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시리아의 위협과 이스라엘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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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앗시리아의 위협과 이스라엘의 죽음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구절은 많은 학자들로 하여금 이렇게 상당히 불확실한 약속이 이 책을 지배하는 확실한 심판의 말씀과 동일한 근원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긍휼히 여기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은 훌륭한 이스라엘의 신학이다. 비록 그것이 그의 공의에 대한 동일한 주장에 논리적으로 어울리지는 않더라도 말이다(출 33:19; 34:6-7; 욜 2:12-14; 욘 4:2). 그러므로 그 메시지가 책의 다른 부분들과 모순이 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그것이 아모스 전체의 메시지를 재앙이 돌이켜지도록 회개를 촉구하는 것으로서 정의되어서도 안 된다. 이 책이 가질 수 있는 소망의 최선은 얼마의 개인들이 남을 것이라는 사실뿐이다.
어떤 해석가들은 그러한 메시지는 단지 유다인들에게서부터 기대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아모스서를 민족주의의 표현으로서 읽는다. 다윗 계열과 야웨가 선택한 도시로서의 예루살렘을 거부한 북 왕국은, 옳은 일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몇몇은 아모스가 정말로 유다에서부터 왔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갈릴리에도 또한 드고아라는 지명이 있으며, 어떤 이들은 그가 북쪽 사람이며 조국을 타도하고 반역하는 사람이었다고 주장해왔다. 아모스가 행한 것을 그가 왜 말했는지에 대한 그 자신의 설명은 다르다. 그는 신적 강제에 의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아마샤가 그에게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서나 예언하고”(7:12)라고 말했을 때, 아모스의 대답은 부분적으로는 비밀스러웠지만, 그가 왜 메시지를 들고 벧엘로 왔는지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야웨께서 나를 데려다가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7:15). 예언의 이유에 대한 또 다른 반응이 3:3-8에 나온다. 그것은 일련의 수사적 질문들인데, 그 핵심은 불가피성이다: “사자가 움킨 것이 없고야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으며… 성읍에서 나팔을 불게 되고야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겠으며 …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않겠느냐 주 야웨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
기원전 8세기 인간 아모스가 가졌을 법한 어떠한 인간적 경험에 대해서도 우리는 거의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 장과 다른 책들에서의 이와 비슷한 것들은, 그것들이 제공하는 정보로 인해 중요하다. 그 정보란, 이스라엘과 초기 유대교가 권위에 대한 예언자들의 주장의 기초에 대해 무엇을 이해하였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 당시에, 그들이 옳거나 그르다는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왕상 22장과 렘 27-28장을 참고하라)? 그것은 마침내 이들 예언자들이 다른 것들로부터 감추어진 어떠한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역사의 시험이었다.
전체 예언자들의 메시지의 한 부분으로서의 아모스
아모스는 자신이 죽음을 말해야만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모스서에서 부활이 뒤따를 것이라는 암시는 없다. 실제로, 그의 관심은 북 왕국이었기 때문에, 북으로부터 포로 된 자들의 재건은 없었고, 그와 같은 메시지는 부적당했다. 말해졌을 때 놀랍고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음에 분명했던 그의 말들은, 어떻게든 보존되었고 유다로 전해졌다. 우리는 오로지 그 과정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얻는 바가 있다. 이 신탁 모음집은 그것들을 보존한 사람들에 의해 그것들이 단지 이스라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유다에서도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생각되어졌다. 우리는 2:4-5에서 유다를 향한 신탁의 기원에 대해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내용은 1-2장에서의 다른 일곱 가지 신탁들과 비교했을 때, 모호하고도 평범하다. 그것들은 그것들이 특별한 요구로 인해 상술되어진 후, 후대 예언자들에 의해 성립된 것들의 요약인 것처럼 보인다. 고로 이 신탁의 후대 삽입은 자신의 고향을 향해 직접적으로 말하기 위해 아모스서가 만들어진 방식 중 하나이다. 다른 장들은 유다를 향한 그의 말들의 적용을 지지해주고 있다. 3:2에서는 “주제절”이 소개된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야웨께서 너희를 쳐서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 에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온 족속을 쳐서 이르시기를”(3:1). 여기서 아모스는, 다른 예언자들도 그리 하게 되는 것처럼, 그것의 이상적 뉘앙스로 “이스라엘”을 사용한다. 그것은 남 왕국과 북 왕국을 모두 포함한다. 유다인 아모스는 이러한 방식으로 말했을 것이고, 또한 시온/예루살렘을 약간 언급했다(1:2; 6:1). 그러나 책의 결론을 지우는 두 약속들(9:11-12, 13-15)은 어느 기원전 8세기 자료로부터 유래한 것 같지는 않다. 거기에는 책의 나머지 부분과 비교하여 어휘 혹은 주제의 관련성이 없다. 그리고 각각의 신탁들은 재앙이 이미 왔다는 것을 전제한다. 전자는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언급한다. 그리고 후자는 백성들이 그 땅으로부터 다시는 뽑히지 않으리라는 약속과 함께 폐허가 된 도시를 언급한다. 이것들은 이미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는 의미 없는 약속이었다. 그러나 최종적인 그들의 장소로 보아, 아모스서가 정경이 된 것은 적절했다. 본래의 책은 먼저 이스라엘에게, 그리고 다음에 유다에게 내려진 대 격변을 설명했다. 그 격변은 우연도 아니었고, 외국의 황제나 다른 신들의 뜻도 아니었다. 그것은 야웨께서 하신 것으로 주장되었다. 결국 아모스의 말들을 진지하게 취한 사람들은, 아모스가 이스라엘에서 발견한 야웨의 백성이 살아가야 하는 방식과는 모순되는 것에 대한 그의 분석 안에서, 그것들을 명령으로 들었다. 그것은 시내산 율법을 상기시키지만, 그들은 그것을 새로운 삶의 기초로서 취하였다. 이는 후대의 예언자들이 말한 바, 즉 야웨의 의도를 말하는 사람은 과거의 파괴로부터 새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 아모스서의 가장 오래된 형태는 이야기의 부분만을 알고 있었지만, 전자는 그들에게 아무런 미래도 남겨놓지 않은 후자 없이 작용한다. 그래서 후에 예언자들이 그 책에 그러한 약속들을 첨가했을 때 아모스의 심판 메시지는 약한 것으로 생각되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그 책을 온전한 예언적 정경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 가격2,000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05.05.06
  • 저작시기2005.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93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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