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본론
3. 결론
2. 본론
3. 결론
본문내용
책값에 관한 연락을 보내는데, 그걸 무시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제 얘기는 우리들이 너무나 민주적 가치의 교육이 안 되어 있다는 겁니다. 어제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서울의 조금 규모가 작은 어느 환경단체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녹색평론 과월호에 실린 글이 필요하다고 그것을 봤으면 좋겠다고 해요. 그 단체에 녹색평론이 평소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좀 잘 찾아보든지 안 되면 큰 서점에 나가보면 될텐데, 몇 십 페이지나 되는 글을 당장 팩스로 보내달라는 거예요. 평소에는 어지간하면 보고 싶은 글 보내달라면 다 보내줍니다. 그러나 아무 주저도 없이 팩스로 수 십 페이지를 넣어달라는 데는 제 고약한 성미로는 얼른 내키지 않아요. 하다 못해 통신료는 우리가 부담하겠습니다라고 예의를 차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뭐가 그리 화급해서 팩스로 꼭 받아야 해요? 우편물로 보내달라면 될 것 아닙니까?
언젠가 일본 사람들의 사회운동 방식에 대해서 경험이 많은 분에게서 들은 얘깁니다만, 일본의 시민운동 단체들은 그런 점에서 우리하고 아주 달라요. 아무리 사소한 유인물 한 장이라도 자기들끼리 그냥 가져가는 법이 없답니다. 단 돈 얼마라도 내놓고 유인물이든 무엇이든 가져간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무수한 주민운동 내지 시민운동 단체들이 재정적 자립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반핵운동이라든지 몬주 원자로사고라든지 그럴 때 어쨌든 사람들이 모여 성명서도 내고 입장을 밝혀야 하고, 때로는 데모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러면 자기들끼리 사발통문을 돌려서 몇 백 몇 천의 민간조직이 금방 모인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채로운 성명서가 나오고 정부와 기업에 압력을 행사하게 된다는 것이죠.
일본의 경우가 반드시 모범적인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하여튼 우리보다는 시민 내지 주민 자치의 훈련이 많이 되어 있는 사회가 아닌가 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농업문제만 해도 그렇지요. 일본이 우리보다 여러 면에서 한발 앞서 있잖아요. 가정 주부들을 중심으로 생활필수품 공동구입운동으로부터 시작된 '생활클럽' 같은 것은 많은 녹색운동가들 사이에서 앞으로의 시계에서 바람직한 생활방식으로 갈수록 주목받고 있는데, 지금은 단지 물품거래뿐만 아니라 교육이라든지 노인이나 장애인들의 생활문제, 육아문제에 이르기까지 생활전반에 걸친 자치적 자립운동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고 해요.
우리가 지금 얘기하는 문제는 덜 민주적인 사회에서 더 민주적인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네요. 이것은 우리의 종래의 삶의 방식과 문명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걸 어떤 정부가 한다는 거예요? 어떤 정부가 그걸 자신의 과업으로 떠맡을 수 있겠어요? 정부 사람들이란 늘 표 계산만 하는 사람들인데, 세상의 근본적인 변화라는 아이디어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철두철미하게 생활현장의 밑바닥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농민문화의 뿌리를 강화하고 확산하면서 도시를 포위해 들어가야 하겠지요. 우선은 우리 자신 한 사람 한 사람이 해방구를 - 슈퍼마켓에서 해방되고 권력으로부터 해방된, 지역자립에 기초한 생명의 해방구를 만드는 데 일꾼이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지식인들이 있고 도시의 소비자들이 있습니다만 근본은 농민들입니다. 새로운 이상과 비젼을 가진 농민들이 얼마나 생겨나느냐가 결국 관건입니다.
요즈음 시골로 가서 농사짓고 살겠다는 젊은이들이 꽤 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건 참 좋은 변화인 듯 싶습니다. 아마 전반적으로 경제가 어려워지기도 하고,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예전과는 상당히 달라지고 있다는 표시인지도 모릅니다.
3. 결론
대학에서도 옛날보다 더 가혹하게 경쟁교육으로 가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도 아직 소수이긴 합니다만 새로운 생명의 가치에 눈뜨는 학생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젊은이들의 뜻을 살리기 위해서도 저는 그런 젊은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터전이 확보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지금 농사짓고 사는 사람들이나 농사꾼이 되겠다는 사람들은 전부 도인(道人)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광란적인 물욕과 경쟁주의 세상에서 손해를 자처한 사람들이니까요. 철학과 사상이 없으면 못 합니다. 도대체 돈을 생각하면 절대 못하는 게 농사입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인간에게 있어서 사상의 힘이란 막강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농사라고 하지만 지금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람들 중에는 이미 농사꾼 아닌 농사꾼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아까 의정부역에서 택시를 탔는데 만원 달라고 해요. 시골 사람들이 만원씩 주고 이 택시를 이용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까, 무슨 말씀이십니까 시골 사람들이 더 잘 이용합니다. 시골 사람들이 무슨 돈으로요? 시골 사람들 다 부자예요. 그러더군요. 실제로 그런 말을 들을 만한 농민이 요즈음 꽤 있잖아요. 땅값 오르기를 학수고대하거나 시설농사나 공장식 축산으로 돈 벌 생각이 앞서 있는 사람들 말입니다. 하기는 농촌이고 도시고 할 것 없이 대다수가 이런 식이에요. 농민도 그렇고, 도시노동자도 또 과학자든 교육자든 언론인이든 대부분의 직업인들이 하고 있는 일이 전부 소득경쟁이고, 삶의 근본을 망가뜨리는 일이에요. 특히 학자들이 하는 연구의 대부분이 살생에 관계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생명을 효과적으로 죽이느냐 하는 연구에 매달려 있어요. 이것이 대세니까 어쩔 수 없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사는 길이 아니죠. 지금 죽으러 가는 길을 가면서 자꾸 이걸 살길이라고 말하고 있잖아요. 그걸 따라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당장에 현실적으로 패할 수밖에 없더라도 저항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죠. 적어도 불복종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복종의 핵심은 결국 아까도 말했듯이 생명의 해방구를 늘려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대안학교라는 것도 나오고 있잖아요. 학교가 공식적으로 인정되든 안 되든 내 자식과 내 이웃의 자식을 내가 책임지고 키우겠다는 자존심 강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말이 기억납니다. "혼자서 꾸는 꿈은 꿈으로 끝나지만, 여럿이서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어려운 길을 선택하신 여러분의 꿈이 언젠가 좋은 결실을 맺을 것을 믿습니다.
제 얘기는 우리들이 너무나 민주적 가치의 교육이 안 되어 있다는 겁니다. 어제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서울의 조금 규모가 작은 어느 환경단체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녹색평론 과월호에 실린 글이 필요하다고 그것을 봤으면 좋겠다고 해요. 그 단체에 녹색평론이 평소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좀 잘 찾아보든지 안 되면 큰 서점에 나가보면 될텐데, 몇 십 페이지나 되는 글을 당장 팩스로 보내달라는 거예요. 평소에는 어지간하면 보고 싶은 글 보내달라면 다 보내줍니다. 그러나 아무 주저도 없이 팩스로 수 십 페이지를 넣어달라는 데는 제 고약한 성미로는 얼른 내키지 않아요. 하다 못해 통신료는 우리가 부담하겠습니다라고 예의를 차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뭐가 그리 화급해서 팩스로 꼭 받아야 해요? 우편물로 보내달라면 될 것 아닙니까?
언젠가 일본 사람들의 사회운동 방식에 대해서 경험이 많은 분에게서 들은 얘깁니다만, 일본의 시민운동 단체들은 그런 점에서 우리하고 아주 달라요. 아무리 사소한 유인물 한 장이라도 자기들끼리 그냥 가져가는 법이 없답니다. 단 돈 얼마라도 내놓고 유인물이든 무엇이든 가져간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무수한 주민운동 내지 시민운동 단체들이 재정적 자립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반핵운동이라든지 몬주 원자로사고라든지 그럴 때 어쨌든 사람들이 모여 성명서도 내고 입장을 밝혀야 하고, 때로는 데모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러면 자기들끼리 사발통문을 돌려서 몇 백 몇 천의 민간조직이 금방 모인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채로운 성명서가 나오고 정부와 기업에 압력을 행사하게 된다는 것이죠.
일본의 경우가 반드시 모범적인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하여튼 우리보다는 시민 내지 주민 자치의 훈련이 많이 되어 있는 사회가 아닌가 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농업문제만 해도 그렇지요. 일본이 우리보다 여러 면에서 한발 앞서 있잖아요. 가정 주부들을 중심으로 생활필수품 공동구입운동으로부터 시작된 '생활클럽' 같은 것은 많은 녹색운동가들 사이에서 앞으로의 시계에서 바람직한 생활방식으로 갈수록 주목받고 있는데, 지금은 단지 물품거래뿐만 아니라 교육이라든지 노인이나 장애인들의 생활문제, 육아문제에 이르기까지 생활전반에 걸친 자치적 자립운동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고 해요.
우리가 지금 얘기하는 문제는 덜 민주적인 사회에서 더 민주적인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네요. 이것은 우리의 종래의 삶의 방식과 문명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걸 어떤 정부가 한다는 거예요? 어떤 정부가 그걸 자신의 과업으로 떠맡을 수 있겠어요? 정부 사람들이란 늘 표 계산만 하는 사람들인데, 세상의 근본적인 변화라는 아이디어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철두철미하게 생활현장의 밑바닥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농민문화의 뿌리를 강화하고 확산하면서 도시를 포위해 들어가야 하겠지요. 우선은 우리 자신 한 사람 한 사람이 해방구를 - 슈퍼마켓에서 해방되고 권력으로부터 해방된, 지역자립에 기초한 생명의 해방구를 만드는 데 일꾼이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지식인들이 있고 도시의 소비자들이 있습니다만 근본은 농민들입니다. 새로운 이상과 비젼을 가진 농민들이 얼마나 생겨나느냐가 결국 관건입니다.
요즈음 시골로 가서 농사짓고 살겠다는 젊은이들이 꽤 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건 참 좋은 변화인 듯 싶습니다. 아마 전반적으로 경제가 어려워지기도 하고,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예전과는 상당히 달라지고 있다는 표시인지도 모릅니다.
3. 결론
대학에서도 옛날보다 더 가혹하게 경쟁교육으로 가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도 아직 소수이긴 합니다만 새로운 생명의 가치에 눈뜨는 학생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젊은이들의 뜻을 살리기 위해서도 저는 그런 젊은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터전이 확보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지금 농사짓고 사는 사람들이나 농사꾼이 되겠다는 사람들은 전부 도인(道人)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광란적인 물욕과 경쟁주의 세상에서 손해를 자처한 사람들이니까요. 철학과 사상이 없으면 못 합니다. 도대체 돈을 생각하면 절대 못하는 게 농사입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인간에게 있어서 사상의 힘이란 막강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농사라고 하지만 지금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람들 중에는 이미 농사꾼 아닌 농사꾼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아까 의정부역에서 택시를 탔는데 만원 달라고 해요. 시골 사람들이 만원씩 주고 이 택시를 이용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까, 무슨 말씀이십니까 시골 사람들이 더 잘 이용합니다. 시골 사람들이 무슨 돈으로요? 시골 사람들 다 부자예요. 그러더군요. 실제로 그런 말을 들을 만한 농민이 요즈음 꽤 있잖아요. 땅값 오르기를 학수고대하거나 시설농사나 공장식 축산으로 돈 벌 생각이 앞서 있는 사람들 말입니다. 하기는 농촌이고 도시고 할 것 없이 대다수가 이런 식이에요. 농민도 그렇고, 도시노동자도 또 과학자든 교육자든 언론인이든 대부분의 직업인들이 하고 있는 일이 전부 소득경쟁이고, 삶의 근본을 망가뜨리는 일이에요. 특히 학자들이 하는 연구의 대부분이 살생에 관계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생명을 효과적으로 죽이느냐 하는 연구에 매달려 있어요. 이것이 대세니까 어쩔 수 없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사는 길이 아니죠. 지금 죽으러 가는 길을 가면서 자꾸 이걸 살길이라고 말하고 있잖아요. 그걸 따라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당장에 현실적으로 패할 수밖에 없더라도 저항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죠. 적어도 불복종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복종의 핵심은 결국 아까도 말했듯이 생명의 해방구를 늘려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대안학교라는 것도 나오고 있잖아요. 학교가 공식적으로 인정되든 안 되든 내 자식과 내 이웃의 자식을 내가 책임지고 키우겠다는 자존심 강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말이 기억납니다. "혼자서 꾸는 꿈은 꿈으로 끝나지만, 여럿이서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어려운 길을 선택하신 여러분의 꿈이 언젠가 좋은 결실을 맺을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