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우리나라 신석기문화의 연구사 검토
一. 광복 이전의 신석기문화 연구
二. 광복 이후의 신석기문화 연구
三. 우리나라 신석기문화 연구의 특징
Ⅱ. 남해안지방 신석기시대의 자연환경
一. 신석기시대의 자연환경
二. 현재 남해안지방의 자연환경
三. 해수면 변동
四. 식물상
五. 동물상
Ⅲ. 남해안지방 조개더미 유적과 유물의 검토
一. 남해안지방의 조개더미
二. 유적의 유형과 유적 둘레의 활용자원
三. 층위․문화층․문화단계의 검토
四. 유적․유물의 검토
五. 유적의 계절성과 정착
Ⅳ. 남해안지방 신석기사회의 구성과 발전단계
一. 집자리와 무덤을 통해 본 신석기사회의
二. 신석기시대의 집자리와 무덤
三. 남해안지방 신석기사회의 발전단계와 그 성격
Ⅴ. 맺음말
一. 광복 이전의 신석기문화 연구
二. 광복 이후의 신석기문화 연구
三. 우리나라 신석기문화 연구의 특징
Ⅱ. 남해안지방 신석기시대의 자연환경
一. 신석기시대의 자연환경
二. 현재 남해안지방의 자연환경
三. 해수면 변동
四. 식물상
五. 동물상
Ⅲ. 남해안지방 조개더미 유적과 유물의 검토
一. 남해안지방의 조개더미
二. 유적의 유형과 유적 둘레의 활용자원
三. 층위․문화층․문화단계의 검토
四. 유적․유물의 검토
五. 유적의 계절성과 정착
Ⅳ. 남해안지방 신석기사회의 구성과 발전단계
一. 집자리와 무덤을 통해 본 신석기사회의
二. 신석기시대의 집자리와 무덤
三. 남해안지방 신석기사회의 발전단계와 그 성격
Ⅴ. 맺음말
본문내용
5명을 넘지 않았을 것이다. 마을에는 공공건물이 있으며 저장움도 많은 편이다.
신석기 중기 이후로 가면서 집의 형태가 대개 네모꼴로 바뀌지만 봉계리처럼 여전히 둥근꼴로 짓는 경우도 있고, 율리에서 보듯이 후기까지도 바위그늘이 쓰이기도 하였다.
무덤은 쓰는 장소가 특별하며 껴묻거리를 새로이 만들어 넣는 등 무덤을 만드는데 어느 정도의 비용이 지출되었다고 하겠다.
이러한 점으로 보자면 남해안지방의 신석기사회는 살아가면서 얻어진 일종의 신분상의 차이가 있는 사회 정도라고 보아진다.
2. 남해안지방 신석기문화의 발달
(1) 신석기 초기
상노대도 9-6층, 동삼동 조도기에서 보듯이 덧무늬토기가 주로 만들어지며 후기 구석기의 석기 제작수법이 남아 있던 시기이다. 바다자원에 대한 의존도는 그다지 크지 않으나 고래바다사자돌고래 등의 큰 바다짐승 사냥이 이루어진다.
(2) 신석기 전기
상노대도 5층, 동삼동의 부산기, 욕지도연대도송도북정신암리유적 등이 여기에 속한다. 모든 유물이 질양면에서 확대되며 연대도에서 보듯이 무덤이 나타나기도 하여 바다에 의존하는 붙박이 살림이 궤도에 올랐다. 석기 가운데 뗀석기의 비중이 줄어들기 시작하나 돌도끼 등 큰 석기가 나오게 된다. 이 시기에 늘어나는 도끼류는 교역을 위한 ‘배’제작에 쓰여졌을 것이라 추측된다.
남해안 조개더미유적에서는 아직 집자리를 찾지 못했으나 유물갖춤새로 보아 서포항유적이 남해안지방과 가장 비슷한 성격의 유적이므로, 남해안지방의 전기 살림살이 규모도 대략 서포항 정도였을 것이라 짐작된다. 전체적으로 인구의 증가와 살림의 확대를 감지할 수 있는 시기이다.
(3) 신석기 중기
동삼동의 두도기, 수가리 1문화층, 욕지도연대도송도신암리상노대도 산등유적 등이 이 시기에 해당한다. 이전에 비해 살림이 더욱 확대되어간다. 짐승사냥이 이전보다 늘고, 석기는 큼직큼직하고 단순해진다. 괭이반달칼 등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농사가 시작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그러나, 농사짓기와 보급된 이유 등에 대한 연구는 각 유적 주위의 활용자원에 대한 검토와 꽃가루분석해수면 변동 연구 등의 환경연구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무덤은 전기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밖에 남해안지방에서는 처음이라고 보이는 흙으로 만든 귀걸이여인상 등이 나온다.
(4) 신석기 후기
동삼동 영도기, 상노대도 상리 432층이 여기에 해당된다. 농사짓기와 관련되는 도구들이 자주 나타난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여기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계속 해 나가야 할 것이다. 농사짓기와 관련된 도구들이 나온다고 해서 실제로 이 시기에 농사를 지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리 빨리 채택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3. 남해안지방 신석기사회의 성격
남해안지방의 신석기사회를 규명하려면 ‘남해안’이라는 배경을 먼저 생각해야 된다. 남해안지방은 온화한 기후뿐만 아니라 생산성이 매우 높은 곳이지만, 상노대도 109층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처음부터 바다자원에 주목한 것 같지는 않다.
남해안지방의 조개더미의 계절성은 그곳에서 출토되는 자연유물의 분석을 통해 정확하게 파악되며 앞으로 분석방법이 정교해지고 과학성을 띨수록 살았던 시기가 정확히 드러날 것이다.
남해안지방은 초기에 비해 전기가 되면 바다에 의존하는 살림이 크게 발전하였으며 후기 무렵이 되면 같은 남해안지방에서도 작은 지역차이가 나타나게 된다. 전체적으로 남해안지방의 살림살이 규모는 서해중부지방의 그것보다 작은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농사짓는 사회와 어업 중심 사회의 생산력이 점차 격차를 갖게 되어 나간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 여겨진다.
발달되어가던 신석기사회는 민토기사회로 전환되어 갔다. 이러한 전환발전하는데는 자체적인 역량이 있어야 하므로 민토기 사회로의 전환은 신석기사회와 매우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신석기문화/민토기문화가 연결될 수 있다는 논의의 열쇠는 형질인류학상의 연구가 쥐고 있다고 보이나 현재까지 두 문화의 담당주인이 같다거나 다르다는 논의를 할만큼 자료가 나오지를 않았고, 그나마 얼마되지 않는 자료들을 바라보는 시각들도 매우 편향되어 있다. 그러므로, 가장 바람직하기로는 신석기토기와 민토기 시기의 문화유물들이 층위상으로 나타나고 이들 두 시기의 유물갖춤새, 혹은 각각의 문화 요소들이 닮았다거나 문화발달의 연속성을 갖고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증거를 찾는 일이다. 요컨대, 신석기사회에서 민토기사회로의 전환에서 우리들이 유념해야 할 점은 우리나라 선사문화의 연속성에 주목하고, 사회변화의 원동력을 찾는데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Ⅴ. 맺음말
지금까지 남해안지방의 신석기문화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남해안지방의 신석기문화를 이해할려면, 유적유물을 살펴보아야 하나 우리나라의 고고학은 80년대 이후 많은 변화를 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주로 토기를 중심으로 살펴보는데 그치고 있어 앞으로 토기 외의 유적이나 유물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시대이건 간에 자연환경이 그 시대 사람들의 살림살이에 영향을 끼치므로 남해안지방 신석기문화 연구에도 그 당시의 자연환경을 생각해야 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해수면의 상승은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이해하는데 핵심개념이다. 그러므로, 자연환경에 대한 연구 역시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문화라는 것은 어느 하나의 요소만으로 생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생겨나는 것이다. 남해안지방의 신석기문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남해안지방의 신석기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가지만 중점적으로 보아서는 올바르게 볼 수 없다. 남해안지방의 신석기문화를 이루는 여러 가지 요소-조개더미, 토기, 집자리, 무덤, 자연환경 등등-들을 종합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참 고 문 헌
<한국사> 2, 국사편찬위원회, 1997
<한국사> 1, 국사편찬위원회, 1977
<한국사> 1, 한길사, 1994
<한국고고학개설>, 김원룡, 일지사, 1986
<고고학개설>, 이선복, 이론과 실천, 1995
<고고학입문>, 鈴木公雄 著, 윤 환 譯註, 학연문화사, 1994
<유물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임효택이인숙 외 23인, 푸른역사, 2000
신석기 중기 이후로 가면서 집의 형태가 대개 네모꼴로 바뀌지만 봉계리처럼 여전히 둥근꼴로 짓는 경우도 있고, 율리에서 보듯이 후기까지도 바위그늘이 쓰이기도 하였다.
무덤은 쓰는 장소가 특별하며 껴묻거리를 새로이 만들어 넣는 등 무덤을 만드는데 어느 정도의 비용이 지출되었다고 하겠다.
이러한 점으로 보자면 남해안지방의 신석기사회는 살아가면서 얻어진 일종의 신분상의 차이가 있는 사회 정도라고 보아진다.
2. 남해안지방 신석기문화의 발달
(1) 신석기 초기
상노대도 9-6층, 동삼동 조도기에서 보듯이 덧무늬토기가 주로 만들어지며 후기 구석기의 석기 제작수법이 남아 있던 시기이다. 바다자원에 대한 의존도는 그다지 크지 않으나 고래바다사자돌고래 등의 큰 바다짐승 사냥이 이루어진다.
(2) 신석기 전기
상노대도 5층, 동삼동의 부산기, 욕지도연대도송도북정신암리유적 등이 여기에 속한다. 모든 유물이 질양면에서 확대되며 연대도에서 보듯이 무덤이 나타나기도 하여 바다에 의존하는 붙박이 살림이 궤도에 올랐다. 석기 가운데 뗀석기의 비중이 줄어들기 시작하나 돌도끼 등 큰 석기가 나오게 된다. 이 시기에 늘어나는 도끼류는 교역을 위한 ‘배’제작에 쓰여졌을 것이라 추측된다.
남해안 조개더미유적에서는 아직 집자리를 찾지 못했으나 유물갖춤새로 보아 서포항유적이 남해안지방과 가장 비슷한 성격의 유적이므로, 남해안지방의 전기 살림살이 규모도 대략 서포항 정도였을 것이라 짐작된다. 전체적으로 인구의 증가와 살림의 확대를 감지할 수 있는 시기이다.
(3) 신석기 중기
동삼동의 두도기, 수가리 1문화층, 욕지도연대도송도신암리상노대도 산등유적 등이 이 시기에 해당한다. 이전에 비해 살림이 더욱 확대되어간다. 짐승사냥이 이전보다 늘고, 석기는 큼직큼직하고 단순해진다. 괭이반달칼 등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농사가 시작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그러나, 농사짓기와 보급된 이유 등에 대한 연구는 각 유적 주위의 활용자원에 대한 검토와 꽃가루분석해수면 변동 연구 등의 환경연구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무덤은 전기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밖에 남해안지방에서는 처음이라고 보이는 흙으로 만든 귀걸이여인상 등이 나온다.
(4) 신석기 후기
동삼동 영도기, 상노대도 상리 432층이 여기에 해당된다. 농사짓기와 관련되는 도구들이 자주 나타난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여기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계속 해 나가야 할 것이다. 농사짓기와 관련된 도구들이 나온다고 해서 실제로 이 시기에 농사를 지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리 빨리 채택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3. 남해안지방 신석기사회의 성격
남해안지방의 신석기사회를 규명하려면 ‘남해안’이라는 배경을 먼저 생각해야 된다. 남해안지방은 온화한 기후뿐만 아니라 생산성이 매우 높은 곳이지만, 상노대도 109층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처음부터 바다자원에 주목한 것 같지는 않다.
남해안지방의 조개더미의 계절성은 그곳에서 출토되는 자연유물의 분석을 통해 정확하게 파악되며 앞으로 분석방법이 정교해지고 과학성을 띨수록 살았던 시기가 정확히 드러날 것이다.
남해안지방은 초기에 비해 전기가 되면 바다에 의존하는 살림이 크게 발전하였으며 후기 무렵이 되면 같은 남해안지방에서도 작은 지역차이가 나타나게 된다. 전체적으로 남해안지방의 살림살이 규모는 서해중부지방의 그것보다 작은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농사짓는 사회와 어업 중심 사회의 생산력이 점차 격차를 갖게 되어 나간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 여겨진다.
발달되어가던 신석기사회는 민토기사회로 전환되어 갔다. 이러한 전환발전하는데는 자체적인 역량이 있어야 하므로 민토기 사회로의 전환은 신석기사회와 매우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신석기문화/민토기문화가 연결될 수 있다는 논의의 열쇠는 형질인류학상의 연구가 쥐고 있다고 보이나 현재까지 두 문화의 담당주인이 같다거나 다르다는 논의를 할만큼 자료가 나오지를 않았고, 그나마 얼마되지 않는 자료들을 바라보는 시각들도 매우 편향되어 있다. 그러므로, 가장 바람직하기로는 신석기토기와 민토기 시기의 문화유물들이 층위상으로 나타나고 이들 두 시기의 유물갖춤새, 혹은 각각의 문화 요소들이 닮았다거나 문화발달의 연속성을 갖고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증거를 찾는 일이다. 요컨대, 신석기사회에서 민토기사회로의 전환에서 우리들이 유념해야 할 점은 우리나라 선사문화의 연속성에 주목하고, 사회변화의 원동력을 찾는데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Ⅴ. 맺음말
지금까지 남해안지방의 신석기문화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남해안지방의 신석기문화를 이해할려면, 유적유물을 살펴보아야 하나 우리나라의 고고학은 80년대 이후 많은 변화를 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주로 토기를 중심으로 살펴보는데 그치고 있어 앞으로 토기 외의 유적이나 유물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시대이건 간에 자연환경이 그 시대 사람들의 살림살이에 영향을 끼치므로 남해안지방 신석기문화 연구에도 그 당시의 자연환경을 생각해야 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해수면의 상승은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이해하는데 핵심개념이다. 그러므로, 자연환경에 대한 연구 역시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문화라는 것은 어느 하나의 요소만으로 생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생겨나는 것이다. 남해안지방의 신석기문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남해안지방의 신석기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가지만 중점적으로 보아서는 올바르게 볼 수 없다. 남해안지방의 신석기문화를 이루는 여러 가지 요소-조개더미, 토기, 집자리, 무덤, 자연환경 등등-들을 종합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참 고 문 헌
<한국사> 2, 국사편찬위원회, 1997
<한국사> 1, 국사편찬위원회, 1977
<한국사> 1, 한길사, 1994
<한국고고학개설>, 김원룡, 일지사, 1986
<고고학개설>, 이선복, 이론과 실천, 1995
<고고학입문>, 鈴木公雄 著, 윤 환 譯註, 학연문화사, 1994
<유물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임효택이인숙 외 23인, 푸른역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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