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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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사실과 가치
2 역사와 주체
3 역사에 있어서의 인과관계
4 진보로서의 역사
5 여러 가지 역사관

본문내용

해체가 뒤따르게 된다고 한다.
토인비는 21개 내지 23개의 문명권에 대한 경험적 비교 연구를 거쳐서, "최적의 도전이 최대의 응전을 불러일으킨다"는 역사의 법칙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여기에 몇 가지 논리적 난점이 있다. 우선 '최적'의 기준이 무엇이냐 라는 문제가 남는다. 그리고 이와 같은 역사의 일반화로부터, 일견해서 토인비를 결정론자의 부류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는 자기 자신은 자유 의지론의 원칙을 믿고 있다고 선언하고 있지만, 자유 의지론과 '도전과 응전'의 역사법칙이라는 두 개의 가설 사이의 해법이 불투명한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그는 민족주의의 위험을 일반화하여 마치 그것이 문명 사멸의 가장 '보편적인 원인'이었다고 단정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도 수미 일관한 논리적 전개가 부족함을 보게 된다.
니이버의 역사관
니이버는 기독교라는 종교적 신앙의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하려고 한다. 그는 기독교적 역사 해석을 그리스인들의 역사 해석과 근대 서양의 역사 해석에 대비시켜 설명하고 있다. 첫째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해서 그리스인들의 역사관은 역사의 의미를 자연의 반복에 종속시키고 있으며, 역사의 과정을 무시간적인 합리성을 반영하는 하나의 예증으로 간주하고 있을 뿐이라고 풀이한다. 그들은 역사를 단적으로 초월하는 세계에 편입시킴으로 말미암아 현세라는 독특한 시대적 상황이라든지 이러한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인간의 창조적인 능력 따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무관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둘째로, 근대 서양에서의 역사관은 그리스인의 역사관과는 반대 편에 서 있다고 할 터인데, 이들은 역사를 인간의 자유로운 창조력과의 관계에서 이해하고 있다. 니이버에 의하면, 근대적 역사관의 핵심은 그리스인들이 자연의 순환과 동일시하던 역사를 '불확정적인 성장의 영역', 또는 '증대하는 이성에 의해 보증된 포괄적인 목적의 성장'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근대의 역사 해석은 고대의 역사 해석보다는 개선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증대되는 인간의 자유와 역사 발전의 상관관계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으며, 소박한 진보이론에 젖어 있다고 비판될 수 있다고 한다.
셋째로, 니이버의 기독교적 역사관은 기독교적 인간관에 토대를 두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원죄'를 주장한다. 니이버는 인간의 원죄를 신에게 거역하는 인간의 경향 또는 인간의 피조물로서의 지위의 한계에 반항하는 경향, 나아가서 인간이 자기 자신을 '의미의 잘못된 중심'에 놓는 것으로 풀이한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자유를 행사하는 곳에 죄악이 있다고 주장한다. 역사에서 나타나는 악은 따라서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니이버에 따르면, 인간의 유한성을 부정하고 인간의 자유를 파괴적으로 사용하고 있음, 이것이야말로 역사를 끊임없이 무의미의 위협 가운데로 몰아 가는 것으로, 올바른 역사에 대한 이해란 역사에 대한 신의 지상권(至上權)을 회복하는 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역사의 운명은 유일신의 지상권의 지배 아래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의 지상권은 인간의 반항에 직면하여 어떻게 나타나는가? 그 하나는 인간의 반항에 대한 '심판'으로, 다른 하나는 인간이나 민족이 잘못을 뉘우치고 참회할 때에는 '재생과 부활'의 기회를 제공하는 '은총'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니이버의 기독교적 역사관에서는 인간의 원죄이론과 신의 은총이론 사이의 긴장과 조화를 찾아 볼 수 있다. 인간의 원죄이론은 인간의 완전화의 가능성을 주장하는 가설에 한계를 부여하고 있으며, 신의 은총이론은 인간이 죄악에 빠지더라도 전적으로 신의 구원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희망을 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이버의 기독교적 역사관에서 우리는 몇 가지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니이버에 의하면, 역사는 도덕적인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역사에는 신의 심판과 구원에 대한 증거가 있다고 하는 주장과 상충하는 것은 아닌가? 다음으로 과연 역사의 도덕적 의미를 오히려 역사와의 관련에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역사를 초월해 있는 신의 지상권으로부터 찾아내려고 하는 것은 자칫 은둔 도피적 생활을 조장할 우려는 없는 것인가? 끝으로 니이버는 산적 섭리의 신비가 역사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신비로 말미암아 역사의 의미가 더욱 풍부하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성을 넘어서 있는, 그래서 합리적 이해의 가능성을 초월해 있는 '신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키워드

역사,   역사문제,   사실,   주체,   인과관계,   진보,   역사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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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05.05.23
  • 저작시기2005.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98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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