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 서론
II. 삼국유사에 기록된 불교사상의 개괄적 고찰
III. 미륵신앙의 의미와 역사적 전개
IV. 삼국유사를 통해 본 미륵신앙
V. 고대.중세사 미륵사상의 경제학적 분석
VI. 결론
II. 삼국유사에 기록된 불교사상의 개괄적 고찰
III. 미륵신앙의 의미와 역사적 전개
IV. 삼국유사를 통해 본 미륵신앙
V. 고대.중세사 미륵사상의 경제학적 분석
VI. 결론
본문내용
세기 후반, 미륵 사상을 사실상 대표하는 승려인 진표의 행적 가운데서도 미륵이 빈민을 구제한 일화가 발견된다. 진표는 전북 부안에서 佛道를 닦던 중 미륵의 현신을 체험하였으며, 미륵의 손가락 뼈로 만들어진 두 개의 패를 받기까지 하였다고 전한다. 그러한 진표가 강원도 지방에 머무를 때의 일이었다. 그 당시 강원도 강릉(당시 지명은 명주) 지방에 큰 흉년이 들어서 많은 백성들이 굶주리게 되었다. 이에 진표는 그들을 구제할 목적으로 미륵에게 비는 法會를 열었다. 그러자 갑자기 高城의 바닷가에 수많은 물고기가 저절로 죽어서 떠올랐으며, 사람들은 그것을 건져다가 팔아서 식량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리상호, 북역 삼국유사, 서울: 신서원 1990, p.485.
760년 (경덕왕 10년) 4월에는 경주의 하늘에 두 개의 해가 동시에 나타나서 그런 상태가 열흘 동안이나 지속되었다고 한다. 결국 이 문제는 月明師라는 승려가 도솔가를 지어 부르면서 꽃을 뿌리는 불교 의식을 시행함으로써 해결되었다고 한다. 그가 불렀다고 하는 노래 가운데 너희는 참다운 마음이 시키는 그대로 미륵님을 모시어라 리상호, 북역 삼국유사, 서울: 신서원 1990, p.527.
는 귀절이 있어서 관심을 끈다.
당시 미륵은 天災地變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신앙의 대상이었다. 태양은 농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기후 조건을 대변하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일조량의 많고 적음, 또는 이상 기온 등의 현상에 직접 관계되는 것이 바로 태양이다. 따라서 태양의 불규칙적인 움직임은 당시 경제의 중심축이었던 농사를 파탄으로 이끌어 갈 수 있었으므로, 미륵의 개입이 요청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와는 다른 맥락에서 태양은 - 주몽 신화를 비롯한 고대 한국의 신화에서 - 정치 권력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보기에 따라서는 위의 기사에 나타난 미륵의 역할이 왕조의 안녕을 보장하는 존재로 이해될 수도 있겠다. 백승종,『한국에서의 미륵신앙의 역사적 전개』,
6세기 후반 신라의 진지왕(576-579) 때에 경주 흥륜사의 승려 진자(정자라고도 함)에 얽힌 다음의 설화는, 미륵의 호국적 기능을 알려주는 최초의 기록이다. 진자는 흥륜사의 주존인 미륵상 앞에 나아가서 기도하기를 원컨대 우리 부처님이 화랑으로 몸이 변하셔서 세상에 나타나시면 제가 항상 ... 모든 바라지를 맡아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하였다고 한다. 리상호, 북역 삼국유사, 서울: 신서원 1990, p.369.
그 뒤 진자는 마침내 미륵의 화신으로 믿어지는 未尸를 발견하였다. 일연의 설명에 따르면, 미시란 이름은 미륵과 같은 것이라 한다. “未”와 “彌”의 글자 발음이 비슷하고 “尸”와 “力”의 글자 모양이 비슷하므로 각각 그 근사한 점을 따서 수수께끼 처럼 만든 것이라는 것이다. (리상호, 삼국유사, p.372.)
미시는 왕명에 의하여 국선(화랑의 우두머리)이 되었는데, 7년 만에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리상호, 북역 삼국유사, 서울: 신서원 1990, p.373.
이 설화에서는 미륵의 화신이 전사집단의 우두머리로 임명되고 있어서 미륵의 호국적 기능을 감지하게 해 준다. 미륵은 그를 섬기는 한 마을 전체나 그 구성원인 마을 주민 개개인에게 질병의 치유, 집안의 대를 이을 아들을 점지해 주는 것, 그리고 농사와 어로 작업을 도와서 경제적인 복지를 선사한다고 믿어졌다. 이러한 마을 테두리를 벗어나 미륵은 전쟁과 침략으로부터 나라와 백성의 평안을 지키는, 국가를 전란으로부터 구하여 백성들이 모두 평안하게 살 수 있게 도와줄 힘이 미륵에게 있다고 하는 믿음의 역할도 하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미륵이 경제적인 풍요를 가져다주는 존재로 인식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종교적 믿음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련되는 것이지만 미륵은, 풍농, 풍어, 사업의 성공, 날씨, 질병의 치료, 아들의 점지 및 전쟁과 침략으로부터 보호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런데 시일의 경과와 더불어 여러 지역에서는 미륵이 신앙민에게 가져다 줄 영험한 효과가 질병이나 득남과 같은 특정한 부문에 제한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VI. 결 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진 여러 사건설화를 통하여 미륵의 의미와 특성을 밝혀 보았다. 그리고 당시 미륵신앙이 경제적 관점에서 민중들의 삶과 역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쳐왔는지 그 상관관계를 연구해 보았다. 또한 기존의 밝혀진 선행연구를 바탕으로 미륵신앙은 각 지위와 계급에 따라 정략적으로 이용되기도 하였으며 미륵하생신앙으로서 현실 구원에 대한 염원으로서도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이해하였다. 아울러 삼국유사의 원전에 담긴 문헌을 다양하게 조사 연구하여 분석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는다.
그러나 연구의 한계점으로 신라중심의 불교사상과 미륵사상을 바탕으로 전개시켜 나가 연구에 앞서 밝혔듯이 백제와 고구려를 포함하는 총체적인 불교사상과 미륵사상을 심도 있게 고찰해 내지 못한 점이다. 또한 다양한 예를 통하여 각각의 불교사상과 미륵사상의 종합적인 연구를 전개시켜 나갔으나 정치적, 문학적, 역사적 관점 등의 다각적인 삼국유사를 분석하는 데에는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미륵신앙은 인간의 여러 문제를 해결해 주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물질적인 고난을 벗어나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경제적 욕구와 맞물려 생활 속에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크게 개인과 집단의 차원에서 그 역할을 정리하여 볼 때, 첫째, 자연재해와 질병으로부터의 구출자 그리고 풍요와 다산의 화신 마을 공동의 수호신으로서의 역할을 하였고, 둘째, 경제생활 전반에 걸쳐 큰 범위로 전쟁과 침략으로부터 나라와 백성의 평안을 지키는 역할을 하였다.
참고문헌
1.최남선,『증보 삼국유사』, 민중서관, 1973.
2. 일연 『삼국유사』
3. 박진태 외,『삼국유사의 종합적 연구』, 서울: 박이정, 2002.
4. 이병도, 국역 삼국사기, 서울: 을유문화사 1980.
5. 리상호, 북역 삼국유사, 서울: 신서원 1990.
6. 백승종,『한국에서의 미륵신앙의 역사적 전개』튀빙겐대학교, 1999.
7. 김삼룡, 한국 미륵신앙의 연구, 서울: 동화출판사 1983
760년 (경덕왕 10년) 4월에는 경주의 하늘에 두 개의 해가 동시에 나타나서 그런 상태가 열흘 동안이나 지속되었다고 한다. 결국 이 문제는 月明師라는 승려가 도솔가를 지어 부르면서 꽃을 뿌리는 불교 의식을 시행함으로써 해결되었다고 한다. 그가 불렀다고 하는 노래 가운데 너희는 참다운 마음이 시키는 그대로 미륵님을 모시어라 리상호, 북역 삼국유사, 서울: 신서원 1990, p.527.
는 귀절이 있어서 관심을 끈다.
당시 미륵은 天災地變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신앙의 대상이었다. 태양은 농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기후 조건을 대변하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일조량의 많고 적음, 또는 이상 기온 등의 현상에 직접 관계되는 것이 바로 태양이다. 따라서 태양의 불규칙적인 움직임은 당시 경제의 중심축이었던 농사를 파탄으로 이끌어 갈 수 있었으므로, 미륵의 개입이 요청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와는 다른 맥락에서 태양은 - 주몽 신화를 비롯한 고대 한국의 신화에서 - 정치 권력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보기에 따라서는 위의 기사에 나타난 미륵의 역할이 왕조의 안녕을 보장하는 존재로 이해될 수도 있겠다. 백승종,『한국에서의 미륵신앙의 역사적 전개』,
6세기 후반 신라의 진지왕(576-579) 때에 경주 흥륜사의 승려 진자(정자라고도 함)에 얽힌 다음의 설화는, 미륵의 호국적 기능을 알려주는 최초의 기록이다. 진자는 흥륜사의 주존인 미륵상 앞에 나아가서 기도하기를 원컨대 우리 부처님이 화랑으로 몸이 변하셔서 세상에 나타나시면 제가 항상 ... 모든 바라지를 맡아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하였다고 한다. 리상호, 북역 삼국유사, 서울: 신서원 1990, p.369.
그 뒤 진자는 마침내 미륵의 화신으로 믿어지는 未尸를 발견하였다. 일연의 설명에 따르면, 미시란 이름은 미륵과 같은 것이라 한다. “未”와 “彌”의 글자 발음이 비슷하고 “尸”와 “力”의 글자 모양이 비슷하므로 각각 그 근사한 점을 따서 수수께끼 처럼 만든 것이라는 것이다. (리상호, 삼국유사, p.372.)
미시는 왕명에 의하여 국선(화랑의 우두머리)이 되었는데, 7년 만에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리상호, 북역 삼국유사, 서울: 신서원 1990, p.373.
이 설화에서는 미륵의 화신이 전사집단의 우두머리로 임명되고 있어서 미륵의 호국적 기능을 감지하게 해 준다. 미륵은 그를 섬기는 한 마을 전체나 그 구성원인 마을 주민 개개인에게 질병의 치유, 집안의 대를 이을 아들을 점지해 주는 것, 그리고 농사와 어로 작업을 도와서 경제적인 복지를 선사한다고 믿어졌다. 이러한 마을 테두리를 벗어나 미륵은 전쟁과 침략으로부터 나라와 백성의 평안을 지키는, 국가를 전란으로부터 구하여 백성들이 모두 평안하게 살 수 있게 도와줄 힘이 미륵에게 있다고 하는 믿음의 역할도 하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미륵이 경제적인 풍요를 가져다주는 존재로 인식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종교적 믿음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련되는 것이지만 미륵은, 풍농, 풍어, 사업의 성공, 날씨, 질병의 치료, 아들의 점지 및 전쟁과 침략으로부터 보호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런데 시일의 경과와 더불어 여러 지역에서는 미륵이 신앙민에게 가져다 줄 영험한 효과가 질병이나 득남과 같은 특정한 부문에 제한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VI. 결 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진 여러 사건설화를 통하여 미륵의 의미와 특성을 밝혀 보았다. 그리고 당시 미륵신앙이 경제적 관점에서 민중들의 삶과 역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쳐왔는지 그 상관관계를 연구해 보았다. 또한 기존의 밝혀진 선행연구를 바탕으로 미륵신앙은 각 지위와 계급에 따라 정략적으로 이용되기도 하였으며 미륵하생신앙으로서 현실 구원에 대한 염원으로서도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이해하였다. 아울러 삼국유사의 원전에 담긴 문헌을 다양하게 조사 연구하여 분석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는다.
그러나 연구의 한계점으로 신라중심의 불교사상과 미륵사상을 바탕으로 전개시켜 나가 연구에 앞서 밝혔듯이 백제와 고구려를 포함하는 총체적인 불교사상과 미륵사상을 심도 있게 고찰해 내지 못한 점이다. 또한 다양한 예를 통하여 각각의 불교사상과 미륵사상의 종합적인 연구를 전개시켜 나갔으나 정치적, 문학적, 역사적 관점 등의 다각적인 삼국유사를 분석하는 데에는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미륵신앙은 인간의 여러 문제를 해결해 주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물질적인 고난을 벗어나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경제적 욕구와 맞물려 생활 속에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크게 개인과 집단의 차원에서 그 역할을 정리하여 볼 때, 첫째, 자연재해와 질병으로부터의 구출자 그리고 풍요와 다산의 화신 마을 공동의 수호신으로서의 역할을 하였고, 둘째, 경제생활 전반에 걸쳐 큰 범위로 전쟁과 침략으로부터 나라와 백성의 평안을 지키는 역할을 하였다.
참고문헌
1.최남선,『증보 삼국유사』, 민중서관, 1973.
2. 일연 『삼국유사』
3. 박진태 외,『삼국유사의 종합적 연구』, 서울: 박이정, 2002.
4. 이병도, 국역 삼국사기, 서울: 을유문화사 1980.
5. 리상호, 북역 삼국유사, 서울: 신서원 1990.
6. 백승종,『한국에서의 미륵신앙의 역사적 전개』튀빙겐대학교, 1999.
7. 김삼룡, 한국 미륵신앙의 연구, 서울: 동화출판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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