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문학에의 희생제의(카프카)
1.정체성의 병
2.불가능의 글쓰기-언어의 문제
1)'동화'-카프카와 그 민족이 재결합하는
2)카프카와 독일어-언어와의 의미심장한 거리
3)불가능한 글쓰기의 가능성 실현-알맹이찾기
4)언어에 대한 범법행위- 요람의 독일아이를 훔치는
3.종교로서의 문학
4.희생제의
1.정체성의 병
2.불가능의 글쓰기-언어의 문제
1)'동화'-카프카와 그 민족이 재결합하는
2)카프카와 독일어-언어와의 의미심장한 거리
3)불가능한 글쓰기의 가능성 실현-알맹이찾기
4)언어에 대한 범법행위- 요람의 독일아이를 훔치는
3.종교로서의 문학
4.희생제의
본문내용
직업>
평생을 두고 프라하를 떠나 다른 곳에 가서 살아 보려고 시도했던 카프카는 언제나 되돌아오게 되었고 끝내 이 도시를 떠나지 못하고 말았다. 그가 지극히 혐오한 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프라하의 주위 환경은 카프카 문학의 주제와 형식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카프카는 병을 얻은 후 직장에 8개월간의 휴가를 얻어 시골로 내려가는데 도시에서 살아온 그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농민들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면서 「일기」에 이렇게 적는다. 농민들은 <농업으로 도피한 귀족들이다. 복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현명하고 겸허하게 그들의 노동에 종사함으로써 그들은 완전히 전체에 순응하고 어떠한 흔들림이나 배 멀미에서도 보호된다. 그들은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정말로 현세의 인간들이다.> 땅과 흙을 상대로 자연의 커다란 질서 속에서 일하는 농민들이 순수와 진실을 동경하는 카프카에게는 인간을 상대로 제도와 법률에 얽매여 사는 도시인들보다 훨씬 품위 있는 생활인으로 보였던 것 같다. 이러한 현세의 순수와 행복이 프라하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그러나 그의 모든 작품이 대개 프라하에서 씌어졌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주위 환경 자체가 순수와 행복으로 충만해 있을 때 작가는 좋은 작품을 쓸 수 없다는 방증이 되는 셈이다. 신병치료를 위하여 이후로 6년간의 요양소 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틈만 있으면 프라하로 돌아오곤 했다. 회사에서 은급 퇴직을 한 뒤 23개월 중 거의 반을 그는 프라하에서 살았다. 이것은 그가 신병으로부터 완전히 치유되기를 원하지 않았다는 증거인 동시에 그가 자기의 주위 환경과 완전히 격리된 상황에서 글을 쓰기를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반영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金光圭,『카프카』, 金光圭 編, 文學과知性社, 1978. p 41~42, <카프카의 生涯와 作品>
어쩌면 그는 진실된 문학에의 길을 걷기위해 스스로 발병을 강요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행복은 우리가 가진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행복은 방향 정하기의 문제이지요. 다시 말해 행복한 인간은 현실의 어두운 가장자리를 보지 못해요. 스스로 살아있다고 느끼는 자기 나름의 방식에 의해, 죽음에 대한 의식이 나무속의 벌레처럼 집요하게 갉아먹어 들어오는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지요.
-카프카-
5. 마무리 ―문학을 살아내다
사물들을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요. 사물들을 살아내야 해요. 이럴 경우, 언어는 본질적인 중개자이며, 살아있는 어떤 것이고, 매개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언어를 도구처럼 사용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아요. 고통에 이르기까지 언어 그 자체를 살아내야만 해요. 언어는 영원한 애인이에요.
―교제 <카프카 3> 90p
카프카에게 문학은 그의 모든 것이었다. 그것은 그의 실존의 근거이며 존재의 이유였다. 문학을 위해 그는 철저한 금욕주의자로, 거리감을 두고 바라보는 관찰자라로, 자아로 침잠하는 명상가로서 살았다. 때로는 ‘살아있는 시체로’, 때로는 ‘거친 나무토막처럼’, 때로는 ‘침묵하는 바위’롤, 때로는 ‘사회 운동의 참여자’로서 그는 사회 조직들의 모순적 체계들, 익명의 지배와 개인의 종속성 사이의 관계들을 폭로하고, 동시에 허위가 진실이 되어버린 현실 세계와 맞서기를 서슴지 않았다. 문학은 짧지만 치열했던 그의 삶이 살다간 삶의 이름 그 자체인 것이다.
※ 참고문헌
『카프카』, 金光圭 編, 文學과知性社, 1978.
프란츠 카프카, 『변신, 유형지에서(외)』, 박환덕 옮김, 범우사, 1989,
『카프카 엿보기』, 홍영철 엮음, 선인문화사, 1997
마르트 로베르, 『프란츠 카프카의 고독』, 이창실 옮김, 동문선, 2003
『꿈같은 삶의 기록』, 이주동 옮김, 솔, 2004
평생을 두고 프라하를 떠나 다른 곳에 가서 살아 보려고 시도했던 카프카는 언제나 되돌아오게 되었고 끝내 이 도시를 떠나지 못하고 말았다. 그가 지극히 혐오한 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프라하의 주위 환경은 카프카 문학의 주제와 형식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카프카는 병을 얻은 후 직장에 8개월간의 휴가를 얻어 시골로 내려가는데 도시에서 살아온 그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농민들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면서 「일기」에 이렇게 적는다. 농민들은 <농업으로 도피한 귀족들이다. 복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현명하고 겸허하게 그들의 노동에 종사함으로써 그들은 완전히 전체에 순응하고 어떠한 흔들림이나 배 멀미에서도 보호된다. 그들은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정말로 현세의 인간들이다.> 땅과 흙을 상대로 자연의 커다란 질서 속에서 일하는 농민들이 순수와 진실을 동경하는 카프카에게는 인간을 상대로 제도와 법률에 얽매여 사는 도시인들보다 훨씬 품위 있는 생활인으로 보였던 것 같다. 이러한 현세의 순수와 행복이 프라하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그러나 그의 모든 작품이 대개 프라하에서 씌어졌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주위 환경 자체가 순수와 행복으로 충만해 있을 때 작가는 좋은 작품을 쓸 수 없다는 방증이 되는 셈이다. 신병치료를 위하여 이후로 6년간의 요양소 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틈만 있으면 프라하로 돌아오곤 했다. 회사에서 은급 퇴직을 한 뒤 23개월 중 거의 반을 그는 프라하에서 살았다. 이것은 그가 신병으로부터 완전히 치유되기를 원하지 않았다는 증거인 동시에 그가 자기의 주위 환경과 완전히 격리된 상황에서 글을 쓰기를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반영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金光圭,『카프카』, 金光圭 編, 文學과知性社, 1978. p 41~42, <카프카의 生涯와 作品>
어쩌면 그는 진실된 문학에의 길을 걷기위해 스스로 발병을 강요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행복은 우리가 가진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행복은 방향 정하기의 문제이지요. 다시 말해 행복한 인간은 현실의 어두운 가장자리를 보지 못해요. 스스로 살아있다고 느끼는 자기 나름의 방식에 의해, 죽음에 대한 의식이 나무속의 벌레처럼 집요하게 갉아먹어 들어오는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지요.
-카프카-
5. 마무리 ―문학을 살아내다
사물들을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요. 사물들을 살아내야 해요. 이럴 경우, 언어는 본질적인 중개자이며, 살아있는 어떤 것이고, 매개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언어를 도구처럼 사용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아요. 고통에 이르기까지 언어 그 자체를 살아내야만 해요. 언어는 영원한 애인이에요.
―교제 <카프카 3> 90p
카프카에게 문학은 그의 모든 것이었다. 그것은 그의 실존의 근거이며 존재의 이유였다. 문학을 위해 그는 철저한 금욕주의자로, 거리감을 두고 바라보는 관찰자라로, 자아로 침잠하는 명상가로서 살았다. 때로는 ‘살아있는 시체로’, 때로는 ‘거친 나무토막처럼’, 때로는 ‘침묵하는 바위’롤, 때로는 ‘사회 운동의 참여자’로서 그는 사회 조직들의 모순적 체계들, 익명의 지배와 개인의 종속성 사이의 관계들을 폭로하고, 동시에 허위가 진실이 되어버린 현실 세계와 맞서기를 서슴지 않았다. 문학은 짧지만 치열했던 그의 삶이 살다간 삶의 이름 그 자체인 것이다.
※ 참고문헌
『카프카』, 金光圭 編, 文學과知性社, 1978.
프란츠 카프카, 『변신, 유형지에서(외)』, 박환덕 옮김, 범우사, 1989,
『카프카 엿보기』, 홍영철 엮음, 선인문화사, 1997
마르트 로베르, 『프란츠 카프카의 고독』, 이창실 옮김, 동문선, 2003
『꿈같은 삶의 기록』, 이주동 옮김, 솔,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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