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바지 요족사회에 있어 성적 제의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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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흰바지 요족과의 만남
2. 성스러운 시간과 성스러운 공간
3. 성적 제의의 의미
4. 흰바지 요족의 슬픔

본문내용

집에 초청을 받아 간 적이 있는데 20여 명이 모여 포르노에 가까운 비디오를 보고 있었다. 당시 비디오는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이 집에만 있는 것으로 외부로 스피커를 달아 마을 전체에 울려 퍼졌다. 아이에서 어른에 이르기까지 모두 모여 보고 있었는데 이 광경을 나는 오랫동안 잊을 수가 없었다. 이들의 성에 대한 관념은 항상 나에게 이해할 수 없는 한 부분이었다.
흰바지 요족의 성적 제의의 경우에도 이해가 되지 않는 몇 가지 부분이 있다. 이 제의에는 젊은이들만이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참여한다. 심지어는 한 손으로는 남편의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다른 남자의 손을 잡고 구애의 노래를 부르는 여자도 발견할 수 있다. 여자가 주동적으로 남자에게 노래를 구애를 표시하는데 어린 여자아이가 남자아이의 허리띠를 잡고 끄는 경우도 있다. 이 의례는 3시간 정도에 걸쳐 엄숙하게 진행된다. 구애의 과정에서 불려지는 노래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애정가 종류이며 다른 하나는 이들의 창세신화이다. 이들의 성생활에서 풀리지 않는 또 하나의 문제는 혼전의 관계에서는 임신이 되지 않으며 결혼한 사람의 경우에도 부부 이외의 경우에는 임신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흰바지 요족의 풍속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피임법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는 성적 제의는 임신을 위한 목적에서 거행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이러한 성적 제의를 통하여 알게된 아내나 남편의 애인은 친척으로 간주된다. 상대방의 애인이 어려운 점이 있으면 부부가 함께 가서 도와준다. 아이들은 부모의 애인을 친부모처럼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 죽으면 예전의 애인들은 모두 찾아와 관 앞에서 둘의 연애담을 노래로 만들어 불러준다고 한다. 이들의 감정 속에는 질투가 없다. 남단현 여유국의 양국장은 인류의 문화가 가장 발달한 다음에야 도달할 수 있는 정말 이상적인 사회라고 흰바지 요족들의 애정관계를 설명한다.
물론 이들도 성을 통하여 즐거움을 추구한다. 그러나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 성적 제의는 한 인간으로서 추구하는 성적 즐거움과는 일정정도 거리가 있는 듯 하다. 첫째, 생산능력이 없는 아이나 노인들도 제의에 참여한다. 둘째, 성적 제의를 통하여 임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셋째, 성적 제의 공간에서 이루어진 아내나 남편의 행위에 대하여 질투를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부모로까지 생각한다. 넷째, 제의가 매우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거행된다. 다섯째, 창세신화가 불려진다. 여섯째, 노래는 매우 저음으로 웅얼거리는 듯한 소리를 내서 음습한 느낌마저도 든다. 소수민족들의 정가가 보통 청아한 소리로 불려진다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일곱 번째, 대규모의 집단적인 행위로 거행된다. 이러한 특징들은 보통의 연애에서 발견되지 않는 점으로 이들의 집단연애가 제의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말한다.
"고대문화의 종교적 인간들에게 있어서 세계는 해마다 갱신되는 것이었다. 달리 말하면 새로운 해가 올 때마다 그것은 그것의 원초적인 신성성, 그것이 창조주의 손에서 빚어질 때 가졌던 신성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멀치아 엘리아데, 이동하 역, 『성과 속』, 학민사, 1991, p. 58.
흰바지 요족들의 성적 제의는 신들의 창조행위를 제의적으로 반복함으로써 근원적인 시간을 회복하려는 욕구에서 거행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신이 했던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신들과 같은 시대에 놓이게 된다. "우주창조를 해마다 반복함으로써 시간이 재생된다. 즉 그것은 세계가 처음으로 출현하였던 바로 그 시간과 동시에 위치하게 됨으로써 다시 거룩한 시간이 된다. 세계의 종말과 그것이 재창조에 제의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모든 인간은 그 시간과 동시에 놓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그는 새롭게 태어나며 그의 탄생 당시와 마찬가지로 완전히 활력의 저장고를 가지고 다시 삶을 시작하게 된다."
멀치아 엘리아데, 이동하 역, 『성과 속』, 학민사, 1991, p. 72.
이들의 집단연애가 성적 제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음은 앞에서 예를 든 경우 조상신을 상징하는 상징물의 성적 결합에서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타이지앙의 예와 비교할 때 이들은 조상신들이 했던 태초의 창조적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영원한 재생을 이루려 하는 것이다.
4. 흰바지 요족의 슬픔
"한 상인이 요족 마을에 와서 물건을 팔았다. 물건에 욕심이 난 사람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그 물건과 바꾸었다. 이후 다른 민족이 마을을 침입하였는데 머리카락을 자른 후에는 힘이 약해져 전쟁에 지고 말았다. 따라서 결혼한 사람들은 반드시 머리를 기르고 천으로 감싸 보호한다."
위의 이야기는 흰바지 요족이 머리를 기르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설화이다. 요즘 흰바지 요족은 관광상품으로 개발되고 있다. 남단현이 관광지로 개발됨으로 인하여 이들의 원시적인 문화가 상품으로 개발되는 것이다. 지금 한창 마을로 통하는 도로가 포장 중이다. 이들은 이제 머리를 자르게 될 것이다.
2002년 8월 5일 그들을 만났다. "고민이 많다"고 한다. "왜, 고민이 많냐"고 하였더니 "가난해서"라고 한다. 이들은 예전에는 가난하지 않았다. 소금물을 젓가락으로 찍어 안주 삼아 술을 마셔도 그것이 즐겁고 항상 노력한 만큼을 양식을 거둘 수 있게 해주는 땅이 고마웠다. 그러나 이제 자본과 만나게 된 그들은 한없이 슬퍼지게 되었다. 외부의 것들이 너무 대단해서 이제 자신의 것들은 초라할 뿐이다. 이들을 만나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미안하다"는 말이다. 우리가 너무 가난해서 너에게 줄 것이 없어 미안하다는 말이다.
이들은 앞으로 자신들에게 전개될 문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해 나갈 것인가. 이번에 만난 젊은 청년은 집에 돌아와 가족을 보고 자신의 종족을 보면 울고 싶어진다고 한다. 이들의 가난을 자신의 힘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어 고통스럽다고 한다. 이 청년처럼 나도 알지 못한다. 과연 이들은 타의에 의해서 전개될 침략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가. 자괴감으로 스스로의 문화를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이 예전에 해왔던 것처럼 굳게 문을 닫고 자신들의 세계로 침잠할 것인가. 이들이 과연 진정한 문화의 주체로서 자신들이 문화를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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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4.12
  • 저작시기2005.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92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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