출판 이론과실천, 1999)
로버트A. 로젠스톤 『영화, 역사』(소나무,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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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3.26
  • 저작시기2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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